- 327쪽 “고전 소설에서 자살은 당사자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였을 때 취하는 최종적 선택이자 자기 표현의 수단”
- 327~328쪽 “자살은 삶의 의미 상실에 대한 파국의 선언이자 위기에 대한 무방비한 대처 방식이자 좌절의 표현” “전체 고소설 작품 중에서 여성 인물이 경험하는 ‘위기’인식의 기회와 비중이 높게 채택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 328쪽 “고전 소설에 설정된 자살의 경위는 인물의 심리적 불안이나 내적 성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급한 현실,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는 윤리와 이념을 전제로 선택되는 사회적 요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 328쪽 “여성 인물의 경우는 상당수의 자살 기도가 ‘자살 형식의 타살’로 나타난다. 여기서 자살 기도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상상력’에 대한 해명이 ‘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 329~330쪽 “고소설 작품 중에서 작중 인물의 자살이 설정된 작품은 대상으로 삼은 총 855편 가운데 112편으로 전체의 13%를 차지하며 자살하는 인물의 수는 147명, 자살 횟수는 156회이다. 이 중 여성 인물의 자살이 제시된 것은 총 103편이며, 자살을 기도하는 여성 인물은 128평이고, 그 횟수는 141회이다. 남성 인물의 자살 기도가 제시된 것은 총 16편이며, 자살자 수는 19명이고 횟수도 동일하다. 작품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고 자살 충동만을 표현한 것은 4편이다(김이양문록의 소아, 이윤구전의 최부인, 장한절효기의 한씨, 유충열전의 유심). 이밖에 작중 인물이 위기를 모기하기 위해 자결한 형상을 꾸민 경우가 6편 있는데 모두 여성 인물들이 훼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라는 공통점을 지닌다.(서해무룡기의 최소저, 완월희맹연의 여씨와 시비 채월, 월영낭자전의 월영, 유씨삼대록의 양부인, 정비전의 정소저, 하씨선행후대록의 여부인). 그 외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 자살을 현실로 설정하여 기롱하는 경우가 1편(오유란전)있다. ”
- 332쪽 최기숙 표 여성 인물이 자살을 시도하는 원인을 내용에 따라 분석
분류 세부분류 작품명 위기모면형 자살53% 생명위협13회 9% 강릉추월, 구래공전, 두홍전, 양현문직절기, 옥린몽(2인). 옥소기연, 유선쌍학록, 이씨세대록(2회), 최한경전(2인), 하씨선행후대록 훼절위기40회 29% 귀영전, 명주기봉, 반씨전, 보심록, 부장양문열효록(2), 서주연의, 서해무릉기, 설소저전, 소씨명행록(2명), 숙녀지기, 쌍선봉효록(2) 양씨전, 여동선전, 오선기봉(2) 옥난기연(2회), 완월희맹연, 월봉기(2회, 1회는 3인), 유승상전, 유화기연(2인), 윤선옥전, 의열비충효록, 이린전, 이씨세대록, 재생연전, 주봉전, 창란호연록(2), 팔장사전(2인), 현씨양옹쌍린기, 화장선행록 강제혼21회 15% 계월선전(2인), 권익중전, 난학몽, 부장양문열효록, 삼사명행록, 삼한습유(2), 양추밀전, 왕십붕전(2), 유생대전, 유문성전, 유승상전(2회, 1회는 3인), 위씨절행록, 장학사전, 재행연전, 최척전 비관형 자살26% 가족의 상실10회 7% 강상월, 금강취유기, 김인향전, 김희경전, 유충열전(2인), 이윤구전, 장화홍련전, 주봉전, 숙녀지기 부부불화3회 2% 유승상전, 쌍성봉효록(2) 박해와 고통2회 2% 옥루몽, 임호은전 신세비관7회 5% 사씨남정기, 소현성록, 숙향전, 순금전, 어룡전, 운영전, 조생원전 수치심5회 4% 계월선전, 부장양문열효록(2), 소학사전, 태아선적강록 누명과 모해9회 6% 난초재세록, 숙영낭자전, 숙향전, 옥환기봉, 완월희맹연, 유최현전, 위보월전, 이조양문록, 정을선전 희생형 자살 9% 충 5회 4% 월봉기, 유최현전, 유황후전, 이윤구전, 정을선전 효 2회 1% 삼강명행록, 심청전 열 6회 5% 김학공전, 단종대왕실기, 박만득박금단전, 신계후전, 최한경전, 탐근대 충열형 자살 6% 충 4회 3% 신숙주 부인전, 석일태전, 접동새, 정열사전 열 4회 3% 윤지경전, 이계룡전, 최호양문록, 최승루기 자기 처벌형 자살 3% 4회 비소기, 사씨남정기, 양귀비, 유광전 강요형 자살2% 계모, 시누이 남편의 강요 3회 2% 김인향전, 장화홍련전, 접동새 기타2% 3회 벽성선, 정열사전(분격형), 보삼록(경제적 위기) - 333쪽 “이는 여성의 정조를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생명적 요소로 간주한 당대적 상상력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집 밖의 세계가 성적 가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세계로 상상되었음을 보여준다”(장화홍련전 ““부친님ᄭᅴ셔 죽으려면 집에셔 죽ᄂᆞᆫ 것이 쇼녀의 지원이오 이 밤에 계집ᄋᆡ가 어ᄃᆡ를 가겟습나가”ᄒᆞ묘 간졀이 ᄋᆡ걸”하는 장화홍련전(동명서관,1916)의 장면은 ‘밤’에 ‘집 밖’을 나가는 것이 ‘계집아이’에게 공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333쪽 “비관형 자살이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이 중 ‘수치심’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여성을 ‘파국’으로 모는 고통의 진원은 ‘가족’이고 그 환경은 ‘가정’이다.”
“위기 모면형 자살의 경우 여성이 가정의 보호를 떠났을 때에도 자살에 이를 정도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처럼, 가족의 죽음이나 이별이 여성 인물에게 자살 충동을 환기시키는 고통의 극치로 나타난다.”
“부부불화, 박해와 고통, 신세 비관, 누명과 모해 등 비관형 자살의 대부분이 그 진원을 ‘가정’에 다고 있다는 것은 당대 여성의 주요 활동 공간이었던 가정조차 여성에게 가해적이고 위협적인 공간으로 상상되었음을 보여준다.”(가족은 개인의 자살에 대해 강력한 예방력을 갖고 있으나, <김인향전>에서는 그와 같은 가족적 유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한 한상현의 견해(2000, 221~223쪽)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 334쪽 “서술자나 작중 인물의 층위에서 여성 인물의 자살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 비통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여성 인물의 선택이 ‘납득할만한 상상’으로 용납되었으며 당대 여성들의 실제 삶과 밀착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 334쪽 “자살이 처리되는 서사적 방식을 살피는 것은 여성의 정서적, 감성적 승픔과 현실적 고통에 대한 당대인의 기대와 욕망의 상상적 지평을 이해하고 가늠하는 유용한 준거가 될 수 있다.”
- 334쪽 “훼절 위기와 강제혼으로 인한 여성의 자살이 전체의 44%를 차지하고 있어, 여성의 정절에 대한 위협이 극단의 서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상상의 지평이 되며, 정절이 곧 여성의 사회적, 생물학적 생존을 결정하는 ‘생명적’ 사항이었음을 보여준다.”
- 335쪽 (고소설에서) “남성 인물의 자살 비중이 낮은 이유는 그들에게는 현실적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상상적 맥락에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 335쪽 “당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은 사실상 가정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기에 가정 밖에서 현실적인 문제 해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조차도 위해적으로 인지될 경우 여성의 안전지대는 사실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결과 여성 인물들은 ‘자결’이라는 파국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335쪽 “여성 인물의 경우 전체 자살 시도자 중에서 71%가 구원을 받아 소생한다. 여성 인물의 구원자 중 초월계를 제외한 현실적 인물은 사실상 당사자와 ‘가족 관계’를 맺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44%의 구원자가 친족, 배우자(정혼자), 시가의 인물이거나 수양아버지라는 것은 여성 인물을 사회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실제적 관계의 범주에 대한 상상이 가족의 관계망‘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 335쪽 “특히 배우자(정혼자)에 대한 의존률이 가장 높은 것은 남편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했던 당대 여성들의 현실이 투영된 결과”
- 336쪽 “초월적 존재의 힘을 빌려 여성인물을 소생시킨다는 발상은 현실에서는 여성이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자각에 대한 상상적 보완의 의미를 지니며, 여성의 자살이 비극성과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기 위한 기능적 요소로 설정되었기에 이를 소생시켜 서사를 연장하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336쪽 “그것이 ‘초월계’로 선택된 것은 선악의 도덕관념에 의해 운영되는 윤리적 자연관이 투영된 결과”
- 337쪽 “여성 인물은 남편이나 주인을 살리기 위해 다신 죽는 희생형과 자기 처벌형의 경우에만 자살자의 100%가 실제로 죽는다.”
“희생형 자살의 경우는(중략) 작품의 주제를 완성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에, ‘죽음’이 주제 구성의 필수적 요소로 채택되어 자살=죽음‘에 이른다.” - 338쪽 “희생형 자살의 경우는 죽음 이후 자살자가 현실적 보상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김학공전>의 김별덕은 남편을 대신해 죽은 뒤에 정열왕후로 봉해지며, <박만득 박금단전>의 김낭자에게는 열녀문이 세워지고, <탄금대>의 주씨는 선산에 안장되며, <설소저전>은 정렬부인에 책봉된다. 이는 자살이 현실도피나 좌절 등 개인적 의미에서 채택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이념과 도덕을 실천한다는 윤리적, 이념적 차원의 사회적 의미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 337쪽 “자기처벌형 자살의 경우에도 이들의 죽음은 ‘악’에 대한 자기 처벌형 징벌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구원자가 등장하지 않고, 환생도 발생하지 않는다.”
- 339쪽 “‘원귀-환생’의 서사에서 자살자들은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악인이 징치되고 모순이 교정된 이후에 환생함으로써, 자결 시도자의 자살이 부당한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도덕적 주제화 과정을 확보한다. 당사자가 배우자나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작중 인물에게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심리적 안정과, 도덕적 쾌감을 제공한다. 이는 ‘억울함’에 대한 공감과 보상의 필연성에 대한 서사적 요청이 전제된 결과이다.”
- 339쪽 “그러나 이들의 ‘환생’과정에 ‘원귀’가 되어 현실로 귀환해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이는 원귀가 되어 들려주는 ‘음성’이 개인적 사생활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사건으로 펼쳐지기를 원했던 자살자들의 ‘욕망’과 결부되며, 그러한 서사화 과정을 유희적으로 향유하고자 했던 독자층의 기대와 희망을 투영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339~340쪽 “환생의 서사를 포함하는 고전 소설 중에서 자살 원귀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김인향전>, <유최현전>, <장화홍련전>, <접동새>, <정을선전>이 있다. <접동새>를 제외한다면 해당 작품들은 앞선 연구에서 ‘계모형 소설’로 논의되기도 했는데, 계모 갈등이 해소된 이후에도 처첩 갈등이 이어지기 때문에 ‘계모’ 갈등의 요소만으로는 온전한 주제적 접근에 도달할 수 없다.(<유문성전>의 경우에는(중략) 여성 인물의 강제혼에는 친부모가 포함되어 있기에 여성이 ‘공포’를 조성하는 ‘원귀’로 등장하지 않았다.)”
- 340쪽 “여성 인물이 자살하는 계기에 ‘계모’의 박해와 모함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가정 내에서 ‘혈친’으로서의 ‘모성’이 배제되었을 때, 딸의 사회적 생존이 ‘위기’로 인지된다는 발상이 상상적 전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340쪽 “계모의 박해로 자결을 택하는 여성 인물들의 서사는 그들의 사회적 생존이 사실상 ‘모친’에게 의존적이었음을 반영하는 동시에, 소설의 향유층이 미혼 여성의 절대적 생활공간으로 ‘가정’을 상정하고 그것의 폐쇄성이 지닌 불온함을 인지했음을 보여준다.”
- 341쪽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남편이 부재하거나 그로부터 신뢰받지 못했을 때 자결이라는 파국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남편과의 관계가 기혼 여성의 사회적 생존을 지배하는 것으로 상상되었음을 보여준다.”
- 341쪽 “그런 점에서 소설의 향유층이 ‘전실 딸’과 ‘남편에게 보호받지 못한 여성’을 가정 내적인 하위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환생’과 ‘귀환’을 요청함으로써 신원과 소통에 관한 상상적 출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문화적 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342쪽 “해당 작품들에서 타살 형식의 자살을 강요받은 여성 인물들은 현실적으로는 그에 순응할 수 밖에 없었지만 ‘원귀’로 환생하는 형식을 통해 하위 주체의 문화적 위치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형성”
- 342쪽 “원귀의 귀환으로 환기되는 ‘공포’의 정서는 ‘이해’나 ‘소통’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발생하는 차가운 격리와 몰이해의 부당성을 환기”
- 342쪽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처조차 일상의 영역에서 공개하고 나놀 수 없었던 여성의 억압되고 은폐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을 환기
- 342쪽 “그들의 자기 해명적 발화는 죽음 이후에야 허용되며 설득력을 갖는다. 그 과정이 ‘귀신’의 출몰이라는 ‘환상적 서사’의 지평 위에서 전개된다는 것은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제도,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확고한 기반을 전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가해하는 ‘악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억울함에 놓여 있으면서도 자기 해명을 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게 만든 ‘관계론적 지위’와 ‘서열’의 문제, 그러한 것을 삶의 기반으로 수용해 온 ‘제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 342~343쪽 “‘자살’은 갈등의 개인적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귀’로 환생하는 전제 조건으로 작동함으로써, 억울함에 대한 항변으로서의 ‘저항’과 ‘자기표현’, ‘자기해명’의 적극적인 도구가 된다”
- 342쪽 “‘원귀’의 귀환은 그런 개인적 선택을 공적, 사회적 장에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자살자의 원한으로 인해 마을이 폐허가 되고 고을을 담당하는 최고 관리자가 사망하는 흉사가 발생하는 것은 개인적 체험이 공포와 불안을 수반하는 충격 속에서 효과적으로 공론화되어 중앙 권력에까지 전파되게 하는 사회적 효과를 생산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자살 원귀’가 현실적으로 출몰하여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는 과정이 ‘환상적 서사’의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 342쪽 주석 “설화나 야담의 경우에는 자살자가 원귀로 출몰하지 않더라도 가해자의 정치적, 경제적 몰락이나 돌연사 등의 원인이 그와 관련된다는 가정에서 서사가 진행될 경우, 이는 자연스럽게 원귀에 의한 복수나 원한의 징표로 해석된다는 문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이는 당사자가 현실적 해결을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포기했지만, 그 문제는 결코 개인의 죽음으로 덮을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 342쪽 “원귀는 삶의 현실이 추방한 어두운 그림자를 표상한다. 살아서 원한을 갚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의 절박한 위기에 당면한 자는 최종적인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 342쪽 “그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사회적 타살’이다. 이들이 원귀가 된 사회적 맥락에는 뿌리깊은 악의 근원이나 제도적 부패와 모순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 342~343쪽 “원귀의 형상은 모순을 간직한 당대 문화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하고 촉구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당대 문화의 자기 정화력을 보여주는 문화적 표상물인 것이다.”
- 343쪽 “원귀의 형상과 관련하여 고전 서사물, 특히 고전 소설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억울함과 원통함을 안고 자살하여 원귀가 되는 존재가 모두 여성 인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 343쪽 “『정을선전』, 『장화홍련전』, 『김인향전』, 『유최현전』의 여주인공들이 억울함을 안고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현실에서는 자신의 진심을 헤아려주고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해 줄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며, 정교한 악의 그물을 헤쳐 나갈 현실적 대처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모님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기 해명조차 하지 않으며, 부당한 누명이나 박해가 가해지더라도 더 큰 문제를 감수하지 않기 위해 함구하기도 한다.”
- 344쪽 (유최현전의 경우) “계모의 간계로 훼절 누명을 입은 뒤에 남편에게 죄가 없다고 호소하기도 하지만,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 345쪽 “이들이 자기 항변이나 자기 해명의 말을 하는 것은 혈서로 쓴 ‘유서’의 형태이거나 죽기 직전의 ‘절명사’이며, 그 ‘음성/문서’의 ‘청자/독자’도 ‘아버지/시아버지’를 직접 향하지 못하고 ‘청조’나 ‘오라비’, ‘하늘’등에게 에둘러 표현해야 할 만큼 간접적이다.”
- 345쪽 “이들이 ‘원귀’로 돌아와 전달하는 공포스런 음성은 절차를 갖춘 ‘법’을 향해 있다. 원귀가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법의 집행자, 관리에게 나탄 것은 이들이 요청하는 바가 개인적 해원이 아니라 사회적 신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원의 과정에는 가해자에 대한 공적 처벌이 필수적이다.”
- 345쪽 “원한의 서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이끌 만큼의 비극적 서사를 수반하는 동시에 당사자를 위기에 몰아넣은 가해자가 징치되고 자신도 환생하거나 회생하는 해한의 서사를 수반하는 전제적 요건이었던 것이다.”
- 345~346쪽 “자살자가 ‘원귀’로 귀환하는 목적은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장화홍련전>의 경우 귀신으로 돌아와 ‘목소리’를 내는 것은 타살 형식의 자살을 한 장화가 아니라, 언니를 따라 연못에 빠져 죽은 ‘홍련’이라는 것은 ‘자살’의 목적이 신원의 목소리를 얻기 위한 서사적 설정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시킨다.”
- 346쪽 “홍련은 자신의 억울함을 국법에 호소함으로써 누명을 벗는데 필요한 ‘음성’을 전달하기 위하 목숨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음성은 목숨과 맞바꾼 생명의 ‘존재값’이다. 살아 있는 동안 억압되었던 자기 해명의 ‘음성’은 죽은 이후에 ‘공포스럽게’ 탈환되며, 의롭고 용감한 원님을 통해 법적인 신원을 이룬다.”
- 346쪽 “<정을선전>에서도 추년은 계모와 그 친자에 대해서는 공정하고 윤리적인 하늘의 힘을 빌어 처벌하지만, 신혼 초야에 자신의 정절을 의심하여 신뢰를 저버린 정을선에 대해서는 익주 자사가 소저에게 청을 올리는 공식 절차를 거친 후에애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 347쪽 “ 유최현은 계모를 직접 징치하며, 이를 본 아버지도 놀라 세상을 떠남으로써, 사실상 유최현의 죽음에 직, 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가족이 모두 죽음에 이른다. 첫날밤에 신부를 의심한 남편도 왕명을 받아 예의와 절차를 갖춘 이후에야 유최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처리된다.”
- 347쪽 “<김인향전>에서는 귀곡성이 울려 마을이 황폐해지자 왕명을 받들고 온 평안부사에게 인향과 인함이 나타나 억울함을 말하며 사실을 밝히고”(처벌내용 중략) “이후 인향과 인함은 부사를 찾아와 사례하고, 한림에게 정성껏 기원하여 자신들의 환생을 위해 힘쓰라고 권한다.”
- 347쪽 “결국 ‘귀녀들’은 모순된 현실을 교정하고 원억함에 가담했던 당사자들의 처벌과 참회의 과정을 통해 현실로 귀환한다.”
- 347쪽 (접동새에서 강씨 부인이 접동새로 환생하여 아홉 오라비를 부르는 것에 EOG) “이는 강씨 부인을 신원해 줄 가장 유력한 존재인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남편이 없는 기혼 여성의 심리적 의지처는 친정 가족이라는 발상을 보여준다.”
“원덕새로 환생한 교전비도 친정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운다는 것은 여성의 심리적 안식처가 친정 부모와 형제로 상상되었음을 보여준다.” - 348쪽 (접동새에서) “(설원을 이룬)접동새의 죽음이 다른 새들에게 그 타당성 여부에 관한 논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신원’의 궁극적 목적이 ‘완전한 죽음’을 이끈 ‘해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삶과 행복’의 탈환에 있음을 보여준다.”
- 348쪽 “여성 인물은 ‘원귀’가 됨으로써 비로소 은폐된 사생활을 공적 영역에 공개하게 된다. 은폐된 가정의 일상은 공적인 심판 대상이 되며, 억울한 죽음은 ‘신원’의 대상으로 치환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자살’이라는 것은 역으로 여성 인물들의 현실적 공간은 가해적이고 위압적이었음을 노출시킨다.”
- 348쪽 “죽음을 통해 ‘원귀’로 환원함으로써 비로소 ‘표현의 출구’를 찾는 서사적 과정은 하위 주체로서의 여성의 문화적 위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발견하고 성찰하는 문학 공간의 상상적 힘을 시사해 준다.”
- 348~349쪽 “원귀의 존재는 출볼 자체만으로도 현실적 제도나 질서, 원리나 이념에 대한 전복을 의미하는 반사회적 의미를 갖늗다.”
- 349쪽 “원귀의 신원은 모순된 현실이 교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희망의 서사를 구성한다.”
- 349쪽 “여성 인물은 자기표현의 기회나 의사 전달의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소외되지만 결과적으로 환생하여 충열의 칭호를 받거나 열녀로 정려됨으로써, 그들의 자살을 선택하면서까지 저항하려 했던 현실의 모순을 봉합시키는 주체로 자리바꿈하고 있다.”
- 349쪽 “현실적 보상이 오히려 죽음으로써 항거하려 한 현실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를 영원히 유보”
- 349쪽 “작품에서는 이를 ‘권력 관계’의 모순과 불평등의 차원에서 논의하기보다는 성품이 악한 계모와 질투심이 강한 처첩의 개인적 문제로 치환하여 처리”
- 349쪽 “재산 분배라는 경제적 이유나 계모에게 가해지는 소외감, 일처에 대한 열등감 등의 이유가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악한 성품이 그 모든 사회적 요인을 감싸안는 서사적 입장”
- 349쪽 “전처 딸에 대한 계모의 미움을 어질지 못한 자의 본래적 품성이며 본연지성으로 해석함으로써 ‘관계론’은 ‘선악론’으로, ‘사회성’이라는 외적조건은 ‘도덕성’의 내적 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 350쪽 “여성 인물은 일부다처를 허용하고 재가를 허용한 가부장제의 합리적인 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희생자의 위치에 처한다. 계모의 전처 딸이라는 불안한 지위가 아니라 당당한 일처의 지위에 있더라도 순진하고 착한 여성은 끊임없는 음모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 350쪽 “고전 서사에서 원한의 서사는 억울함과 부당함, 그리고 원통함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서사를 전달하는 서술자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원한을 가진 인물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형식으로 당사자의 피해 의식을 정당한 것으로서 승인한다. 그들에게 좌절과 고통을 안긴 가해자를 ‘악인’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원통함은 선과 결백이 좌절되는 데서 오는 정당한 감정으로 처리된다.”
- 350쪽 “‘원한’의 서사가 지극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에 대한 공감과 동정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과정에서 ‘윤리적 차원’의 주제화를 형성함으로써 감정의 윤리적 환치 과정을 유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350쪽 “고전 서사에서 ‘원한’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심리적 경험 안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 351쪽 “한 사회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극단적 가해의 방식과 내용을 성찰할 수 있는 유용한 방식으로써, 원한이라는 짐을 지우는 부당한 삶의 모순이 무엇인지, 그것이 서식하는 삶의 생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351쪽 “그 자리에 ‘여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 하위주체에 대한 서사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상상적 모색을 시도하는 성찰의 매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351쪽 “구원의 메커니즘 역시 여성의 경우 ‘가족의 관계망’을 벗어나지 않아, ‘배우자’와 ‘가족’이 여성의 사회적 생존을 좌우하는 절대적 영역으로 상상되었음을 보여준다.”
- 352쪽 “여성의 자기표현이나 자기 해명이 봉쇄된 현실에 대해 환상적 출구를 통해서만이 문제제기 할 수 있었던 상상력의 지평”
- 352쪽 “진정한 공포와 전율의 진원은 귀환하는 원귀의 서사가 아니라 모순을 배태한 채 강고하게 유지되는 원귀 생산의 사회 현실에 있음을 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