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명찰

천지명찰 – 우부카타 도우, 이규원, 북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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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조선 수학에 대해 책을 잔뜩 사다놓고 보다가 공부가 부족해서 잠깐 중단해 놓은 적이 있었다. 쓰고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에 대해 공부가 부족하다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다시 손을 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아마도, “이야기”보다는 “수학”에 대해 더 떠들어댈 테고, 그런 것은 이야기로서는 함량미달이 될 가능성이 너무 크니까.

이 책을 보고 난 뒤 내 마음이, 신사에 매달린 산액 에마를 본 하루미의 마음같았다. 가능하구나.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처음에는 이야기 자체에 푹 빠졌고, 두 번째는 연습장을 옆에 놓고 오, 그래. 이건 합동에 대한 거고 이 문제는 왜 안 풀리겠구나, 하면서 보았다. 시대 배경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를 통해 어느정도 분위기만이라도(TS버전이나마) 엿봤던 시기다 보니 관직이나 인물 구도가 어렵지는 않았다.

쇼군 앞에서 기예로서 바둑을 선보이는 시부카와 하루미에게서 잠시 고스트 바둑왕의 사이를 떠올리기도 했고, 미토 코몬이 천원점에 첫 수를 두더라는 부분을 읽으며 정소연님의 우주류를, 그리고 그 소설 우주류의 모델이 되었던 다케미야 마사키를 떠올리기도 했으며, 천원점이 북극성이라면 바둑판의 네 변에서 북방 28수의 별자리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손에서 놓을 틈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정해져 있는 별자리처럼, 하루미의 인생도 하루미가 두는 바둑도 거의 틀에 짜인 듯 맞추어 돌아가게 되어 있었지만, 8백년간의 오차가 누적되어 온 권위로서의 역법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된 새 역법조차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평생에 걸쳐 답을 찾아간다. 하루미의 주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언제까지나 고루한 옛 수를 반복할 것 같았던 네 가문의 바둑도 본격적인 승부를 통해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산액을 통해 교류하던 세키 다카카즈는 처음 그의 문제의 오류를 짚어냈듯이, 그가 보지 못한 오류를 꿰뚫어본다.

가장 좋았던 대목은 “일별즉해” 부분이었다. 북극출지를 다니는 부분. 언제부턴가 늘, 하며 고백하는 다케베와 이토의 꿈은, 어느 시대에나 진리를 바라보고 싶어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싶어질 힐베르트의 그 말, “우리들은 알게 될 것이다”를 떠올리게 했다. 변하지 않는 어떤 것, 인간의 손으로는 아직 오류들이 남겠지만, 그 오류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면서 진리에 다가가는 것. 그것 자체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이들의 수학적 업적이나 달력이, 이보다 이른 시대에 이미 조선에서 이루어졌다거나,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적인 분위기 자체가 우리나라로 치면 영, 정조 무렵 정도는 될 것이라든가, 그런 것을 넘어서. 누가 앞서고 누가 뒤떨어지고를 넘어서 그 자체로 좋은 것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내가 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 사람이 해내리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 안타깝고, 사랑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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