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친비는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짧고 굵고 선명한 문장으로 책이 시작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트위터 감성적인 시리즈는, 이 책에서 아주 절정을 찍고 들어간다. 비슷한 사례의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분들께는 무척 실례되는 표현임을 알지만 작년에 트위터에서 흔히 나오던 표현을 빌리자면 “깜빡이도 안 켜고 들어와 받는” 듯한 책이다. 아니,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하면 설국의 첫 문장처럼 머리를 일단 치고 들어온다고 하자. 어쨌든 저 문장은 리디북스의 공유 이미지 생성기를 거쳐 나오면 트위터리안의 운명적 짤방같은 게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특히 굉장하다. (리디북스의 스마트폰 앱에서는 읽다가 문장을 드래그해서 “공유”를 만들면 이미지로 만들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공유해준다. 그리고 묘하게 페친중에 이거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트친중에는 무척 많다. 아마도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점 MD, 독서가, 독서광, 책 호더 등등이 유난히 많은 SNS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재를 읽고 나서 그 시리즈를 계속 읽고 있다. 이 시리즈는 자신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것을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담은 에세이 시리즈로, 특이하게도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만들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예전의 “작은탐닉”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한데(정확히는 “나는 XXX에 탐닉한다”는 제목이 붙은 시리즈들. 나는 티타임과 편의점, 우체국 탐닉을 갖고 있었다.), 작은탐닉 시리즈가 좀 이글루스 감성이라면 이건 그야말로 트위터 감성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작은탐닉은 4도인쇄에 내지 종이도 얇으나마 아트지 같은 걸 써서 좀 비싸 보였다. 마치 이런 주제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찍나 싶기도 했으니까. 물론 이쪽은 1도다.)
이 책은 시작부터 소프트한 자학드립이 난무한다. “같은 회사 직원들은 엉겁결에(회사 행사 홍보를 위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서 파워 트위터리안이 되었는데 같은 이유로 계정을 만든 나는 트잉여가 되었다”는 식이다. 이 대목을 모자마자 이 책은 트잉여들의 n대 복음서가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조카에게 계정을 들키고, 회사에서 쥐가 나온 일을 올렸다가 상사가 그 트윗 지워달라고 하는 사건을 겪으며 근친언팔 상사블락이라는 도리를 떠올리지 않는 트잉여는 없을 것이다. 트위터 안 쓰는 사람이나 주력으로 쓰지 않는 사람들은 듣고도 그게 무슨 말인가 갸웃거리는 농담 “트친비”에 대해 달아놓은 주석은 거의 브리태니커 급이다. 애를 안고 책을 읽다가 웃는 걸 참느라 죽을 뻔 했다. (웃느라 다 재운 애를 깨울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앞서 언급한, 책의 순환과 관련된 직업군에 속한 분이다. 편집자다. 시월드를 “저자 대하듯” 하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편으로,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태연히 나오기도 한다.
“아, 마감해야 되는데.”
이런 트윗을 볼 때 마다 당장이라도 멘션을 보내 독촉하고 싶었다.
“선생님, 마감해야 된다고 트윗을 쓸 시간에 마감을 하십시오.”
…..어쩐지 민주노총 스럽게 “안녕하세요, 선생님”으로 시작했으면 이 대목에서 발생할 사상자가 두 배로 늘었을 것이다.
트위터에는 나의 저자뿐 아니라 마감해야 되는데 일하기 싫다고 징징 울고 있는 마감노동자들이 정말 많았다.
어쨌든 위 대목을 읽었고, 적어도 오늘 밤에는 마감해야 되는데 일하기 싫다는 헛소리를 가급적 안 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다 잘 생각이다. 처음에는 트위터 갖고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 전에 누가 이글루스에서 흑역사들 모아서 정리하던 것 처럼, 트위터 10년 흑역사라도 모아놓는 책이 나오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예상이 틀렸다. 이 책은 불행히도 트위터를 쓰는 사람에게만 통할 책이다. 다행히도 적어도 그들에게는 유머집이자 한동안 N대 복음서 정도로 소비될 수도 있을 책이다. 아, 책은 다 읽었으니 이제 마감하기 싫은데 가서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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