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의 일기인 “치열하게 피는 꽃 이치요”를 읽었다. 딱 천재 작가로 잘 나가려던 24살에 병으로 요절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일본 지폐에 그 초상화가 실릴 정도의 작가. 2005년까지는 이 작가의 책이 정식으로 들어온게 없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만화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은 이 작가의 작품을 적어도 하나는 안다.
유리가면에서 전국대회 예선에서 마야와 아유미가 각각 열연했던 “키 대보기” (국내 소설판 “키재기”)가 바로 이 사람의 소설이니까. 죽기 1년 전인 23살에 써서, 상까지 받은 소설이다.
뭔가 작가로서의 마음가짐이나 그런 것보다는….. 사실 돈 떨어졌다, 원고료 들어왔다, 그런 내용들도 꽤 많고. 나이 때문이겠지만 제대로 고백하지 못했던 연정에 대한(나카라이 선생) 대목도 생각보다 많았다. 이런저런 일들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 그 나이에 요절하였으니, 읽으면서도 마음이 안타깝다. 무슨 생각을 하며 죽었을까. 죽을 때, 쓸 것이 더 있는데, 하고 아깝지는 않았을까.
키재기도, 만화에 나온 그 내용이기는 하지만 만화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읽는 내내, 절망이 느껴지는 소설, 풍경화처럼 잔잔하고 애틋한 어린 시절의 추억같은 이야기인데도, 절망적이다. 아마도 그 생계와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하지만 일기를 읽는 내내 느껴진 것은 그 자존심이었다. 일기 전편도 아니고, 매 해의 일기에서 몇개씩만 뽑아서 묶은 것일텐데도, 그런 성격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설보다는 남의 수필이나 블로그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더 드러나듯이 말이다. 이 일기에서도 키재기에서도 시종일관 드러나는 것은 절망이었지만, 일기 쪽에서는 그래도 그녀가 절망과 싸우며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하였다. 그 시대에 여자가 소설을 쓴다는 것도 그렇고. 용감한 여자였겠지.
도서관에 이 작가의 소설인 “해질녘 무라사키”도 들어오기는 했는데, 그건 쓰다가 말고 죽었다-_- 고 들어서;;; 패스. 트리브라를 내가 왜 안보는데.
ps) 그런데 저 “꽃”은…… 본인이 붙인 건 아닐 텐데. 왜 꼭 꽃이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