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비용

스토리작가의 페이는 총액에서 비율로 받는다. 보통은 7:3이고(물론 스토리가 3이다), 스토리 작가의 경력이 올라가고 그림 작가는 신인이거나, 스토리작가가 일정 부분  PD의 역할까지 하면 6:4나 드물지만 5:5로 나누기도 한다. (만화 “바쿠만”처럼 경력이 대등한데 대뜸 반 가져가고 그러는 것 아니다. 특히 작년 초~작년 여름 사이에는 콘티를 짜지도 못한 채 소설을 그냥 던져주면서 “스토리작가”를 자처하는 일부 장르 작가들이 페이는 6:4나 5:5를 가져가며 신인작가를 착취하는 이야기도 꽤 들었는데 아 쫌.)

여튼 나도 사람인데 내 페이가 올라가면 기쁘고 그걸 신경 써 주면 고맙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내 페이를 올려주겠다고 제안한 업체들이 대부분 총액은 고정한 채로 비율만 조정해 주겠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총액은 신인작가 혼자서 작업하는 기준으로 고정한 상태로, 내 경력을 존중해서 그림작가의 몫을 축내겠다는 말이 되는데.

이건 역시 곤란한 것 같지.

물론 경력이 비슷한 두 작가가 일한다면 7:3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경력과 신인이 같이 일할 때는, 이를테면 7:3으로 나눴을 때 신인 그림작가가 가져가는 몫을 고정한 채로 내 페이 부분만 올려서 6:4로 맞춰준다면 그건 크게 불합리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신인작가 한 명이 글 그림 다 할 비용을 쪼개면서 저렇게 주겠다고 하면, 내 동업자의 몫은 줄어든다. 내가 받는 돈은 몇 푼 늘어날지언정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 아니 시발 줄일 걸 줄여야지, 발열 옥장판처럼 뜨끈뜨끈한 태블릿 안고 사우나같은 한여름 염천에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대체 이슬만 먹고 살라는 거야 뭐야.

여튼 그런 식으로는 계약할 수 없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은 7:3으로 그냥 가 준다. 가끔 오, 얘는 깎아도 되는 앤가보다 하고 더 깎으려 드는(……) 잡놈도 한둘 봤지만 그런 데랑은 일하는 것 아니고. 가장 만족할만한 케이스는 서류상에 7:3으로 계약하되 총액을 조금이지만 인상해 주고, 자료비의 일부를 (수당처럼) 지원해서 실질적으로 다른 데의 페이 기준으로는 3.5 정도 받는 식으로 한 것. 케이스가 하나 생겼으니 앞으로 “음, 딴데서는 이렇게 했고요.”하고 써먹을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여튼, 나는 건드리는 것도 많고 회사도 다니니까, 즉 조금은 덜 구애받으니까 그러는 것도 있긴 있다. 하지만 내 페이를 더 받는 일에 무관심하진 않다. 일단 경력이 올라가면 페이도 올라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헐값”취급을 받기도 하고. 그리고 스토리 쪽을 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 특히 신인 스토리작가에게 경력이 쌓이고 실적이 쌓이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그들의 앞날에 엿을 먹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할 수 없지.

여튼 그런 관계로, 요즘은 계속 말을 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내 실적과 경력을 인정해서 그걸 페이에 반영해주고 싶다면 계약서에 명시한 비율을 조정하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당신이 생각하는 내가 받을 적정 금액에 맞춰서 전체 페이를 약간 올려주면 좋겠다고. 내 글값을 협상하는 게 쉬운 일도 내키는 일도 아니긴 하지만,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져라도 볼 일이다 싶어서 작년부터는 그렇게 하고 있다. 동업자가 부귀영화는 못 누려도 한여름에 태블릿 안고 일하면서 전기세 걱정은 안 하고, 마감하고 나면 치킨 뜯고, 그림작업의 마중물같은 덕물품도 좀 지르면서 잘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소설을 쓰는 전혜진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지만 만화를 하는 전혜진은 내 동업자들 없이는 독자를 만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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