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세간에는 “논스톱같은 대학교 배경 청춘 로맨스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참혹하게 끝난 첫사랑 내지는 엔딩이 막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묘한 만화책. 사실 나는 엔딩에 120% 공감했기 때문에 왜 엔딩이 막장이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다시 왜 엔딩이 막장인지 설명을 들어도 머리에 꽂히지 않는 상태다. 누가 내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해 줬으면.
이 만화는, 재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철저히 재능에 이끌리고 있다. 물론 아유미가 마야마를 좋아하거나, 마야마의 상사이기도 한 능력남 노미야가 미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야마를 껄끄럽게 느끼는 동시에, 아유미에게는 호감을 갖는 것은 재능만으로 볼 수는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여튼 이 만화는 아유미의 사랑의 작대기가 문제인 게 아닌 만화지 않나.
이 만화에는 여러 방향과 크기의 재능들이 나오지만, 제일 중심이 되는 것은 모리타 선배와 하구미의 재능이다. 둘은 일찍부터 재능이 개화되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면에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 지속 가능한 천재 과. 물론 방향은 다르다. 모리타 선배는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하고 밖으로 쏟아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꼼지락거리며 계속 뭔가 만들어내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심지어는 간장을 테이블에 흘렸는데도 그거갖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인간이다. 하구미는 모리타 선배 이상의 재능을 가졌지만, 그녀의 방향은 자기 안을 향해 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쌀 사고 물감 살 정도의 돈을 벌면서, 조용히 그림만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상을 받거나 주목을 받는 것은 재능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이벤트이지만, 그녀는 이런 이벤트를 즐기지도 않는다. 하구미의 친척인 하나모토 교수는 그녀를 보호하고, 아끼고, 그녀의 재능을 사랑하는 동시에 염려한다.
아무리 그려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지도 몰라.
그래도 손을 쉴 수는 없어.
평생 마음을 쉴 수 없게 될 지도 몰라.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큰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은 행복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안을 계속 깎아내고 갉아내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니. 벡터가 내면을 향해 있는 하구미에게는 그 고통도 클 수 밖에 없다.
도달하고 싶은 곳을 가졌을 때
무아의 마음으로 그릴 힘을 잃었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라는 말은 아름다워.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구성해내던 하구미는, 자신의 내면이 성장하고 바뀌어 나가며 벽을 마주친다. 그녀는 작업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타케모토는 생각한다.
하느님, 하고 싶은 일이란 게 뭐죠?
그건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는 거죠?
그걸 찾으면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우는 것과
그걸 찾지 못해서 우는 것중에
어떤 게 더 괴로운가요.
(그랬다. 사실 나는 타케모토를 “하구미를 사랑하는 짝사랑 순정남 1” 정도로밖에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에 타케모토의 자아찾기가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놈의 자아 어디다 맡겨놓았나.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왜 이런 걸로 한 권 넘게 전개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니와 클로버는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는, 그래서 뭔가 남기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딱 한번 신을 보았다.
그녀가 성장하고 마침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을 때, 화가에게는 목숨만큼 귀중한 손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시련을 던져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일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자리에서 이 목숨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또한 예술을 하려는 이에게 지탱이 되는 상대는, 다정하지만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부족한 “평범한 남자”도, 그녀의 재능을 알고 인정하고 있지만 그녀를 뮤즈로 만들어버릴 지 모르는 “또 다른 천재”도 아니었다는 것도.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하나모토 교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수님, 산다는 게 뭐야?
숨 쉬고 밥 먹고,
나머지 시간은 뭘 하면되는 거야?
모르겠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남의 재능을 뼈아플 정도로 알고 이해하고 동경하지만, 그 자신은 그걸 갖는 대신 서포트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그들의 재능을 미친듯이 사랑했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 결혼해버렸고, 그리고 사고로 죽어버렸다. 하나모토 교수는 남은 사람을 위로하며 북돋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런 그에게 친척이자, 그가 갖고 싶었던 그런 재능을 지닌 하구미가 나타난다. 그는 하구미의 재능이 구김살없이 개화되는 것을 보고 싶지만, 그런 것이 자신의 욕심은 아닐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하구미가 선택한 것은 그런 사람이다.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 자상하고 의지가 될 만한 사람. 그녀의 재능에 상처입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 단순히 “예술하는 여자에게는 사회적 재정적으로도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유리해서” 그를 선택한 게 아니다. 모리타를 선택했다면 그녀는 뮤즈가 되었을 것이고, 타케모토를 선택했다면 그녀의 재능은 그를 상처입히든가, 혹은 좌절되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어떻게 읽든 이 이야기의 대표 주인공은 타케모토다 보니, 이 만화의 결말에 대해 말들이 많은 모양이지만.
이보다 더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은 없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을 지녔지만, 생활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살아가면서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이 만화에서 로맨스 같은 것은 그저 당의정일 뿐, 이 만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재능에 대한 것이다. 재능을 가진 자, 그걸 알아보는 자, 동경하는 자, 그런 자들의 나약함과 성장과 선택. 모리타가 매력적이긴 해도, 그가 하구미를 모델로 – 영감을 얻어 –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그의 사랑의 작대기는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댓글
“허니와 클로버 – 우미노 치카, 학산문화사” 에 하나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