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읽다가 책 제목을 주워 건지고 구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았다가, 마침 며칠 전 모 사에서 리디북스 쿠폰을 넉넉하게 주셔서 그걸 충전하자마자 바로 구입해 읽었다.
이 책은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의 생애를 당대 수입과 지출, 계약이나 재산문제 위주로 정리한 책으로, 읽다 보면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를 떠올릴 만한 구석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이 “베토벤의 가계부”이고, 이 책의 시작이 모차르트인 것은, 그 이전의 음악가들은 궁정음악가로서, 국왕이나 영주를 위해 일하며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서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를 위해 일하다가 그만두고 나왔고, 베토벤은 본격 프리랜서 음악가 시대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니까.
베토벤 이전까지의 음악가들 대부분은 음악가 집안의 후손이었다. 바흐, 헨델, 하이든의 아버지가 모두 궁정 음악가였으며, 베토벤의 아버지 역시 궁정 악장 출신이었다. 이와 달리 슈베르트에 이르러 대작곡가가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었으며, 쇼팽의 아버지는 평범한 중학교 교사였다. 또 베를리오지는 의사의 아들이었으며, 슈만은 서적 판매상이 자식이었고, 멘델스존은 은행가 집안의 후손이었다. 슈베르트보다 조금 앞서 활동한 파가니니는 부두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이 책은 모차르트의 과시적 낭비에 대해 “당대 엘리트 문화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자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이며, 흔히 그가 아내인 콘스탄체의 낭비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콘스탄체의 낭비란 작은 규모에 불과했다고 설명한다. 콘스탄체를 악처 취급하는 건 아마도 모차르트를 신성시하며, 그가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산 것은 아내 때문이라는 식의 여혐의 일종이었겠지. 오히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남긴 빚을 혼자 힘으로 청산하고, 몇년 뒤 덴마크의 외교관 니센과 결혼했는데, 이 니센은 아내를 위해 필생의 사업으로 최초의 모차르트 전기를 펴낸 사람이다.
베토벤은 시민사회의 발아기에 독립 직업인으로서 자유를 실천하려 했다. 독립된 음악가가 음악의 가치와 작품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후원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 필요했고, 베토벤은 이를 위해 사소한 지출까지 꼼꼼히 기록하며 구두쇠 노릇을 했다. 비록 산수에는 서툴러 그 가계부에 틀린 구석이 꽤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작품을 고가로 판매했다고 한다. 역시 예술가도 자기 PR이 중요하지. 게다가 자존심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고. 베토벤에 대한 대목은 정말 읽으면서 구구절절 감동했다. 베토벤은 1809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참된 예술가라면 누구나 예술 작품 외의 다른 직무나 경제적 보수 따위에 구애받지 않기를 열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야말로 작품 창조에 전념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그때 적당한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쉽게 구축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베를리오즈는 대외적인 성공과 호평에 비해 잔인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보수를 받고 말했다.
너무하다! 확실히 진정한 예술은 작가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 아마 언제라도 그럴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그런 베를리오즈가 안정을 찾은 것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7만프랑이라는 거액의 유산 상속 이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프란츠 리스트 항목에서는 아예 제목이 “어느 귀부인의 기부가 바꾼 인생”이다. 결국 예술가가 풍족하게 살려면 유산 상속이나 증여만이 답이거냐. 살아서는 돈이 없어 고생했던 드뷔시가 죽어서는 프랑스 지폐에 얼굴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고흐가 떠올라서 슬프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철밥통이 아닌 프리랜서, 그것도 독립 예술가의 삶이란 여러 면에서 비슷하기 마련인지. 이 이후의 음악가들의 생애를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를테면 로시니 말인데, 이 사람이 오페라 상연 날짜를 앞두고도 작곡을 다 안 해서 극장에 갇힌 채 작곡에 착수했다는 이야기나, 그래서 한 곡 한 곡 완성될 때 마다 배역을 결정하고 연습에 들어갔다는 대목에서 “통조림”이라든가 “쪽대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로시니는 다작을, 그것도 무척 빨리 내놓다 보니 자기복제적인 곡을 많이 썼다고 한다. 소위 공장만화에서 얼굴을 복사해서 붙였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런데다 이 로시니는, 자신의 오페라가 상연되는 극장에서 카지노를 운영하자 카지노 이익의 일부를 자신이 배당받도록 한다. 광고수입이 아닌가. 게다가 만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지급하는 종신연금을 받아서 안정적으로 살았는데, 중간에 정권이 바뀌면서 연금이 끊길 뻔 한 것을 6년간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받아냈다고 한다. (왜 이 대목에서 양 웬리가 떠올라서 눈물이 나지……) 이 분 진짜, 그야말로 21세기다. 이 로시니는, 자신의 동상을 세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런 큰돈을 들여 동상을 세울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그 돈을 받고 받침대 위에 올라가 서 있는 게 낫겠다”라는 농담을 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와우.
계약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화도 많이 나온다. 디아벨리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으로 40년동안 1만 탈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지만, 슈베르트가 방랑자 환상곡을 포함한 가곡 19권의 판권 및 저작료로 받은 돈은 고작 350탈러였다거나. 쇼팽이 저작권료 계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모든 작품을 1만 7천 프랑이라는 어이없는 가격에 팔아 치웠다거나. 브람스는 재산 관리조차 스스로 하지 않아서 출판업자에게 재산 관리를 맡겼는데, 출판업자가 그 돈으로 주식을 하다가 2만 마르크를 날려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 덕분에 이름이 알려져 부유하게 살게 되고, 나중에 슈만이 죽은 뒤에는 그 유족들을 돕거나 한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바그너와 계약한 출판사는 저작권료를 돈이 아니라 베토벤의 악보 사본으로 대신 지급했다. 존경하는 아티스트의 굿즈를 원하는 덕후의 심리를 노리고 현금 대신 현물굿즈로 저작권료를 지불하려 들다니, 진짜 심하지.
바그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바그너는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말한 인간(물론 바그너=나치는 아니다. 그는 그 전에 죽었다.)이라 좋아하지도 않고 그 인생에 딱히 관심도 없었는데, 이 책에 언급된 바그너의 인생은 좀 굉장하다. 자신의 은인이라 할 후원자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에게 유사연애적인 플러팅을 해 대면서 매년 연수입을 입금받고, 극장에다가 저택을 지어달라고 하고, 거액의 신탁자금을 국왕의 사재에서 증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스케일이 크게 그를 삥뜯었다. 물론 신탁자금 쪽은 신하들에게 거절당하고 쫓겨났다지만. 한국 남자들이 여자한테 고작 밥이나 사주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꽃뱀이니 어쩌니 멸칭을 쓰는 꼴을 보는데(애초에 돈을 노리는 사람이 자신을 노릴 거라고 생각하다니 착각도 지나치지)바그너의 일화를 읽고 있으니 그런 경멸적인 단어를 붙이려면 스케일이 최소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물론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 노력한 음악가들도 있었다. 베르디는 작곡가의 재능을 소진시키고 그 특유의 음악세계를 망가뜨리는 오페라 극장들의 전횡에 반발하고 작곡가들의 저작권 보호를 통해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 작곡가들을 위한 저작권법 제정 운동을 벌였고, 저작권자의 사후, 혹은 그 기한의 소멸까지 작품에 대한 보호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저작권법 초안을 직접 작성하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나치 치하에서 음악원장을 했다고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 부분은 기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작년에 레진코믹스 사태부터 시작해서, 웹툰과 웹소설 작가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한 해였다. 작가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시간도 주지 않고, 업체가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심지어 잘 팔기 위한 영업에조차 힘을 기울이지 않으며, PD 스스로 업로더 노릇이나 하면서 작가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려 드는 이야기도 보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작곡가들이 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무심하게 굴다가 등쳐먹히고, 어떻게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했는지에 대해 설명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작년에 보고 듣고 겪은 일들과 오버랩되어 각별하다. 지금 내가 속한 직업군이 겪는 고난이 인류 역사상에서 최초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서 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베토벤의 가계부는 그의 음악처럼 위대하달 수 밖에 없다. 가계부가 그를 음악가로 지켜주었고, 작품료 계산이 현악4중주를 작곡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