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읽었던 경성탐정록의 속편. 전작보다는 좀 짧지만, 표제작인 “피의 굴레”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다소 무리가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도, 수학이 결합된 암호트릭이 풀리는 순간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니까.
전권과 이번 권을 읽는 사이, 많은 변수들이 생겼다. 일단 셜록 홈즈를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바꾼 BBC의 드라마 “셜록”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한편 이 책을 읽은 나는 그 사이 “레이디 디텍티브”라고,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가 잔뜩 들어간 추리만화를 쓰고 있다. 그런 점이 이 책과 전작을 읽는 데 좀 영향을 끼쳤을까. 문득 어지간해선 연락할 일 없는 가족 생각이 좀 났는데. 아직도 셜록 홈즈에 대한 패러디 또는 오마주를 그렇게 간단히 쓰레기라고 치부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너는 내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 만화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계열 전부를 쓰레기로 매도할 수도 있을 테지만.)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번 권에는 경성을 누비는 탐정 설홍주의 배경이라든가, 이 시대의 배경이 좀 더 드러난다. 일단 피의 굴레는 사의 찬미를 연상하게 하고, 설홍주의 형님이 상해 임시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고등계 형사들이 그런 이유로 설홍주를 요시찰할 것을 걱정하는 레이시치 경부의 태도라든가 그런 것은 문화통치에서 민족말살 통치로 넘어가는 시기의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셜록 홈즈가 화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반면 여기의 설홍주는 도쿄대에서 수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나온다. (사실은 그래서 좀 뜨끔했다. 레이디 디텍티브에도 수학적인 전개가 좀 나올 거라서. 여기 영향을 받을 건 아니고, 애초에 원작에서 모리어티가 수학교수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렇게 들어갈 것이지만.) 그렇다면 속편에서 모리어티가 나온다면, 설홍주가 수학과 출신인 것이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궁금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