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7년) 루이비통과 구찌 등은 모델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공동헌장을 발표했다. 그보다 앞서(2015년) 프랑스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고, 모델에게 건강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 무렵 프랑스 출신의 모델이었던 빅투아르 도세르의 이 책이 출간되었다. 연기자가 되기를 꿈꾸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소녀가 길거리 캐스팅을 받고, 런웨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야말로 신데렐라같은 이야기의 도입과 함께, 평범했던 소녀가 옷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강박적으로 식사를 줄이고, 거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생기를 잃어가다가 마침내 자살을 기도하려 드는 과정은, 인간의 몸을 이 업계가 어떤 식으로 냉혹하게 도구화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처음에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중간중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기도 했다. 화려한 패션업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던져진 기묘한 세계, 신데렐라처럼 발탁되어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신참자,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이지만 속에서부터 곯아들어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돌아서며 원래의 꿈을 찾으려 하는 것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러니까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생각했다. 이것은 픽션이 아니라 고통의 기록이고, 패션산업이 꿈같은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어떤 식으로 도구화하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라고. 리허설을 위해 두꺼운 화장과 헤어로 모델의 진을 빼놓고는, 다음날 리허설로 피부가 손상되지 않는 모델을 불러들이거나,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은 물론 발에 맞지도 않는 하이힐을 신도록 강요받는 것, 거식증에 걸릴 만큼 깡마른 모델을 데려다가 포토샵으로 쇄골에 살을 덧입히는 기만까지. 중간중간 멈추고 이 모든 것이 픽션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애써 생각하며, 얼마 전 읽은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나, 어린아이들의 미인대회에 대해 언급한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를 떠올려야 했다. 과연 이런 것이 필요할까. 건강한 인간이 입을 수 없는 옷, 입기 위해 건강을 해쳐야만 하는 옷을 진열하기 위해 살과 뼈가 있고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인간이, 그저 깡마른 마네킹처럼 취급받아야 하는 것이? 게다가 몇몇 디자이너들에게는 면전에서 옷걸이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 자료로써 오트쿠튀르 패션의 사진들을 찾아보거나 하지만, 그 옷 안에 일단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나아가 그런 일들이,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워지기 위해 굶고 살을 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끔찍하게 인식해야 했다.
PS)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책 이미지를 검색하다 보니, 이 책은 이미 절판이었다. 대신 이번 달에 같은 내용으로 제목만 달리하여 다시 나왔다고 한다. 새로 나온 책의 제목은 “죽을만큼 아름다워지기”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