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우주의 원더키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2020년우주의 원더키디
2020년우주의 원더키디

2001년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호시노 유키노부의 만화 “2001 야물어(스페이스 판타지아)”와 같이, SF 팬들에게 한때 굉장히 익숙한 “가상 미래의 시간선”이었다면, 이제 드디어 현재가 되어버린 2020년(……..)은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사람에게는 한때 굉장히 익숙한 미래의 시간선이었다. 바로 이, 1989년 방영되었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있었으니까.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2020년은 원더키디의 해가 아니냐며 주변 지인들을 꼬드겨 같이 “원더키디 학번”이 되기 위해 방통대/방통대학원에 또 입학원서를 내는 짓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원더키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보니, KBS에서도 오늘, 2020년 1월 1일 오전부터 유튜브 “KBS 옛날티비” 채널에서 연속방영을 해 주었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실종된 아빠를 찾기 위해 몰래 수색대에 끼어든 아이캔이, 이곳에서 외계인 소녀 예나를 만나고, 하드론 전지(그중 하나는 신비한 광선을 내뿜는 예나의 목걸이)를 노리며 지구에서 온 탐험선을 납치하는 인공지능 로봇들에 맞서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매화 끝없이 사건이 생기고, 지루해질 만 하면 세뇌를 당해 기억을 잃어버린 아빠가 잊을만 하면 캡슐에 들어 고통받는 모습으로 잠깐잠깐 나오다가 후반부에는 세뇌를 당한 채 일행을 공격하며, 여기에 예나의 출생의 비밀까지, 분위기가 어둡고 좀 어려운 느낌이 있었지만 30년 전에 볼 때에도 색감이나 캐릭터가 국산같지 않고 움직임이 좋은데다, 인상적인 장면도 꽤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게다가 주로 뒷부분을 다룬 저 이미지에는 없지만 선장님이 잘생겨서 종종 회자되곤 했다.

뒷부분 하니 말인데, 원더키디는 딱히 1부, 2부로 나뉘진 않지만 대략 6화까지가 1부, 7화부터가 2부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6화까지는 아빠를 찾으러 간 아이캔과 탐험대가 UPO 행성에서 데몬 마왕과 맞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권위자였지만 지구를 떠났던 헨리 경과, 헨리 경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지만 결국 헨리 경을 해치고, 지구에서 오는 탐험선들을 족족 파괴하여 부품으로 쓰는 데몬 마왕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세뇌된 채 등장하는 헨리 경의 아들은 지구에서 떠나오기 직전, 만삭이었던 부인을 남겨두고 왔는데 그때 태어난 딸이 탐험대원인 리사이며, 헨리 경의 아들이 이곳에서 지내며 발견한 푸른 피부의 외계인 소녀를 딸처럼 키웠는데 그 아이가 예나다. 이후 아이캔은 아빠와 예나 아빠를 발견하지만 구출하지 못한 채 데몬 마왕을 파괴하고, 마왕성이 로켓으로 변신하여 어디론가 날아간다.

그리고 7화에서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렇게 마음아픈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나레이션이 들어간 청승맞은 70년대풍 브금과 함께 “지금까지의 이야기 요약”이 나온 뒤, 새로운 행성에서 데몬 마왕의 상관(오프닝에도 등장했는데 데몬 마왕과 비슷하게 생겨서 당시 아이들은 데몬 마왕의 부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무능한 데몬 마왕을 쪼아대는 직장상사였다)인 마라 대마왕과 대결하게 된다. 여기에서 예나는 UPO 행성의 바솔 왕자와 만나고, 자신이 아도나 행성이며 아도나 여왕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캔과 예나, 그리고 리사는 아빠들을 만나지만, 아빠들은 세뇌를 당해 오히려 이들을 해치려 하는 가운데, 열세 살 난 아이캔은(7화의 요약에서 나이가 나온다) 예나와 함께 아빠들을 구하고, 우주 정복의 야심을 화끈하게 불태우는 마라 대마왕을 물리치고 지구로 돌아간다.

예전에 볼 때에도 국산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무렵 서울올림픽 등을 맞아 국산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기공룡 둘리라든가, 까치의 날개라든가, 머털도사라든가, 이런저런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원더키디는 그런 당시의 국산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한국 애니메이션 인력들을 거의 드림팀 급으로 꾸려서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봐도 이야기 완급은 물론 동화가 무척 훌륭하다. 지금 다시 보아도 1~6화까지는 동화를 재사용한 컷들이 거의 보이지 않거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다. 뒷부분에서는 제작 기한 문제인지 돈 문제인지 몰라도, 재사용한 듯한 장면들이 조금씩 티날 정도로는 보인다. 대신 메카닉이 확 늘어난다. 화면 연출도 지루하지 않고, 상당히 다채롭게 쓴 편이다. 액션이 많고 카메라 연출이 은근 복잡한데 동세 작붕도 거의 없고. 참 당시로는 투자도 많이 하고 공들여 만든 애니였겠다. 새삼스럽게 놀랍네.

다만 수출을 염두에 두고 다국적인 이름을 붙였다고 들었는데, 역시 처음에는 주인공이며 탐험대가 전부 한국인이었는지, 중간중간 캐릭터들이 검은 머리를 하고 나오는 작붕이 있다. 어쩌면 원래는 검은색으로 작업했다가 나중에 색을 바꾸거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캔과 선장, 그리고 갑판장 대모 씨가 그렇다.

물론 30년 전 애니메이션이다. 지금 보면 저게 왜 저렇지 싶은 장면도 많다. 일단 행성들이 저렇게 올림픽 대로에 차 늘어서 있듯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어도 되는 건가 싶고. 초반의 협곡(…….)이 그런 식으로 통과할 물건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독수리호가 저렇게 생긴게 대기권을 어떻게 뚫고 올라갔지. 고작 2020년에? 아이캔이 자기 다람쥐를 예나에게 주면서 “다람쥐는 뒷산에서 또 잡으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집에서는 그 순간 두 성인이 동물 보호라든가 반려동물에 대한 문제라든가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며 경악하는 가운데 한 어린이가 다람쥐가 뒷산에 그렇게 많은 게 아닌데 무슨 소리냐고 정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시간이 느껴진다. 그런데다 헨리 경이 지구를 떠나는 장면에서 헨리 경의 며느리가 만삭의 몸으로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남편의 등을 떠밀며 “가서 위대한 아버님의 뜻을 따라 우주로 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는 확실히 이게 언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인지 실감했다. 오프닝은 당대의 유명 가수인 소방차가 불렀고 지금도 힘이 있지만, 배경음악 등은 미디라서 뿅뿅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일면 레트로하게 정겹고.

다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트랜스포머에서 빌려 온 듯한 하드론 전지라든가, 마라 여왕의 머리 모양이라든가, 또 바솔 왕자나 아도나 여왕에서 히맨이나 쉬라를 조금씩 참고한 느낌들이 보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외적인 부분으로도 30년의 간극이 느껴지는 부분들은 있다. 댐이 무너져서 마왕성이 물에 잠긴다고 난리가 나는 부분을 보면서는, 당시 시끄러웠던 “금강산 댐”이야기나 그 금강산 댐을 핑계로 걷었던 “평화의 댐 성금”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숨막히는 대결”이라는 말을 썼다는 게 새삼 신기했고. 일단 30년 전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미묘하게 요즘은 글에도 자주 쓰지 않는 단어가 대사로 나와서 재미있다. 오랜만에 보는 어린 꼬마에게 “너도 참 원기왕성하구나”라고 말하는 대사를 들으면서, 원기왕성이라는 말을 입말로 말한 게 언제였던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억양이 90년대 초반의 현대 서울말인 것도. (원더키디는 KBS에서 방영했고, 중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들 말씀으로는 KBS는 앵커들이 장음과 단음도 구분해서 말했고 성우들도 발음을 정확하게 한다고들 하셨다.) 하다못해 로봇인 코보트가 수리 완료되자 “아이구구 이제 살았다”하는 파란의 2020년 🙂

여튼 지금 보아도 잘 만들었다. 그런데다 최종보스인 마라 대마왕이나, 원래 UPO 성 출신이지만 동족을 배신하고 마라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배신당한 뒤 마라 대마왕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비비라 사령관, 지구인들의 후예를 이끄는 장로 격인 예나와 리사의 할머니(헨리 경의 부인), 예나의 하드론 빔에 감옥이 부서지자 예나의 호구조사나 하고 있는 다른 남자 대원들과 달리 혼자서 외계인들을 감옥에서 꺼내 대피시키는 리사 등, 여성 캐릭터들에게 개성을 부여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리사의 어머니나 아도나 여왕을 보며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게 만들어진 건 1989년의 일이다.

또 놀랍게도 서비스도 충실하다. 당시로서도 선장님이나 바솔 왕자 캐릭터가 미남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 봐도 작붕이 거의 없는 미남이고, 이 인공지능 로봇들은 사람을 상의를 벗겨 캡슐에 넣으면서 안경은 안 벗기는 기행을 벌여댄다. 요즘 나왔으면 나란히 벗겨진 채 캡슐에 들어가 세뇌당하던 아이캔 아빠와 예나 아빠를 엮는 동인지도 나왔을지 모른다. 어째서인지 이 시대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빠 캐릭터나 박사님 캐릭터들이 종종 수염을 달고 나와서 묘하게 어색하긴 하지만 말이다.

PS) 그나저나 에어스타에 뻔히 주포가 있는데 왜 아이캔은 자기가 직접 바주카를 쏘는가.

PS2) 대모 씨 말인데, 쥐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적은 되었으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우주로…….?

PS3) 허세의 중년남이자 중간관리자의 비애 데몬 마왕(…….)을 보고 있으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세계에 배신이라는 말은 없어도 허세라는 말은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화상회의중인 부하직원이 너무나 화상같다고 해도 모니터에 빔을 쏘면 안됩니다(…….)

PS4)대체 로봇을 저렇게 많이 만들어 놓고 왜 땅 파는 일은 인간을 시키나, 풀도 안 나는 행성에서 밥이 아깝지 않나, 대량생산 로봇에게 일 시키고 유지비 많이 나가는 인간은 죽여도 되지 않나 하다가(…….) 지구인을 자기 밥값을 버는 조건으로 살려두는 나름 인도주의적 처사였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박사님 의외로 땅을 잘 파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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