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혈통의 복원 : 만화, 펄프 픽션, 인도와 한국의 숨겨진 역사들 속 여성

어제(2026.02.07) 한국 시각으로 20시 30분, 인도 뭄바이 시각으로 오후 5시에 “Recovering Lost Lineages: Women in Manhwa, Pulp Fiction and Hidden Histories of India & Korea(잃어버린 혈통의 복원 : 만화, 펄프 픽션, 인도와 한국의 숨겨진 역사들 속 여성)”라는 제목으로 인도 문학 투어 관련 온라인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작가 커뮤니티 잉크 앤 퀼(ink & quill collective)의 아리짓 난디(Arijit Nandi)님이 사회를 맡으시고. 인도에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 기반하여, 신화 속에서 악녀로 묘사된 여성들의 이면을 그린 페미니즘 소설 “랑카의 공주” 등을 쓰신 카비타 카네(Kavita Kané) 선생님과, 블라프트 출판사의 주간 및 편집자이신 라케시 칸나(Rakesh Khanna), 라쉬미 루스 데바다산(Rashmi Ruth Devadasan)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체 진행 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로 짧아서 준비한 질문과 답변을 모두 나누진 못했는데, 제 블로그에는 사전에 준비했던 제 답변들과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포함해서 올려놓겠습니다.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전혜진입니다. 픽션으로는 SF 와 사회파 호러, 논픽션으로는 여성의 문화와 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쓰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청소년기였던 1990년대, 여성의 장르라고 무시당하면서도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과 사회비판이 이루어지던 진보적 장르, 한국 순정만화의 전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텍스트와 SF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국 순정만화의 아이”로서 이 자리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텍스트로는 몇번 썼는데, 한번쯤은 육성으로도 “텍스트와 SF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국 순정만화의 아이”라고 자기소개 하고 싶었어요. 해냈어. ㅋㅋㅋ

함께 작업하는 여성들(캐릭터, 작가, 혹은 전통)을 생각할 때, 그들이 잊히거나, 폄하되거나, 혹은 단순히 잘못 읽히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한국에서는 권위있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전부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며 “여성들의 독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상이 생긴 이래 44년만에 처음이었는데도요. 여성 작가들의 약진 때문에 남성 작가가 기가 죽는다는 기사가 나온 것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한강 작가님이 아니라 여러 물의를 일으켰던 남성 작가 고은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에로틱한 소설로 인식하는 남성 독자도 많았습니다.

현재 한국의 SF 장르는 비남성 작가가 절반 이상이고, 여성 독자가 많아서 조금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공식적인 평론의 세계에서는 다양하게 오독되고 있습니다. “여성”이라서 일어나는 오독과 “장르 자체에 대한 편견”으로 일어나는 오독, 양쪽 모두로요. 그냥, 하루하루가 이런 오독과 폄하의 날들이죠.

이상문학상 여성 독식;;;;을 우려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자, 다들 기막혀 하셨습니다. 아아, 조국의 남성들이여, 제발 쪽팔린 줄 알아라…… (물끄럼) “채식주의자”를 에로틱한 소설로 인식한다는 말에도 탄식이 들려왔는데요. 하, 정말…… (물끄럼)

상실 대신 생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여성들의 이야기가 결코 사라진 적 없이, 단지 공식 역사의 바깥에서 숨 쉬며 살아왔던 그 형태들을 통해서 말이죠. 당신은 한국의 무속과 순정만화를, 공식적인 인정에 의존하지 않는 계승 체계로서 기술해 왔습니다. 한국이 성리학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무속은 살아남았습니다. 공식 역사에 진입할 수 없었던 것들은 다른 곳에서 인내하며 견뎌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 그 자체를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나요? 그것은 무속을 ‘대항 역사’의 위치에 놓는 것인가요?

많은 문화권에서 그렇듯 한국 역시 공식적인 기록은 상류층 남성, 특히 한자를 사용하는 남성 지식인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별받는 쪽, 여성들, 민중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와 전설, 무속신앙이 있었습니다. 즉 대항 역사로서는 무속 뿐 아니라, 여성들과 민중의 문화 전체가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한편 조선의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는데, 이 한글은 여성들과 민중들의 글자로 남았습니다. 상류층 여성들은 물론 서민들, 나중에는 노비들도 한글을 사용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 한글이 “세종대왕이 발명한” 글자였다는 거죠. 권력자들이 없애고 싶어도, 조선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왕님의 업적을 어떻게 없애겠습니까. (웃음)

18세기부터는 “방각본”이라 불리는 한글로 기록된 다양한 읽을거리(펄프 픽션)들이 세책점(도서 대여점)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신화나 전설, 구전된 이야기나 소설들을 기록한 것으로, 이들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은 바리 공주를 연상하게 하는 고초를 겪으며 과거의 업을 씻고, 위대한 존재가 되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거나 훌륭한 남편과 결혼합니다. 이는 현실에서 차별받던 여성들의 소망을 반영하고, 당대 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들 한글 기록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구전설화들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이들 이야기들을 지켜내는 또다른 힘이 되었습니다.

순정만화와 비교해 볼까요? 1990년대 한국에서 남성 작가들의 만화는 사극, SF, 무협,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로 나뉘어 분석되었지만, 여성 작가들의 만화는 “순정만화”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묶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많은 뛰어난 여성 작가들이 만화를 통해 당대의 문화적 한계를 초월하는 성취를 보였고는데, 이들 만화에는 “순정만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대체 어디가 칭찬인지 모를 수식어가 붙곤 했어요. 게임으로도 널리 알려진 김진의 “바람의 나라”, 신일숙의 “리니지”같은 작품들은 순정만화의 대표주자였지만, 역시 같은 말을 들었고, 평론에서도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구전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한글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듯이, 순정만화 역시 만화는 물론, 다른 장르의 여성 작가들을 통해 계속 재소환되고 있습니다. 한국 SF 작가들에게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들을 물었을 때, 김보영, 김주영, 은림, 전혜진 등은 김진, 강경옥, 신일숙, 권교정 등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하고, 한국 SF의 새로운 시조 격인 듀나도 순정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 책들은 현재의 작가들이 과거의 SF 순정만화를 다시 창작한 것이죠. 듀나는 신일숙의 “1999년생”을, 박애진은 강경옥의 “라비헴폴리스”를, 전혜진은 권교정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다시 쓴 것입니다. 과거 소녀들의 장르라는 이유로 폄하되고, 정당한 평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잊혀지기도 했던 과거의 명작들이, 현재의 작가들을 통해 재소환된 예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여성 스승과 여성 제자의 계보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계보 없이 뚝 떨어져 있던 것 같던 이들이, 자신에게 언어의 통로를 열어준 정당한 계보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것, 이것은 바리공주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망할 오타쿠라서 이 장면에서 “바람의 나라”, “1999년생” 등을 꺼내서 표지를 보여드리며 말하고 있었죠. (웃음) 내가! 성공한! 덕후다!

** 무속을 여성 중심의 경제, 지식 체계, 그리고 의례적 권위로 묘사하셨는데,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한국에서 무속인은 주로 여성이 맡았고, 남자가 무속인이 될 경우 “박수무당”이라고 따로 불렀습니다. 무속 자체가 여성의례였습니다.

여성은 결혼을 통해 남성의 집안에 편입되고, 남편이 나이가 들고 가장이 되면 시어머니에게서 가정의 “곳간 열쇠”로 상징되는 권위를 넘겨받고 가장의 아내인 “주부”로서 집안을 경영하고 여성의례에 속하는 가정의례를 주관할 권리를 가집니다. 이들은 가정의례를 위해 전문가이자 같은 여성인 무당을 불렀고요.

무당에는 세습무, 강신무, 학습무가 있었는데, 세습무는 무당의 딸이 또 다른 무당의 며느리가 되어 시댁의 무속을 배우는 형태였습니다. 강신무는 어느날 갑자기 신이 오고, 신어머니를 찾아 하늘과 사람 사이의 통로를 만들듯이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습무는 혈연이나 신내림 없이 결혼이나 다른 이유로 무업을 배워서 익히는 경우입니다. 세 경우 모두 이 관계는 신어머니와 신딸이라는 여성 스승과 여성 제자의 계보로 이어지며 무당으로서의 할 일을 배우며 그 권위를 물려받고 노래와 춤을 통해 비정전적 체계에 의한 신화를 전승받았습니다.

성리학에서는 자식 없이 죽거나 일찍 죽은 사람은 조상으로 모시지 않았고, 시집가서 죽은 딸도 출가외인이라 하여 남으로 여겼지만, 여성의례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가족이나 어려서 죽은 자식, 시집간 딸이나 고모 등 다양한 가족들과, 집안을 다스리는 크고작은 신령들에 대한 제사를 모시며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추모의 기억을 이어가며, 가족의 평화를 빌거나, 병든 가족이 빨리 낫기를 기원했습니다. 이들의 의례는 구전으로, 그리고 때로는 한글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양쪽 모두, 비공식적인 체계의 기록이지요.

** SF 순정만화는 ‘소녀들의 로맨스’라며 치부되었습니다. 그러한 치부가 어떻게 여성들이 정치, 페미니즘, 심지어 사변적 미래까지 실험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나요?

순정만화는 여성 작가가 창작하고 여성들과 소녀들이 읽었는데, 남성들은 “평범한 여자애가 사연 많은 미남과 사랑에 빠지는” 하찮은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평론가들조차도요. 하지만 남자들이 이 이야기들은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덕분에 순정만화는 덜 검열받고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로맨스라는 기본 틀 안에서 순정만화는 SF와 사극,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되며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게 되었고, 페미니즘과 사회 비판 등을 포함하는 가장 진보적인 장르가 되었습니다.

제가 SF 작가이다 보니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라는 책도 썼습니다만, 초기 한국 SF의 주류는 1970년대까지의 남성 작가들이 쓰던 청소년 문학과 1980년대 초반 고유성, 김형배 등의 SF 만화로 이어집니다. 1987년 발표된 복거일의 SF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마지막으로 한국 SF는 한동안 단절된 듯 보였습니다. 한국 SF의 새로운 시조인 듀나가 PC통신에 출현한 것은 1994년이고, 듀나가 SF 작가로 알려진 것은 몇년이 더 지난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1987년에 출간된 강경옥의 “별빛속에”와, 신일숙의 “1999년생”,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 등을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넓게는 2010년까지 한국 SF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간 것은 여성 작가들이 그린, 사회를 비판하며 미래를 전망하던 SF 순정만화였고, 이 작품들은 당시의 소녀였던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한국 SF에 여성 작가가 많은 것과, 이들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진보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장 진보적인 매체였던 순정만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들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카비타 선생님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악녀로 과잉 상징된 여성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작업은 전혀 상징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을 다루고 있고요. 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폭력인가요, 아니면 같은 폭력의 서로 다른 형태인가요?

글쎄요, 성리학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여성은 살아서는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구전 설화, 특히 귀신 이야기에서 이들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지요. 이들은 상징조차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악녀”로 상징화되고 변명할 길조차 막힌 것과, 상징조차 될 수 없이 목소리를 빼앗긴 것은 타인에 의해 멋대로 평가되고, 대상화되고, 그리고 남성들의 잘못을 대속하는 “악녀”들이나 “침묵하는 존재들”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폭력입니다.

이번 웨비나 전에 카비타 카네 선생님의 “랑카의 공주”를 읽었어요. 라마야나에서 라마와 락슈마나 형제 앞에 나타나 그들을 유혹하다가 코가 잘리고, 오빠에게 돌아가 라마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라마의 아내인 시타를 빼앗아 아내로 삼으라고 권했던 “악녀” 수르파나카 공주의 삶을 다시 조명한 이야기입니다.

**펄프 픽션은 잊혀진 여성 서사를 복원하는 대안인가요, 아니면 신화가 애초에 허용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루는 관점인가요? 

한국에서는 전기수라는,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18세기 무렵부터는 구전된 이야기가 한글로 기록되어 “방각본”이라는 책으로 유통되었지요. 장편 서사를 형식이 갖추어진 노래 형태로 들려주는 “판소리”라는 예술도 있었습니다. 이들 구전설화나 방각본, 판소리 등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이를테면 말뚝이라는 하인 캐릭터는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합니다. 유명한 판소리의 주인공 춘향은 진실한 사랑을 통해 신분 차별을 넘어서 신분 낮은 여성이라도 같은 인간이라는 진실을 말하는 혁명적 캐릭터고요.

한국인에게 있어 펄프픽션, 순정만화나 현재의 SF나 웹소설 같은 장르문학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메인스트림에서 빗겨난 스낵컬처로 여겨져 제대로 비평되지 않고, 때로는 기득권의 입맛대로 폄훼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확장되며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구전설화와 방각본, 판소리, 현재의 장르문학까지, 이들 모두는 기득권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현실의 모순을 건드렸고, 때에 따라서는 시대의 모순을 봉합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것들은 허용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차별받고 폄하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오독되었을 뿐이죠.

그리고 이런 차별 역시,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다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장르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모순들을 다시 호명해 현재의 독자들과 함께 걸어가며 미래를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미래의 독자들이 우리의 순간을 되돌아본다면, 당신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어디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주 오래 전 빨래터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들부터, 여자중학교 교실에서 친구들 사이에 빙빙 돌던 학급 노트의 릴레이 소설,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까지, 어디에나 여성들의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설령 주목받고 비평되는 메인스트림이 아니더라도, 주변 어디에서라도, 모든 곳에서 발견되어 왔습니다. 로맨스 소설로, 순정만화로, BL 소설이나 팬픽으로. 그리고 미래의 독자들은, 적어도 여성 작가 전성시대라서 남성 작가가 힘들다거나, 여성 작가가 상을 휩쓸어서 걱정이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설마 아무리 21세기라도 그렇게까지 미개했을까 하고 낄낄 웃어넘길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예, 지금으로선 그렇습니다.

추가질문 : 작가의 성별에 따라 쓸 수 있는 장르나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SF 작가들 중에는 비남성이 절반 이상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아직 20대 초반일 때는 여성 또는 남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던 작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정체화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변하진 않죠. 그 사람은 그 사람입니다.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순정만화에서는 애초에 그 장 안에서 수많은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고, 사실은 장르라는 것도 상업적인 기준이고, 사람은 사람이고, 작품은 그 자체로 작품이고 그 다음에 장르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은 자신이 천착한 문제에 더 몰두하는 법이니까, 여성 작가와 성소수자 작가들이 여성과 성소수자, 지금 이야기되어야 하는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들을 더 하게 된다고는 생각합니다.

퀼마크 3호 잡지 커버 공개

잉크 앤 퀼의 문학잡지 퀼마크 3호의 커버스토리로 바리공주에 대한 내용이 들어갑니다. 이 내용은 제 책인 “규방의 미친 여자들”에 수록된 바리공주에 대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고요. 표지 일러스트에 대해서도, 제가 자료를 모아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래서 커버 공개와 간단한 인사를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표지의 바리공주 일러스트는 현재 한국 무속의 진오귀굿에서 사용하는 노란색 몽두리와 큰머리 등의 자료를 모아서 보내드렸는데, 그대로 무신도에서 빠져나온 것 처럼 잘 그려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일러스트에서 한국 문화를 존중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기뻤습니다.

퀼마크 3호에서는 저의 책, “규방의 미친 여자들”에 요약하여 소개한 바리공주 설화의 내용과,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실려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신들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 인도에, 한국 신의 대표로서 바리공주를 소개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For the Princess Bari illustration on this cover, I gathered and sent materials images such as the yellow mongduri and keunmeori used in the current Korean shamanic “Jin-o-gui-goot,” and I was very surprised because this illustration like Mushindo, Korean traditional portrait of god or goddess. I am so happy because I could feel the heart of respecting Korean culture in the illustration. Thank you very much.

In Quillmark No. 3, the contents of the myth of the Princess Bari, which I summarized and introduced in my book, “Mad Women in the Boudoir”, and a simple explanation of it are included in both Korean and English together. In India, which is known as the land of gods in Korea, it is an honor to be able to introduce Bari-gongju as a representative of Korean gods. Thank you.

인사를 하고 보니 웨비나에 일러스트레이터 님도 들어와 계셨다고 합니다. 다른 건 통역사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 대목은 영어로 준비하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바리공주가 표지와 커버 스토리에 수록된 퀼마크 3호는 2월 15일 개막식에서 뭄바이 총영사관에서 소개해 주신다고 합니다. 실제 표지는 그때 보여드릴게요.


게시됨

카테고리

작성자

태그: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