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디텍티브 : “오피셜” 찰스 그레이 경감의 일생

간만에 레이디 디텍티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리해 둡니다. 제가 원작자이니 이것은 공식이 됩니다.

  • 찰스 그레이 경감은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아들들에게 교육을 시킬 수 있을 만큼의 교구를 가진 목사 집안의 셋째아들이다. 장남과 차남은 목사가 되었지만, 삼남인 찰스에게 물려줄 것 까지는 없었고, 그는 목사가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다.
  • 찰스 그레이 경감의 어머니는 앤드루 R. 케네스의 어머니와 자매다. 장녀는 그레이 목사와 결혼했고, 막내딸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부유한 출판업자인 케네스와 결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촌이지만 나이차이는 꽤(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경감이 워낙 동안이라 외관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 찰스 그레이 경감은 리지를 만나기 전 약혼녀가 있었다. 당시 물려받을 게 없는 신사 계급의 둘째, 셋째아들들이 흔히 군인이 되었듯이 그도 군인이 되어 아편전쟁에 참전했다. 하지만 찰스의 약혼녀는 찰스가 아닌, 목사로서 교구를 물려받은 찰스의 친구와 결혼했다. 찰스는 돌아와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와 결투를 벌이려 했지만, 앤드루가 뜯어말려서 결투만은 피했다.
  • 찰스 그레이 경감은 가끔 생각한다. 그때 결투를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전쟁 영웅이라고 해도 적법하지 못하게 사람을 죽인 몸으로 공직을 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고맙다는 말 대신 가끔 앤드루에게 일없이 술을 사곤 한다.
  • 약혼녀의 배신과, 그 다음에 연금을 노리고 접근한 여자 때문에, 경감은 결혼할 생각을 깨끗이 단념했다.
  • 경감의 어머니는 목사의 아내로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방탕한 여성이었다. 그는 여성의 지성을 존중하지 않고, 여성은 놀기 좋아하고 생각이 경박한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 리지를 만나고 그는 여성을 혐오하고 편견을 가졌던 것을 시인하고, 처음으로 자신보다 나은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 감정은 일종의 숭배가 된다. (뭐, 21세기로 치면 혐오보다는 낫지만 숭배라고 딱히 좋은 건 아니긴 한데 19세기라는 점을 감안해 줍시다)
  • 리지의 약혼자인 에드윈 화이트가 별 볼일도 없고, 정말로 셔터맨…… 아니, 리지의 집사 노릇에만 만족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어떻게든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 것이라고 가끔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앤드루 화이트의 지성과 품위에도 홀딱 반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성을 지닌 리지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누구보다도 훌륭한 신사가 된 에드윈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 레이디 디텍티브 6권 이후 리지는 에드윈과 결혼했다.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둔한 그녀는 경감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사모하고 있는 것은 몰랐다. 그녀는 결혼식 직전 구두에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부적인 6펜스 은화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경감에게 동전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 결혼식이 끝난 뒤 경감은 리지의 결혼식 부적이었던 6펜스 은화에 구멍을 뚫어 시계에 매달고 다녔다. 죽을 때 까지.
  • 찰스 그레이 경감은 일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은퇴 전에는 런던 경시총감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 한달에 한 번 정도, 구체적으로는 젠틀맨즈 오운의 마감이 끝나고 난 그 달의 마지막 휴일마다 찰스 그레이 경감은 여왕의 상담 변호사가 될 만큼 출세한 변호사 에드윈 화이트의 집에 방문하곤 했다.
  • 리지는 결혼 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으며, 장녀인 엘리자베스, 장남인 윌리엄, 차남인 에드워드, 막내딸인 알렉산드라를 낳았다. 이 중 엘리자베스와 알렉산드라의 대모는 알렉산드라 황태자비였다. 장남인 윌리엄은 리지의 아버지이자 에드윈의 은인인 피츠윌리엄 뉴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경감은 리지와 에드윈의 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삼촌과도 같은 입장에서 지켜보았다. 한때 그들이 매우 가깝게 지낼 때의 소중한 친구였던 제임스 모리어티가 사실은 범죄자로 밝혀진 이후로, 경감과 마이크로프트, 리지의 관계에는 다소 어색한 부분이 생겨나 있었다. 다만 에드윈은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태도로 그들 모두를 종종 집으로 불러들였다.
  • 말하자면 경감이 화이트 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루시 마네트를 사랑하던 변호사 시드니 카턴이 종종 루시와 찰스 다네이의 집에서 어색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 리지는 결혼 이후에도 경감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곤 했지만, 경감은 리지에게 부탁하는 것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모리어티 사건 이후로, 자신이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는 생각에 그는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
  • 그는 평소에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지만, 나이가 든 어느 날 앤드루가 “두 도시 이야기”를 건네주어 끝까지 읽고, 손수건을 적시도록 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책을 읽으며 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눈치채게 하지 않는다.
  • 그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드니 카턴이 루시를 위해 단두대에 올랐던 것 처럼, 리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여간 프랑스 놈들은 무식해서 못 써먹겠다니까. 고결한 영국인과는 다르지.”하고 결론을 내렸다.
  • 그의 일생의 실수는, 귀여운 것 말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레레를 순경으로 입직시킨 것이었다. 레이디 디텍티브가 6권으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60권 정도까지 갔다면 레레는 틀림없이 영국을 위기에 빠뜨리고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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