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과학소설작가연대를 대신해 인사드립니다. 전혜진입니다.
실은 과학소설작가연대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도 으레 연대했겠거니 하다가, 아직도 연대하지 않은 것을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말했습니다. “이미 반쯤 파괴된 혼란스러운 세계 한복판에서,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도덕의 힘과 무적의 정신을 흔들림없이 믿게 하는 것은, 오늘날 말과 글을 가진 우리의 사명”이라고요.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끝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얼마 전 저희 선생님과 무슨 말 끝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2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요. 우크라이나가 그렇고, 이란이 그렇고, 팔레스타인이 그렇고, 이젠 미국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면, 한국은 반드시 휘말릴 텐데. 그런 시대에 자기 양심으로 할 말을 하면서 글을 쓰려면 어떤 용기를, 얼마만큼의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하고요. 그 질문을 하면서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K-방산이라는 이름으로 부지런히 무기를 수출하는, 세계 145개국 중 5위를 차지하는 군사대국인 나의 조국은, 이번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설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 물론 한국이 타국에 점령당하거나 일방적인 피해국이 되어 활활 불타기를 바라진 않지만, 지금의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국주의에 부역하며 전범국의 기나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역사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하겠죠. 설마 추축국 같은 것까지 될 깜냥은 없더라도.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일 앞에서 전쟁을 획책하진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죄가 없다고 믿겠지요.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요.
그런 시대가 왔을 때, 글 쓰는 사람은 어떤 용기로 살아가야 하는지,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들은 대답은, 작은 불들을 계속 켜듯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목소리라도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 용기, 사람들의 마음에 어둠만 남지 않도록 계속 등불을 켜는 용기.
그건 아마도 절망하지 않을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혹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할 용기, 그걸 당의정으로 덮고 대충 생각을 외주주지 않을 용기, 생각할 용기, 농담을 할 용기, 그리고 자신의 자아에 비추어 옳은 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어디 담벼락에 낙서라도 하고 돌아설 용기가 아닐까 하고요. 이 추운 날씨에 여기 모여, 지금 지구 어디에서 오늘도 벌어지는 학살과 폭력을 직시하고 계신,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 용기 말입니다.
물론 해야 하는 말을 하며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절망하지 말고, 작은 목소리라도 계속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직하게 빈정거릴 용기만이라도 계속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그런 용기마저 꺾이는 순간에, 작은 불을 옮겨붙이듯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과학소설작가연대와는 또 별개로, 장르 작가들이 모여 작은 불을 켜듯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엽편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주에 한겨레 21을 통해 김서정 작가님의 “영원히 밤을 가로질러 달리는 열차”가 공개되고, 그 다음 순번으로 제 소설도 공개될 예정입니다. 이쪽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실제 발표하는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인데, 해당 기획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샘플로 제출했던 제 소설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야, 나는 담을 넘고 싶었어. 내 머릿속의 조금 더 나이먹은 네가 고통과 죽음 뿐이라고 말하는 이곳에서, 증오와 조롱 뿐이라고 말하는 저곳으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쓰고 때로는 현장의 참상을 라이브로 송출하면서, 나와 내 동료들의 사진과 기사와 수많은 기록들을 쌓고 또 쌓아서, 마침내 우리를 가두는 저 콘크리트 벽을 넘겠다고.”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