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탐험대 옥토넛

바다탐험대 옥토넛

바다탐험대 옥토넛은 꼬꼬마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가 이젠 내가 더 열중해서 보고 있는 디즈니 주니어의 애니메이션이다.

꼬마버스 네 대가 오프닝에서부터 친구와 함께라면 언제나 즐겁다며 네 대가 나란히 길막을 하고 다니고(그것도 터널에서), 그나마 타요는 주인공이라 장난을 치고 나서도 반성이라는 것을 할 줄 알지만 로기는 라니나 타요를 놀리고 괴롭히거나 다른 어른 차량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도 반성을 모르며, 여자아이인 라니는 겁 많고 약하고 나중에 나온 분홍색 승용차(얘는 이름도 까먹었다. 너무 옛날옛적 여자아이 스테레오 타입이라 이름을 기억할 의욕조차 남지 않았다)를 질투하기나 하는 등, 이렇게 유해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걸 우리 애에게 보여줘도 되나 싶은 꼬마버스 타요라든가, 역시 1기를 제외하면 성역할 구분이 너무 뚜렷해서 애들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유교맨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가 싶은 뽀로로라든가(그러나 이쪽은 에디 때문에 그냥 참고 있다. 흑흑, 우리 똑똑하고 총명한 공학너드계 사막여우가 그 눈 쌓인 동네에서 덜떨어지고 싸가지도 없는 뽀로로에게 치이며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역시 그런 점에선 성비부터 시작해서 한 점도 나을 게 없는 로보카 폴리와는 분명히 말해서, 다르다. 한국의 영유아용 애니메이션이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전적 성역할 강조라든가, 유교맨적 사고방식을 깔고 있는, 20세기의 끝물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에 비하면, 옥토넛의 세계는 적어도 21세기가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옥토넛의 세계에서는 침착하고 지혜로운 캐릭터들이 모험을 펼치며, 여성 대원들이 특별히 더 겁이 많은 것도 아니다. 트윅은 아삭아삭 당근파워로 힘을 내며 수많은 장비들을 만들고, 대원들이 망가뜨리는 장비들을 고치는 유능한 엔지니어고, 대쉬는 멋내는 걸 좋아하고 기계조작도 능숙하다. 성향은 다르지만 두 대원 모두 무척 유능하며, 멋을 내거나 간식을 좋아하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들의 취향일 뿐이지. 역시 성비로 따지면 남성 캐릭터가 많긴 하지만, 주요 멤버 중에는 성소수자로 추측되는 캐릭터도 있다. 바나클 대장은 자기 손으로 옥토경보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부지런하고 솔선수범하며 자신과 다른 종이나 성별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일을 대화로 풀어가려 하는 훌륭한 리더다. 콰지는 페이소나 다른 대원들에게 종종 겁을 주지만, 겁을 줘 봤자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게 매번 밝혀지고, 대원들은 두려움 대신 새로운 생물에 대한 지식을 갖고 돌아온다.

바다탐험대 옥토넛
바다탐험대 옥토넛

물론 구석에서 쿠키를 굽고 있는 베지멀들(튜닙을 비롯하여)을 보면서 다른 종족을 가정부로 쓰고 있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셸링턴이 구조한 알에서 태어나 셸링턴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우리와 의사소통은 되지만 어리고 철없는 낯선 생물들이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예제를 한 톨도 떠올리지 않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베지멀들만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이들이 굽는 쿠키가 정말 많은 에피소드에서 대활약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노예제 보다는 어린이 만화에서 아이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어린아이 캐릭터”를 베지멀들이 맡고 있다고 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고민의 여지는 좀 남아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서, 바나클 대장은 신사적이고 멋지며, 난 어른이지만 저런 침착한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신사이지만, 최애캐를 한 명만 고르라면 역시 페이소다. 페이소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하지만 아픈 환자가 있을 때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서는 작은 펭귄인데, 그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극성스러우며 자식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희망사항을 밀어부치는 엄마와, 철딱서니라고는 없이 형이 최고고 뭐든 다 해 줄 거라고 주장하는 동생 핀토가 있다. 그 엄마와 동생의 등쌀에,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고 한번 꿈꿔보지도 않았던 펭귄 3종경기에 나서서, 엄마와 핀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페이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왜 ‘사랑하는’ 대가족을 떠나 이곳 옥토넛 대원이 되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다 그의 사촌이 하필 다른 펭귄들을 잘 공격하기로 소문난 아델리 펭귄이라는 에피소드까지 보고 나면, 페이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식에게 많은 기대와 의존성을 보이는 부모와 남자다움과 힘을 숭배하는 가족 분위기 속에서 똑똑하지만 체구가 작고 소심한 어린 페이소가 마음고생을 하다가, 더러는 사촌인 아델리 펭귄에게 괴롭힘도 당하다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기 위해 옥토넛 대원이 된 게 아니냐는 짐작까지 하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게다가 성소수자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뭐 물론 나는 페이소가 누구와 섹스하든 누군가를 필살 붕대감기로 묶어놓고 억지로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진 않으니 그 이슈에는 크게 흥미가 없지만) 이 수줍고 작은 펭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을 보냈을지…… 아이고, 페이소!!!!!

한편 나는 트윅도 무척 좋아한다. 귀까지 표정의 일부가 되는 이 솔직하고 영리하고 손재주 뛰어난 토끼는, 엔지니어 캐릭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물론이고, 우리 꼬꼬마가 “아삭아삭 당근파워!”를 외치며 당근을 있는대로 집어먹게 만든 훌륭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꼬꼬마가 트윅을 처음 봤을 때(털 빛깔과 같은 탁한 쑥색 수트에 허리띠를 매고 있다) “쟤 팬티만 입었어!”라고 말한 것에 좀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난 페이소가 옷 갈아입는 장면에서도 놀랐었구나. 하여튼.

바다탐험대 옥토넛
바다탐험대 옥토넛

여튼 이 옥토넛을 한줄로 소개하라면, 나는 “바다에서 동물 대원들이 벌이는 스타트렉같은 모험” 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험가 콰지와 침착냉정한 바나클, 그리고 의사인 페이소라고 하면 오리지널의 3인방을 떠올리게 되니까. 탐험, 보호, 구조를 외치는 이 셋을 보고 있다보면 스타트렉의 포맷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콰지는 노랑, 바나클은 하늘색이 주조색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노리고 만들면서, 바나클을 대장으로 만드는 식으로 변형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치면 베지멀들도 스타트렉에서 스코티의 동료인 킨저같은 느낌으로 볼 수도 있겠다.) 매번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서, 새로운 생물들을 만나고, 오해가 발생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아마도 어려서 옥토넛을 보던 아이들은, 커서 스타트렉 입덕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지 아니한가. 여튼 오늘도 퇴근하고 나면 꼬꼬마와 함께 앉아서, 옥토넛 노래를 부르고 대원들 소개 마지막에 튜닙이 튀어나올 때는 함께 손을 반짝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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