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과 소망

새해 들어서, 엽편 한 편을 썼고, 장편 한 편을 끝냈고, 1월 말까지 또 단편 한 편, 2월 말에도 또 한 편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부지런하네.)

부지런하게 글을 쓰면서, 내가 그냥 매일매일 닥쳐오는 마감을 밀어내는 건 아닌가, 나의 이 일은 분명 노동이자 창작이니, “납기 예정일”에 맞춰 매일매일 채워내는 분량 안에 얼마나 내 목소리가 담겨있는가, 그 생각도 자주자주 한다. 그냥 분량만 채우지 않기를, 어디서 본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기를, 답습하지 않고 조금은 새로운 것을, 그냥 읽고 넘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말을 하기를. 그래서 부디 누군가에게 그 목소리가 닿기를.

10년쯤 전, 갓난아기 육아를 하던 시절의 나를 지탱하던 말은 “나는 느리지만 멈춰선 건 아니야”였다. 그 말은 그때 연재하던 만화 “PermIT!!!” 에서 진수 아빠의 대사로 다시 한번 나왔다. 그때 끼던, 지금은 좀 찌그러지고 때가 많이 앉았지만 여전히 때때로 끼는 은반지에 그 말이 가늘게 새겨져 있다. 지금 내게, 남들 앞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말은 아마도 “입을 닥치고 살 것 같으면 왜 작가를 하고 살겠냐”일 테고, 아마 혼자 있을 때 하는 생각도 있긴 한데…… 어쨌든 둘 다 말이 좀 거칠어서 끼고 다니는 것에 새기기엔 좀 그렇다. 어쨌든 나에게도 글을 쓰는 데 대한 나름의 윤리도 있고, 어떤 것을 쓰겠다는 지향도 있으며, 그것을 위해 때로는 무엇을 바칠 것인가에 대한 기준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어린이들은 10분 간격으로 내 책상 옆에 나타나고, 더 어린 쪽은 의자에 올라와 내 등에 푹 기댄 채 꾸벅꾸벅 졸다 가기도 하지만, 오늘도 “작가는 그래도 투잡이 되지 않겠느냐”고 농담하는 편집자인 친구에게 “글 안 쓰면 죽을 것 같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때려치웠을 거다”하고 입을 내밀고 말하기도 했지만.

저는 평생 제가 말해야 할 것을 말하는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말들이 미래의 나를 지탱하며 그 다음날로 데려갈지 몰라도, 나를 지탱했고 지탱하는 모든 말들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오늘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오늘 누군가의 앞에서 머리 숙여 중얼거린 내 작은 서원 역시, 이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나와 함께 가기를. 그 모든 말들이, 약속들이, 나를 도와 내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들을, 그 안에 자리한 마음들을 지켜내기를. 그리하여 나의 글이 나보다 먼저 꺾이고 닳고 무너지는 일 없기를.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from “Here I stand for you”,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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