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에피소드는 “블랙잭 창작 비화”에서도 읽었던 내용이라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일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테즈카 오사무가 어떻게 했는지를 읽게 되곤 한다. 신기할 정도다. 작가로서 존경한다, 그런 영역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읽으면서 이건 어시스턴트나 편집자, 매니저에게 못 할 짓이 아닌가, 쇼와 시대에는 이래도 되었다는 건가 하고 기막혀 하게 되는 대목도 분명히 있는데도. (편집자에게 목욕탕 다녀온다고 하고 효고 현까지 튀는 이야기라든가, 마감 지났는데 다시 그리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역시 만신”하고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렇지만.)
신기한 것은, 테즈카 오사무에 관한 책들은 국내에 들어오는 대로 한 권 한 권 읽고 있는데, 점점 갈수록 “위인전”같은 느낌으로 접근하는 게 보여서…… 물론 이런 책들은 대체로 테즈카 프로덕션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가능하면 테즈카 오사무의 언행을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인 형태로 남기고 싶다거나, 그러면서도 모두가 존경하는 만신에 대해 더욱 대단하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긴 한데, 평범한 작가가 같은 짓을 했다면 오래오래 흑역사로 비판받았을 만한 일까지도 “우리 선생님은 대단해”같은 느낌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좀 묘한 느낌은 든다. 그만큼 인품이 훌륭했다는 뜻으로 봐야 하나. 사실 이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며 잠도 푹 못 자는 작가가 인품까지 훌륭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여튼 테즈카 프로덕션을 거쳐서 나오는 이 시대의 기록들을 보면 뭔가 “흘러간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느껴지긴 한다.
만화가로 오래 남아 있을 수록,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차이를 강하게 인식하고, 시대 감각에서 멀어진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책에서 건진 구절은 이 대목.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이 시대 감각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인세 수입이 부정기적인 동안에도 먹고 사는 문제가 없다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수월하다거나 하는 부차적인 이익도 있지만.)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작품속의 세계에 푹 빠진 나머지 현실 감각이 둔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다는 것이 이 부분을 좀 보완해줄 때가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안정적인 회사”다 보니 세상 풍파에 대한 감각은 개인적으로 계속 곤두세워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 젊은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계속 일했으니까 혼자 일하는 작가보다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수월했을 것 같긴 한데도, 계속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시대와 함께 가려고 하는 노력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블랙잭 창작 비화”를 다시 꺼내서 읽어야겠다. (웃음) “전부 리테이크예요.” 부분을 진짜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