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표지를 본 순간 내 친구 우밍이 생각났다. 재주 많고, 이것저것 잘 그리고 잘 만들고, 그러면서도 뭐든 조금씩은 다 잘하는 친구. 아니, 예전에 알았던 여자 지인들이 두 손으로 못 셀 만큼 떠올랐다. 바느질, 뜨개질, 펠트, 비누, 가죽공예, 그림, 캘리그래피….. 원데이 클래스부터 인터넷 강의까지, 배울 곳은 많고 한번쯤 시도해볼까 싶긴 한데 정작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온갖 것들. 이 책은 바로 그런 취미를 한두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 걸치고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그래, 뜨개질 할 때 필요한 건 수학머리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미적감각이었다니까.)
전에 우밍은 자기가 뭐든 조금씩 다 잘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것은 나의 것이라고 말할 만한 한방이 없다며 속상해 했었다. 그게 뭔지 알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 나이 때 그 온갖 것들을 배우러 다닌다는 것도 안다. 자신에게 딱 맞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중이라는 것도. 그런데 꼭, 뭔가 배웠다고 그것으로 프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딱 일상에 필요할 만큼 해보고 즐기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취미가 많은 사람이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느긋하게 읽다가.
…아니, 잠깐만. 가정집에서 레터프레스까지 하신다고요.
뭔가 갑자기 난이도가 확 뛰어오른 것 같은데. 아니, 이분 디자이너라고 하셨지. 맞다. (끄덕끄덕)
내가 아는 많은 여자들이,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 취미라면서, 하지만 운이 좋다면 이걸로 뭔가 해보고 싶기도 한다면서.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런 부분에서부터 자신의 앞날 위에 조금 다른 길들을 모색하는 것 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내게도 그런 것에 대해 상의를 해 오는 친구들이 있다.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 부터 해온 것도 아니면서,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이런 취미에만 돈을 쏟아붓던 사람도 알고 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것 말고. 자기 인생에 중심만 확실히 잡고 있다면, 이 “쓸데없다”고 흔히 말하는 취미들이 얼마나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지를 가끔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 해소일 수도 있고, “놀면 뭐하냐” 하는, 도통 자기 자신이 노는 꼴도 두고 보지 못하는 성질급한 한국사람의 기질이 어떻게 잘못 튀어나간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자신의 앞날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건 “쓸데없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약간, 겸연쩍은 마음이 담긴 자조의 뜻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그건 그걸 지금 하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쓸데있는” 일일테지. 시간이 지나 쓸데없어지는 순간은 있더라도, 적어도 지금 당장, 그 마음에는 말이다.
다만…
십년보다 조금 더 전에(노무현 정부 후반기쯤), 어떤 여성 연예인이 쓴 여자들의 취미에 대한 기획서적을 읽었다. 그때는 그런 책도 그렇고, 또 여성잡지도 그렇고, 좀 더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취미들이나 웰빙한 삶에 대해 소개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 책도 그렇고, 잡지 같은 데 나오는 취미나 라이프스타일도 죄 다 소확행, 절약, 미니멀라이프… 지면에서나마 그런 허세를 부릴 여유조차,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