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비를 기준으로 두면,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로워진다. 가비는 “물질적인 풍요에 놀라지만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풍요를 즐기고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을 초연히 두고 돌아서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줏대를 지켜나가며 일침을 가하여 마침내 부유한 셀럽을 변화시키는” 캐릭터도 아니다. 그녀는 조바심내며 갈망하고, 우연한 만남을 어떻게든 동경하는 셀럽과의 인연으로 만들어보려 애쓰며, 그러기 위해 열심히 거짓말을 거듭한다. 네일샵의 직원인데도 자신이 사장이고, 부모님이 이 건물 건물주라는 식으로 말하고, 진주가 떨어뜨리고 간 반 클리프 아펠의 신상 팔찌를 (돌려줄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고는 하나) 돌려주지 못하고 제 것인 척 한다. 그녀는 속물이고 어리석기까지 하다. 독자가 이입할 수 없을 만큼. 진주의 중고 명품 가방을 손에 넣기 위해 월급을 가불하는 것도 모자라, 한나가 들던 버킨 백을 사기 위해 살던 집 보증금을 날리기까지 하는 가비에게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트렌디 드라마의 “평범한 여주인공”과 달리 셀럽의 세계에 휘말리는 내내 독자가 사랑할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공감성 수치를 느낄 수는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의 세계를 관통하는 사람이 수정이다. 원래는 부유했던, 하지만 몰락하여 술집 여자가 되었던 사람. 진주를 만나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인스타 셀럽 중 하나가 되고, 쇼핑몰을 차려 명품 스타일 짝퉁들을 파는 사람. 어쩌면 가비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었을 사람. 초반에 마치 가비의 운명에 대한 복선이라도 될 것 처럼 투신 자살한 이웃집 여자는 원래 수정의 쇼핑몰 모델이었고, 수정의 이웃이었다. 어쩌면 수정과 가비는 논현동 원룸에서 이웃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여왕벌과 무수리들, 셀럽들의 캣파이트, 클럽과 호텔에서의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가비가 네일샵에 출근하지도 않고 욕망에 휘말려 일상을 저버리는 바로 그 때, 이야기는 폭로계정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의 누군가가 음해하기 시작하며 급변한다. 피해자들의 상처가 가해자의 소소한 취미”가 되고, 그 폭로가 사실은 “단지 삶이 너무너무 지루하고 무료해서” 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무렵에는, 타인의 삶을 관음하고 욕망하며, 타인의 욕망까지 욕망한 다음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 보여주는 정신적인 파산상태임을 보여준다.
진주는 귀하게 여겨지는 보석이지만, 그 시작은 이물질이었다. 이물질에 수없이 많은 외투막이 입혀지고, 그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형태와 모양을 이룰 때 귀보석으로서의 진주가 완성된다. 수정은 보석처럼 빛나지만 기껏해야 준보석이다. 그리고 조가비, 조개는 보석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에서부터 어느정도 정해져 있던 이야기는, 마침내 가비가 계정을 닫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네일샵으로 돌아가며 종국으로 향한다. 진주의 결혼은 그 뒤로도 한참 회자될 만큼 완벽한 것이었지만, 그 뒤에는 진짜가 되기 위해,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또 다른 덫에 걸리고 만 진주의 고통이 있었다.
흥미로운 인물은 역시 수정인데,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셀럽과 가까워지고, 다시 자신이 트렌드세터나 인플루언서가 되고, 연예인은 아니지만 화려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일상을 전시하며, 여기에 공동구매나 쇼핑몰을 연동하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사람이라는 점이 무척 현실적이었다. TV 트렌디 드라마 속 재벌이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속 연예인속의 일상을 동경하지만 동일시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들 SNS의 인플루언서들은 쉽게 동경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여행이나 호텔로 대표되는 화려한 일상, 혹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방 풍경을 보여주고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경우도 무척이나 흔하다. 자기 이름을 딴 마켓이나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혹은 큰 쇼핑몰에서 “누구누구가 선택한 상품”이라는 편집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블로그의 콘텐츠가 책으로 나오는 성공사례들부터, 팔로워들에게만 특별히 선보이는 거라며 타오바오에서 떼어온 듯한 짝퉁 상품들을 팔아치우는 경우까지.
그리고 “인스타 걸”은, 이런 선망의 대상이 현실과 닿았을 때, 그 욕망을 따라 시작한 거짓말이 점점 커져, 현실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한국형 칙릿”이라는 홍보 멘트에 비하면 사뭇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굉장히 트렌디한 소재를 두고, 어떤 인물도 사랑스럽지 않게 셋팅한 것부터가 그렇다. 사실은 그 점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