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돌봄노동

트위터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다. 부모님이 편찮으시자, 형제들이 혼기 넘긴 미혼 딸을 강제로 회사 그만두게 하고 간병인 노릇하게 만들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종종 듣는 이야기인데, 나는 늘 그 다음이 궁금했다. 그래서, 멀쩡히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게 했으면 그 가족들은 그녀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노인 돌아가시고 나면 그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자기 형제를 노후준비는 고사하고 원래 다니던 직장보다 한참 열악한 곳에서 힘들게 일하게 만들고, 가난한 독거노인으로 만들 게 뻔한 짓을 해 놓고, 그 가족들은 고작해야 시혜적인 손길로 조금 도와주기만 해도 착하다는 소리 듣고 살 게 아닌가 싶어져서.

그러니 냉정한 이야기지만, 다른 형제자매가 있는 상황에서 “비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병든 가족의 간호를 독박으로 뒤집어쓰게 생겼으면 혈연이고 뭐고 팽개치고 도망가는게 답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다음은 딸이나 며느리에게 화살이 돌아가긴 하겠지. 어떤 점에서는 전혀 문명국같지도 않고, 21세기같지도 않은 이 나라에서는 돌봄노동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같이 책임질 준비가 아직도 안 되어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출산을 하고 150일쯤 지났을 때, 친정어머니가 입원을 하셨다. 수술이 좀 컸지만 깔끔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곧 나오시고, 가족이 같이 돌봐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나는 굉장히 봐준다는 듯한 느낌으로, 내가 아이만 안 낳았어도 회사에 휴가를 내든가, 어머니 병세가 악화되면 아예 그만두고 와서 간병했어야 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참고로 그때 우리 집에는 미취업한 남동생이 있었고, 은퇴하신 아버지도 계셨다. 그리고 그 상황은, 아버지가 간병을 한다고 오셨으면서도 보호자용 이불 한 채 챙겨오지 않았다는 말에 한 팔에 애를 끌어안고, 큼직한 다이소 짐가방에 이불부터 리스테린, 심심할 때 보실 책까지 싹 꾸려넣은 보호자용 짐가방을 만들어서 택시타고 병원 달려가서 짐 풀어놓던 중의 일이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아이가 없어도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간병인을 쓰겠다면 돈은 보탤 수 있지만, 자식 손에 맡겨야 한다면 출근 안 하는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고 나왔다. 물론 구직중인 자식이 개호를 독박 쓰는 것도 말은 안 되지만,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일도 하는 딸이 직업 없는 아들보다 우선순위로 고려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데다 그때, 나와 세이는 병원비에서 할인받을 구석, 돌려받을 구석은 다 체크한 뒤, 병원비로 꽤 적지 않은 금액을 내고 왔었다. (약 80% 정도 냈지) 사위까지 세지 않더라도, 내가 이 집 자식들 중 제일 많이 벌고 잘 버니까. 하지만 그렇게 능력이 좋으면 뭘합니까. 싸가지 없는 딸인데. (웃음) 아마 아들이 병원비를 그만큼 부담해 줬다면 만고의 효자라고 소문이 났을 것이다.

자, 여튼 이 이야기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생각에, 어머니께서 상태는 좋았지만 큰 수술을 하신 뒤이니 좀 더 케어를 받으셔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퇴원하면 아버지나 남동생이 제대로 케어를 할 것 같진 않아서, 내가 먼저 말씀드렸다. 내가 돈을 낼 테니 요양병원에 한달쯤 가시면 좋겠다고.

돈 아깝다고 거절하셨다. 음? 그럼 두어달 주 2회 가사도우미를 보내드릴테니 집안일 하지 마시라고 했다. 역시 돈 아깝다고 하셨다.

나는 이 대목에서 꽤나 화가 났는데, 그러니까 내 노동력은 요양병원 입원비나 가사도우미 비용보다 싸구려로 보였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다 여기서, 내가 와서 가사를 좀 돌봤으면 하는 의사를 아버지께서 비치신 게 특히 결정적이었다. 나는 내 집 살림도 다 못해서 가끔 사람을 쓰는데, 무슨 수로 친정 살림까지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직업이 두 개라고! 글 쓰는 일 까지는 세지 않더라도(아니,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사회 초년생보다는 잘 벌고 있다), 낮에 회사에서 벌어오는 것만으로도 자식들 중 제일 잘 버는데, 편찮으신 건 어머니인데 왜 아버지 판단력은 퓨즈가 나가버렸나 싶었다. 여튼 퇴원하는 날 가봤더니, 그동안 두 남자는 밥을 못해 햇반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걸 불쌍하다고 눈물 지으셨으며, 남동생은 어머니가 퇴원하셨는데 햇반을 돌리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다 못해 저녁을 차리려 일어나시려 했고.

보다못한 세이가 자기가 밥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말렸다.

사실 우리 부부와 친정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세이는 그날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처갓집 문턱을 넘어본 날이었는데, 며느리든 사위든, 처음 가자마자 밥을 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 그냥 우리는 햇반이나 먹는 무리들을 두고 조용히 산더미같은 약들을 카테고리별로 먹을 날짜와 시간별로 분류해 드린뒤 퇴각했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여튼 조리원에 들어가서 2주동안 푹 쉬면서 손목만 열심히 움직여 조리원비를 벌어 나온 나로서는(웃음) (그리고 손목은 지금도 안좋다.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2주 내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 것이다) 대체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조리원에서 조리원비도 벌어 나오는 강철의 집필노동자에게, 돈을 벌어 부모님을 부양하라는 요구도 아니고, 간병을 하라는게 말이 되냐고. 차라리 돈을 더 벌어서 간병인을 쓰게 해 드릴 수는 있는데! 기회비용이라는 것 모르세요?! 이런 느낌. 돌아가며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각해 보겠지만, 내게 독박으로 떠넘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딸의 노동력은 공짜라고 생각하는 게 아주 인이 박혀 있는 말투와 분위기여서, 그야말로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참았지 사실 내 원래 성격대로라면 한번 뒤집어 엎고 왔을 일”이긴 하였다. 여튼 이럴땐 아들들이 부럽다. 아들들은 직접 돌봄노동을 하지 않고 돈만 내도, 아니, 돈도 못 내고 “엄마~~~~”하고 울고 짜기만 해도 효자 소리를 듣는데. 누구는 그만큼 돈으로라도 챙겨도 일 그만두고 퍼뜩 달려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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