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라든가 윤회라든가 영원이라든가 그런 말을 그냥 곱게 믿을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으면 살기가 좀 더 무난하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세나 영원은 믿지 않고, 윤회가 있다 한들 어차피 영혼은 포맷되어서 출고되는 걸 텐데, 포맷한 하드디스크에 새로 데이터 씌운다고 해서 내 이전 생과 다음 생 사이에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음 생이 있을 지는 모르겠고, 운이 좋으면 좀 더 좋은 데이터가 씌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정의하는 것은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내는 이 데이터다 보니 과거의 업보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도 의미는 없다. (그리고 사실 과거의 업보가 현재의 생을 만든다는 식의 논리는, 결국 계급주의 재생산에 얼마나 좋은 핑계가 되었겠나) 결국 이번 생은 한번 뿐이기 때문에,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이번 생에 다 써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일도 한번에 잘 해야 하며, 다음 생을 기약할 도리가 없으니 사랑한다는 말도 이번에 다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때때로 생각한다. 나도 내세라는 걸 믿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영원이라는 게 있으면 좋긴 하겠다고. 그런 게 있다면, 다음에는 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으면, 다음에는 좀 더 능숙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아니면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대신 다음에는 좀 더 한가하게, 어딘가에서 한가하게 매트 같은 것을 깔아놓고 책을 읽으면서 느긋한 시간도 보낼 텐데, 그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내세니 영원이니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에 발명되었을 개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것조차 제정신으로는 믿을 수가 없고, 종교도 탑재가 안 되는 사람이어서 때때로 우울해진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은 영원이나 그런 것을 믿는 게 아니라, 회빙환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후회했던 것들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하지만 그런 마음과도 또 별개로, 다시 처음부터 이 모든 어리석음을, 괴로움을, 방황과 고통을 전부 반복하더라도, 다시 만나 꼭 지금만큼 사랑하고 싶을 사람들이 있기는 있다. 그런 만약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데도.
PS) 하지만 혹시 내 판단이 잘못되어 내세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깔끔한 데이터를 덮어쓸 수 있도록 이번 생에 나쁜 일은 좀 덜 하고 선한 일을 하면 좋지 않나, 나의 내세나 영원에 대한 감각은 딱 그 정도다. 파스칼이 혹시 천국이 있을 수도 있으니 종교는 믿는 편이 이득이라고 했던 것에서 약간 더 공리적인 상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