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카와 히로무 일러스트집

아라카와 히로무 일러스트집 – 학산문화사

택배를 받자마자 포장을 뜯어서 “소여사님!!!!!!”을 외치며 책을 부비부비, 이후 정신없이 읽으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강철의 연금술사” 본편은 물론 애니메이션 박스셋, 관련 특전 등에 사용된 컬러 일러스트를 알차게 모은 책. 게다가 수작업 일러스트의 느낌이 살아 있는 고급 인쇄가 아주 그만이다. 수작업 일러스트에 관심있는 사람도, 인쇄 자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도 다들 봤으면 좋겠다. 가급적 일러스트 자체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요소들은 빠져 있는데(이를테면 표지. 편집되지 않은 원본이 실려 있고, 하단에 몇 권의 표지인지만 적혀 있는 식이다. 우리가 보는 표지는 공통된 배경을 깔고 제목이 들어가고 편집이 들어간 상태고.) 중간중간 중요한 대사들이 작은 폰트로 들어가 있다. “정답이다, 연금술사.”라는 대사를 그 큼직한 일러스트와 함께 본 순간에는 어깨가 떨렸을 정도.

여기까지는 나의 덕심이고.

소여사님 화집도 그렇고 몇달 전 우라사와 나오키 인터뷰집 볼 때도 그렇고, 이제 우리도 이런 기록들이 좀 더 필요하지 않나, 좀 더 있으면 사라지기 시작하지 않나 싶었다. 90년대 이후 순정만화 쪽 선생님들 기록은 정말 찾아보려고 하면 화가 날 정도로 인터뷰나 연구나 뭐가 많질 않다. (대학에서 이런 걸 해야 하는 게 아닌가?) 00년대 이후 잡지만화 쪽에 대해서는 미디어믹스 된 작품에 대한 것 말고는 정말 뭘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나마 인터뷰라든가 연구라든가 논문이라든가 전시나 이것저것이 있는 80년대 선생님들….. 연세를 확인해 보면, 이제 풍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무한정 남은 게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불과 몇 년만 더 있어도 기록을 남길 기회들은 -tan(x) 그래프 같은 기울기로 파파팍 줄어들겠지.

여튼 우리는 좀 더 기록에 집착해야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소여사님 만세 존잘님 만수무강 하세요를 외치며 화집에 얼굴을 부비부비 하다가 말고 서늘하게 떠올린다. 얼마 전에 당장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 관련 기록을 찾아보고 싶어고 남은게 별로 안 보여서 놀랐던 것 처럼. 그리고 작가 선생님들 뿐 아니라 뭐 이를테면 이슈 윙크 파티의 팀장님 급들의 인터뷰 같은 것을 딴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전에 이슈 팀장님 어디 팟캐스트에 나와서 안 무서운 귀신 하고 계셨는데 그런 것 말고 만화에 대한 이야기 듣고 싶어요.) 기록은 부족하고 사람은 은퇴하여 연구할 자료가 다 없어진 다음이 아니라, 지금 그 분들이 현역일 때 기록을 시작해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얼마 전 텍스트릿 승류님께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기록에 집착하는 건진 몰라도…..

어떤 것들은 남겨져 있어야 한다. 어떤 것들은 기록되어야 한다. 십년 쯤 뒤에 누가 보면 00년대 초에는 한국 만화가 잡지고 뭐고 아예 없고 한 2006년 무렵부터 웹툰이라는 게 있었는 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생겼다가 사라진 잡지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도들과 그 결과들, 그런 것들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나? 두고보자의 리뷰들이라든가, 핫툰이라든가, 위식스라든가, 왜 90년대 말 만화 중 몇몇 작품에는 중간 도비라에 검정 리본이 그려져 있었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요즘 조금씩 평론집이나 이것저것이 나오고 있지만, 좀 더 많이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종이책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로라도.

아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있겠지.

아마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그리고 지금 그런 걸 시도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연구비의 문제일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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