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법 – 헤르만 헤세의 그림 여행 – 헤르만 헤세, 이은주, 국민출판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처음으로 시도한 그림 그리기가 저를 위로해주고 구원해주지 않았다면, 제 삶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겁니다.”

작년에 알라딘에서 헤르만 헤세의 그림으로 만든 달력을 연말 상품으로 낸 적이 있었다. 표지에는 펜화 위에 수채가 올라간 그림이 있었으나 능숙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그게 열두 달의 그림 중에서 제일 잘 그린 것이었다. (다른 그림들은 그다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도기 접시에 대한 템페라 물감에 대한 사랑과 그림을 그리는 환희에 대해 표현한 바 있었으니, 본인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그런 표현이 나오는 것이었을 것이라고도 짐작할 수 있다. 헤세는 생전에 우울증을 앓았으니, 이들 그림이 정신적인 고통을 해소하는 한 방편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들여다 보면 사람이나 동물은 없이, 움직이지 않는 사물, 꽃, 그리고 산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아마도 미술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헤르만 헤세의 그림에서 지금 내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을 더 많이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힘들 때 베이킹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아니, 하지만 그와 별개로 사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

1916년부터 1917년까지 헤세가 얼마나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 끈기있게 연습해 숙련된 그림 솜씨를 익히게 되었는지는

아니야.

그가 언어로는 당연히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 만한 것을 그림으로도 마침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 때 까지

미쳤냐. 헤르만 헤세는 문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인데, 여기 있는 그림은 그냥 동네 공립도서관의 중년 수채화 모임에 오래 다닌 사람의 그림보다 나을 게 없다고. 어디 헤세의 글에다가 그의 그림을 비벼.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인 “색채의 마법”이라는 말이나, 책 뒤에 언급된 앙드레 지드, 로맹 롤랑의 찬사는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아니, 작가가 동료 작가를 글로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의 못그린 수채화로 칭찬하는 건 사실은 고도의 ‘멕이기’가 아닌가? 나는 예술적 업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존경할 만한 일을 했던 상사들을 몇 분 아는데, 이분들 중에는 색소폰을 좋아해서 자기 은퇴할 때 색소폰 리사이틀을 하고 나가신 분도 있다. 하지만 누가 그분의 색소폰이 케니 G에 필적한다거나 뭐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그 분은 그건 그냥 취미고, 자기가 한 일로 평가받는 분들인데. 그런데 이, 헤르만 헤세의 그림에 붙는 낯간지러운 찬사들을 보고 있으면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알려져 있는 유명한 가짜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너무 정색을 하고 리뷰했는데, 이 책은 헤세의 짧은 글들은 좋았고, 헤세의 그림은 보면서 “아저씨 애쓰셨네.ㅋㅋㅋ” 하면서 볼 만 하고, 헤세의 그림을 칭송하는 글을 보면 “눈깔이 삐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생각에 이 그림들은 정신과 의사나 미술치료 전문가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이지, 미술 평론의 영역에서 건드릴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뒤에 붙어 있는 폴커 미헬스의 글은 낯뜨겁기 그지없다. 제목에서 굳이 색채 이야기를 해서 하는 말이지만 색채 면에서는 특히……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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