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사형 선고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다소 어그러졌다. 내란죄를 범했다는 것을 일단 법정에서 인정했다는 것에 만족하기에는…… 내란을 일으켰던 전두환 노태우는 제 명에 죽었는데, 내란을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들은 억울하게 사형당하고, 실제로 내란을 저지른 놈들을 배출하고 그에 빌붙은 당은 여의도에 커다란 당사를 유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내란을 저지른 것도 아닌 당은 해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속 쓰려 하다가 책이라도 읽자 하고 이 책을 좀 보기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가 정규 4년제로 개편된 이후 첫 졸업생인 전두환(육사11기)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들은 강한 엘리트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선배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언젠가는 이들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군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군 내부 갈등이 권력 공백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마침내 폭발했다. 그것이 12.12. 군사반란 사건이다.
“신군부”라고 말하는 것이 과거 박정희 군부에 대비한 새로운 세력이라 그런 줄 알았지, 육사가 4년제로 개편된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줄은 이 책 읽으면서 알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과거의 명문고등학교들이 평준화 이후의 후배들은 후배로 안 쳐준다거나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특권의식이 적폐를 낳는다는 것이 이런데서 확실히 보인다.
6월 항쟁 당시 군을 동원하지 못했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광주 시민의 희생이 남긴 역사적 교훈 때문이었다. 1980년 광주의 상처는 1987년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패가 되었다. 그렇게 광주 시민의 희생과 아픔이 6월 항쟁 당시 군의 동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또는 광주 민주항쟁이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듯 지금의 현재에서, 사람들을 일어나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군대의 동원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일인가?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1987년의 군인들은 2024년의 군인들보다 양심적이라는 말이 되고. 그리고 광주 시민의 “희생과 아픔” 때문에 6월 항쟁에서 군대가 말을 안 들었다는 식이라는 말 자체가 좀 이상한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의 본질과 군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든 사건인 것은 틀림없지만, 한국 군대가 반성을 했다고? 고작 1987년, 그것도 전두환 집권기에? 어쩐지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로 들린다. 어쨌든 여기, 유신체제의 몰락 이후 6.29 선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와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에 안주하지 않는 고학력 중산층이 사회의 주역으로 대두되면서 군사정권이 힘을 잃었다는 설명까지는 썩 개운하진 않아도 “교과서적으로 맞는 말”이라는 생각 정도는 든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느낌 말이다. 요 다음부터가 매우 불쾌한 전개였는데.
이러한 민주적 공고화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대통령의 업적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아니 시발 뭐라고?
의외로 노태우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노태우가 전두환보다는 나쁜 짓을 덜 했을 것이고 전두환보다는 반성도 했으며,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서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고, 권위주의를 많이 내려놓기는 했겠지만, 읽으면서 “이 교수 노태우 되게 좋아하네”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노소영과 최태원만 생각해도, 정경유착이나 그런 것 남부럽지 않게 해먹었는데 뭘 그렇게 칭찬할 것이 많다고. 노태우 더럽게 좋아하네. 게다가 김대중이 자신의 적들을 용서한 것까지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넘어, 타협을 하다 못해 DJP 연합을 하고 있었던 것까지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좀 혈압이 올랐다. 그렇다, 이 책은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교과서적으로 기계적 중립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대지가 기울어진 것도 모르는 그런 상태의 책. 뒷부분에 가면 노무현에 대해서는 “그는 권위있고 안정감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거칠고 직설적인 언행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묘사하고, 문재인 집권기의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그런데 청산해야 할 ‘적폐’의 대상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9년간의 보수정권이 남긴 오류와 국정 농단”이라는 것은 그들의 경쟁 정파가 집권한 9년을 ‘폐단이 축적된 시기’로 여긴다는 뜻이다.”고 말한다. 학생 운동권 출신들에 대한 불신이 문장 단위로 보이고, 이명박에 대해서는 쏙 날려먹은 채로, 극우세력의 대두를 진보 진영과 운동권 정치의 탓으로 교묘하게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운동권 정치가 진보 진영의 강경한 흐름을 대표했다면, 이들이 추진한 적폐청산은 보수 진영 내에서도 강경 세력의 부상을 이끌어냈다. (중략) 한국 사회에서 ‘극우적’ 세력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시발럼아.
김영삼에 대해서 평가한 부분은, 좀 더 찾아보고 싶어졌다. 저자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두 가지 문제인 “고문관의 문제”와 “집정관의 문제”를, 김영삼 정부가 과거사 청산과 군의 탈정치화를 통해 해결했고, 이 단계가 있었기에 한국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체제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평한다. 그렇겠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에 기댄 평가가 아닌가 다시 의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금융실명제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거야말로 정치와 경제, 양쪽으로 체질개선에 나선 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읽다가, 김대중 회고록에서 인용한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을 했다.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제발 사형만은 면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법정에서도 속으로 기도했다. 재판장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었고 입술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징역이었다. 입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었다. 재판관의 입이 찢어졌다.
“김대중, 사형”
……..그리고 정말로 내란을 일으켰던 윤석열은, 웃었지. 웃고 다음날 “뭉치고 일어서야 합니다.”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지. 김대중의 고통을 생각하며, 사형에 반대하는데. 꼭 그만큼의 마음으로 윤석열이 사형 판결을 받고 영원히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노태우도 잘했다는 개소리를 읽고 있어야 했는지 정말 의문이다. 책 제목이나 컨셉만 보면 2024년 12월 이야기도 나올 것 같은데 거의 안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