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 줄 별이 모자란 책이다. 사실 찍을 수만 있으면 별을 스무개쯤 찍어주고 싶었다. 자취를 시작한 이래 2천원으로 밥상 차리고 3천원으로 손님상 차리는 책을 백날 사보고 빌려보고 요리잡지 같은 것 체크해보면 뭐하나. 읽어도 제대로 만들질 못하는데. 뭐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레시피를 보고 맛을 비슷하게 내는 것이라면 할 수 있다. 정확하게 계량하고 타이머 맞춰서 만드는것 누가 못하겠느냐고. 문제는.
채를 썰어야 하는데 깍뚝썰어놓고요.
데치라고 했는데 삶은 외계인같이 만들어 놓고요.
뭐 기타등등 이런저런, 베이스가 부족한 것. 공식을 암기하여 기계적으로 미적분을 풀게 만들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입실론 델타 그런거 하나도 모르는 상태, 그런 것 말이다. 요리책을 백날 봐도 뭘 만들어 먹을 수가 없다고 한탄하는 내 주변 친구들, 아마 대체로 비슷한 문제로 그게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산후관리사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분이 해주시는 “집밥용 반찬들”을 먹어보고, 또 요리하시는 걸 옆에서 구경하면서, 정확하게 그램 단위로 나와 있는 것들을 재서 섞고 몇분 몇초간 가열하라는 것을 못 해서 내가 음식을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대개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기본을 제대로 못 하니까 겉은 짜고 속은 미묘하든가, 아니면 맛은 대충 나는데 비주얼이 흉악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게다가 결정적으로 집밥을 많이 먹고, 옆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많이 봤던 게 아니라서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자취 및 결혼생활 도합 십년을 훌쩍 넘겨 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 책이 그 문제를 다소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초등학교 실과책보다 쉽게 나왔다. 칼 쓰는 법, 불 쓰는 법, 꼭 필요한 그릇들(이걸 몰라서 정작 필요한 그릇은 없고 집에는 덮밥그릇만 스무개 가까이 있어서 매번 밥에다가 반찬들 줄줄이 얹어서 먹고 있는 것임……)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 애초에 그림 속의 인물들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들이고.
사실 AK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건 모험도감이나 공작도감 등등 도감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보인다. 아마 그게 맞을 거다. 디자인이며 구성이며. 그 책들은 대개 초등학교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쓸모가 많았지만, 이 책은 특히 추천할 만 하다. 당장 비엔나 소세지로 문어 모양을 어떻게 만드는지, 다시마 육수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늘 카레, 미네스트로네, 야채밥, 마파두부;; 같은 것만 해먹으며 “5대 영양소만 다 맞추면 되었지”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동안 이해가 안 가서 못 해먹었던 요리책을 곰곰히 들여다보게 될 정도는 된다. 정말로 해 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2천원으로 밥상 차리고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자취방 요리 만드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다만 일본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일본 쪽의 반찬들에 대해서만 나오지, 한국 반찬들은 안나온다. 그건 알아서 적용해야 할 일이고. 실은 이런 컨셉으로, 컬러 도판에 김치, 기본 밑반찬,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는 양념과 도구와 그릇에 대한 설명들을 넣어서 “2천원으로 밥상 차리기 전에 먼저 봐둬야 하는 자취의 달인편” 뭐 그런 책이라도 국내에서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