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의 맛 – 신이현, 김연수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신이현 작가가 썼고, 텀블벅 펀딩으로 구입한 책. 독립출판물이 아니라 우리나비 출판사에서(“불편하고 행복하게”와 “마당씨의 식탁”, 그리고 오사 게렌발의 단행본도 출간한 회사다. 부천만화축제때 가면 기업부스 쪽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나온 책이라 온라인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펀딩에서는 “루시와 레몽의 집”과 이 책, 그리고 에코백을 함께 구입할 수 있었다. (펀딩 금액에 따라 알자스식 점심식사 옵션이 붙은 것도 있었지만, 일단 내가 선택한 건 에코백 까지만.)

컴퓨터가 아니라 무른 연필이나 콩테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선이, 읽는 내내 따뜻한 느낌을 주어 반가웠다. 컴퓨터 그래픽이 만화가들의 노동을 얼마나 단축시켰는지 알지만, 한편으로 수작업이 주는 힘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이 부드러운 선이 그려내는 신이현 작가의 알자스 시댁 식구들과, 시어머니 루시가 차려내는 풍성한 음식들의 모습은 정말 평화롭고 행복해 보여서, 마감 때문에 정신이 없었음에도 앉은 자리에서 두 번을 읽고 일어났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시골 생활이나, 킨포크 책에 나오는 것 같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풍성한 식탁 같은 것에 대한 동경은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인데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부러웠던 건 계속 묘사되는 풍성한 식탁보다는, 시어머니 루시였다.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요리솜씨 좋은 시골 아주머니. 요즘처럼 세계가 다 연결된 시대라 해도,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 동양인 여자와 결혼했을 때 아무래도 놀라기도 했을 텐데도, 루시는 멀리서 오는 도미와 현 부부에게 다정하고 넉넉하다. 물론 프랑스도 꽤 보수적인 나라고, 게다가 여긴 지방이니까 특히 더, 아들들은 좀 더 떠받들어 키우고 딸들에게는 집안일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게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루시는 현에게 딴건 몰라도 도미의 셔츠 정도는 다려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루시는, 자신이 알지도 상상해 본 적도 없을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물어보고, 루시가 보기에는 영 살림을 못하는 자신의 며느리가 알려주는 한국식 먹거리들, 호박잎 같은 나물들을 시험해 보기도 한다. 아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여기 정착하면 어떻겠니, 이 집을 물려받으면 어떻겠니 하고 물어보면서도, 아들과 며느리의 인생을 존중한다. 시댁을 인생에서 몰아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시어머니들이 여기 묘사된 루시와 같다면, 그래도 시가, 시어머니라는 단어가 그렇게 끔찍하게 들리지만은 않을 텐데. 그래서 이 만화는, 어떤 면에서는  알자스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내던 부지런한 루시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책이다. 그런 점에서는 맹렬 이탈리아 가족, 이탈리아 가족 풍림화산(야마자키 마리, 대원씨아이)와도 비교해 볼 부분들이 꽤 있고. 그러고 보니 야마자키 마리는 결국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만화도 따로 냈었는데, 언젠가는 알자스 “요리”에 대한 책이나 만화도 더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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