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BBC를 보고 나면 7시 10분 정도에 끝날 텐데, 동네에서 영화가 7시 20분 시작이었다. 실제 시작은 30분 정도. BBC쪽을 보고 달려가서 영화를 볼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영화만 보기로 했다. 동네 CGV라서 덕후들이 단체로 열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묘하게 가족단위 관객이 많았다.
가족단위 관객이 새벽부터 이토록 미묘한 것을 보고 갔어. (눈물)
일단, 포스터만 보면 묘하게 우는 천사를 연상하게 되는 이 유령신부는 빅토리안 고딕 호러라는, 마크 게이티스의 또 하나의 덕질 스탯을 채워주는 작품이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사건이나 추리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며, 그에 대한 떡밥 역시 대단히 심플하고 클리셰에 충실해서, 첫번째 사건에서는 누가 협력자인지, 어떻게 시체가 움직였는지 알 수 있고, 두번째 사건의 피해자인 유스티스가 죽은 시점에서는 갯강구도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정도다. 다만 (이하 네타) 두번째 사건과 함께, 이 사뭇 단단해보이는 19세기 빅토리안 고딕 호러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다. 마이크로프트가 “네 데이터, 바이러스”같은 말(19세기에 쓰일 리 없는)을 하고, “리스트를 작성하라”는 말을 한다. 죽은 유스티스의 시신에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없는 “miss me?” 라는 쪽지가 걸려 있다. 여기까지 오면 관객은 반전을 예측하면서도 설마 그럴까 하며 혼란스러워진다. 애초에 유령 신부 자체가, 203의 모리어티와 같은 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셜록은 모리어티와 만나게 된다. 자기 방에서, 끈적한 섹드립을 날려주시는, 죽은 라이벌의 존재와 함께 그의 의식은 현대로 돌아온다. 303에서 출발하자마자 회항한 비행기와 함께,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경악하고, 동시에 웃기고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새끼들 동인지의 스케일이 왜 이렇게 커져.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코난 도일의 정전에 바치는 팬보이들의 동인지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낸 셜록 세계관에 대한 셀프 동인지죠. 그리고 이때부터 셜록은, 19세기에는 코카인 7%용액에 절어 있고, 21세기에는 형님의 지시에 따라 사용한 향정신성 약물 리스트를 적어 품에 넣은 채로 혼수상태에 빠진 채 두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19세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애쓴다.
그렇게만 말하면 참 좋겠지만.
좋다, 이 이야기는 추리가 아니라, 모에를 보는 서비스 서비스 스페셜이다. 코난 도일이 낳아 자신들이 때 빼고 광 내어 재구성한 주인공들에게 빅토리안 코스튬을 입히고 싶은 제작진의 비뚤어진 욕망이 전세계를 낚은 결과물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난 빅토리안 고딕 호러 덕후라는 점에서 이번 일의 악당은 모팻이 아니라 마크 게이티스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다 마크 게이티스는 이번 욕망으로 진정 자신의 욕망을 화면에 양동이로 들이붓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이런 식이다.
두번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존이 셜록의 욕망에 대해 물으며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고 묻는다. 셜록은 “누구도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면면에서 셜록의 ‘고기능성 소시오패스적’ 인격은 굉장히, 진정한 사이코패스 통제광이자 바뚤어진 동생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마이크로프트에 의해 정밀하게 통제되고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모리어티에 의해 “정밀한 기계에 금이 가듯(이 대사는 모두가 알다시피 원작의 “보헤미아 왕의 스캔들” – 저 아이린 애들러가 나오는 – 에서 셜록 홈즈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로 나온디) 에러가 생긴 상태다. 세상에, 이것만 해도 웃겨 죽겠는데, 19세기의 마이크로프트는 적어도 200kg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육중한 몸에, 푸짐한 식사를 하고도 푸딩을 몇 개씩 집어먹으며, 안락의자 탐정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락의자에서 못 일어나서 할 것 같은 상태로 디오게네스 클럽을 이끌고 있다. 물론 통제광인 만큼 디오게네스 클럽은 여전히 공동 공간에서는 소리를 낼 수 없는 곳이고, 셜록은 이곳의 컨시어지와 수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뭐, 이것 자체는 원작의 마이크로프트 재현이긴 하지만.
그 끝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로 인해 “실시간으로 수명이 줄어드는”것에 대해 셜록이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먹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21세기의 마이크로프트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19세기는 성공은 고사하고 끝없이 먹는 쪽이 된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성욕과 식욕의 등가교환으로 보면 흥미로워진다. 21세기의 게이와는 달리 19세기의 게이는 자신의 욕구를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범죄적이며 신성모독적인 죄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앨런 튜링만 해도 그렇지. 즉 21세기의 마이크로프트가 어디선가 욕구를 해소할 상대라도 찾는 동안에, 19세기의 마이크로프트는, 자기 동생과 달리 향정신성 약물 탐닉으로 빠지는 대신 탐식으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 점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마크 게이티스는 최애캐 차애캐 떡쳐라도 아니고 그냥 자기가 최애캐에 깊이 이입해서 차애캐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몸부림치는 내용을 직접 쓴 뒤 스스로 그 역을 맡고 계심. 이 시대의 진정 난 분이심.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음. 과거에도 현재에도 일관된 형님의 저 비뚤어진 동생 사랑이라니.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셜마셜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제작자의 최애캐가 마이크로프트요 차애캐가 셜록이라고 해도, 대놓고 근친을 팔 수는 없는 일. 형님은 그냥 욕구불만 통제광으로 족하다. 동생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버젓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용한 약물 리스트를 굳이 알아내고, 그걸 북 찢어 버리고 가는 셜록의 뒤를 따라가는 대신 그 찢어진 메모를 소중하게 “redbeard”가 적힌 자기 수첩 사이에 끼워넣는. (그러고 보니 형님의 수첩에는 행렬 같은 게 하나 있었는데, 짧게 지나갔지만 0과 1로만 되어 있던 것 같고. 뭔가의 압축코드나 그런 걸까. 여튼 형님의 수첩이나 셜록의 약물 리스트 같은 것은 누군가 드라마를 돌려보고 분석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지금 그 짓을 하기엔 이번 연휴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대신 이 영화에서는 “유혹자”로서의 모리어티와 “구원자”로서의 존 왓슨이 존재한다. 셜록의 머릿속, 19세기 런던으로 확장된 마인드팰리스 안에서도 계속 그를 미혹하는 모리어티는 마침내 라이헨바흐 폭포(303에서는 라이헨바흐 폭포 그림을 셜록의 추리로 되찾았는데, 영화에서는 이 그림이 형님의 디오게네스 클럽 전용룸 안에 걸려있다)에서 셜록과 대면한다. 원작에서 권투의 달인이었던 셜록은 허당처럼 두들겨 맞고, 그때 존 왓슨이 나타난다. 그 103의 수영잔 씬의 정확한 대치로서, “내 친구에게서 떨어지라”고 말하면서. 모리어티를 폭포 아래로 걷어차 버리는 것 역시, 존 왓슨이다. 그리고 존에게서 구원받은, 다시 말해 모리어티의 자극적인 “악”에 미혹되면서도 이번에도 존으로 인해 어둠으로 끌려가지 않은 셜록 홈즈는 자유로워져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뛰어내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 무슨 존 왓슨은……. 이렇게 고통받고…….(부들부들)
여튼 빅토리안 고딕 호러로 시작한 사건은 기묘하게도 페미니즘,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형태로 끝나고, 그에 대한 떡밥은 시작부터 계속 나왔으며(몰리 후퍼 언니 날 가져요) 메리 모스턴은 현실에서도 19세기에도 의외로 굉장히 능력있는 협력자로 나오지만, 모팻은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말하고 싶으면 그냥 19세기다운 걸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사건 자체는 별로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니라 다시 보더라도 사건, 추리 파트는 스킵하게 될 것 같고, 동인지로서는 굉장함. 세계구급 동인지쯤 됩니다. 팬보이들이 만든 팬들을 위한 끝내주는 영화임.
여튼 오늘의 감상. 성공한 덕후가 되어서 최애배우로 최애캐 모에모에 스페셜을 찍는 인생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