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지금 여의도에 가.”
그날 네 전화를 받은 것은, 밤 열한 시가 되기 조금 전의 일이었다. 그 직전에는 회사 단톡방에 올라온 계엄 소식을 보고, 가짜뉴스다, 거짓말 하지 마라. 이게 어디 말이 되는 일이냐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어. 누군가가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는 영상을 올리고, 또 뉴스 링크도 올렸지. 그 무시무시한 상황이 AI로 만든 가짜뉴스가 아니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어. 이걸 어쩌나. 또다시 사람들이 죽는 건가. 이 나라는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거야. 지금이 몇 년이야. 2024년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가 있어. 눈물이 찔끔 나려는데, 신입 직원이 채팅방에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순진하게 묻고 있었어. 거기에 뭐라도 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폰을 집어드는데, 칼날이 떨어지듯 네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 돼, 가면 안 돼.
그 순간 나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회사 단톡방의 메시지를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어. 그 순간 내 눈에 보였던 것은, 그래, 광주 적십자병원에 실려 오던 사람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푸르게 살아 있었고, 아직은 더 키가 클 것도 같았던 이들의 모습이었다. 적십자 병원 앞에서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머릿수건을 두르고 바닥에 쏟아진 피를 닦던, 그때의 기억들이 단숨에 되살아나 군홧발 소리 요란하게 달려와 내 목을 잡아 비틀고, 명치에 대검을 박아넣는 것만 같았어.
“너 지금 어디 간다는 거야.”
“여의도 간다고. 아, 그게. 편집장이 국회로 오라고 했어. 지금 그쪽으로 국회의원들 다 모이고 있다고.”
“안 돼! 얘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고!”
“걱정 마, 성은이도 같이 있어.”
성은이도 같이 있다는 말에, 나는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심장이 미친 듯이 달리다가 그대로 멎어버릴 것 같았어. 벌써 너와 십 년 가까이 같이 살고 있는 성은이는, 내게는 딸의 친구라기보다는 뒤늦게 생긴 딸 같은 아이였는데. 너와 그 애가 함께 지금 국회로 가고 있다니. 가면 안 돼, 유림아. 성은이도. 가면 전부 죽을 거야. 그런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면서, 나는 어떻게든 너를 붙잡았지.
“성은이는 왜 데리고 가, 날도 추운데!”
“괜찮아, 둘이 있으면 덜 춥고 좋지 뭐.”
“지금 언론, 출판도 다 막는다며. 거길 가면 어떡해.”
“어떡하긴, 그걸로 먹고 사는데 가야지. 그리고 좀 전까지 제1야당 당대표가 라이브 켜고 국회로 들어갔어. 국회의장도 담을 넘어갔다고 그러고. 괜찮아. 어떻게든 될 지도 몰라.”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유림이 너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너는 몰라. 너는 위정자의 변덕으로 벌어지는 계엄이 어떤 것인지, 정말로 몰라. 언론과 출판의 입을 막고, 군대를 보내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사소한 자유들을 규제해 좁은 틀 안에 밀어넣고, 결국에는 제 이웃을 고발하게 만드는 그런 것을 너는 몰라. 적십자 병원 복도에 뚝뚝 떨어져 있던 시뻘건 피와, 그 몸에 담긴 피가 전부 새어나와버린 것 같던 얼굴과, 총구에 찢기고 대검에 베이고 개머리판에 맞아 팔다리가 부러져 성하지 않던 그 몸뚱이들을 너는 몰라. 상무관을 채우던 그 차가운 몸뚱이들과, 그들을 담은 작은 관 위에 덮이던 태극기들을, 아직은 더 키가 크리라고 일부러 입힌, 큼직한 셔츠나 바지 안쪽으로 뭉개져버린 몸을 부여잡고 울부짖던 자식 잃은 부모들을, 너는 책으로 읽고 활자와 흑백사진 너머로만 알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괜찮아, 괜찮아. 날도 추운데 이 엄동설한에 물대포 같은 거나 안 쏘면 좋겠는데. 아, 다 왔다. 잘 다녀올게.”
아니야, 너도 알고 있는 거지. 주간지 기자라지만 뭐가 그렇게 바쁜지 생전가야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하는 법이 없어, 목소리 듣고 싶으면 꼭 내가 먼저 걸게 만들던 네가, 이 밤중에 내게 전화를 다 하는 것을 보면. 혹시나 제 신변이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 정도는 하는 거겠지. 어떻게 네가 모를 수 있겠니. 나는 끊어진 전화를 붙잡고, 숨이 멎을 것 같아서 한 호흡 한 호흡을 세면서 깊이 숨을 쉬었다. 이게 네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이면 어쩌지,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말이다.
계엄령이 내리면, 그때부터는 경찰이 아니라 군인들이 치안을 맡게 되지. 군인들은 물대포같은 것은 쏘지도 않을 테지만, 경찰이 쏘는 물대포라고 해서 사람을 상하는 물건이 아닌 것도 아니지. 아홉 해 전, 박근혜 퇴진 시위 중에 물대포에 맞아 중상을 입고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같은 분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 차가운 물이든, 군인들의 무기든, 어느 쪽이라도 너를 다치게 할까봐, 상하게 할까봐, 나는 치가 떨렸어. 애초에 그 겨울날에 사람을 정조준해서 물대포를 쏘는 것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리가 없잖니.
유림아, 나는 그때 아직 사무실 막내 기자였던 네가, 그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을 취재하던 것을 기억해. 네 아빠도 생전에 네게 말은 안 했지만, 네가 뭘 하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매주 조용히 챙겨 읽고 있었어. 그때 네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희 아빠가 출근을 했더니, 상사가 서명 용지 같은 것을 내밀었다더라. 그 물대포를 쏜 경찰에 대한 탄원서였어. 같은 경찰들이 힘 합쳐서 도와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는데, 너희 아빠는 차마 거기 서명을 할 수가 없었댄다. 그래서 빈 용지를 돌려드리면서, 다치신 분이 우리 딸 선배 아버지라고, 우리 직원 일인데 도와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몇 번을 굽신거렸다고. 아빠는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진급에서 밀린 것이 설마 그 일 때문은 아닐 거라고 했지만, 나는 모르겠어. 나는 그것이, 어쨌든 경찰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너희 아빠가 너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으려고 정말 최대한의 용기를 낸 일이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해. 엄마네 회사에서도 때로 그렇지만, 그 나이 때의 남자들에게 있어 조직 생활이라는 것은 때로는 인생의 전부이기도 하거든.
그때 회사 단톡방에 누군가가 영상을 올렸어. 국회 근처로 장갑차인지 탱크인지가 가고 있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거야.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 네가 잘못될까봐, 성은이가 잘못될까봐, 지금 국회로 가고 있다는 사람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잘못되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때 계장급 이상이 모여 있는 또 다른 단톡방에, 국장의 묵직한 한 줄이 올라왔지.
국장 : 경거망동하지 말고 정치적 중립 준수할 것
그 순간, 뭔가 속에서 확 올라오는 것 같았어.
나 : 헌법을 대놓고 어겼는데 잘못했다는 소리도 하지 말라고요?
그 말을 단톡방에 올리자마자, 단톡방은 그래도 공무원이니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말과, 헌법 어긴 건 사실 아니냐는 말들이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그런 단톡방의 내용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유튜브로 현장의 라이브가 올라오는 가운데, 장갑차를 가로막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술을 앙다문 채 주먹쥔 오른손을 들고 군인을 쳐다보던 성은이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다음 날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무슨 말을 들을지, 아니, 내일 사무실에 출근할 수는 있을지,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어. 그저 패딩을 입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서, 그저 여의도로,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어. 주차장에 이중 삼중으로 주차된 차를 뺄 수가 없어서, 대로변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국회의사당으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먹먹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어.
“제가요, 태어나기는 장성에서 태어났는데 고등학교를 광주로 갔습니다. 광주상고요. 그때 봉황대기 우승하고 아주 유명했었지요.”
광주상고가 봉황대기에서 우승한 것은, 그 일이 있기 한 해 전의 일이었어. 나는 택시기사가 나보다 한두 살이 더 많겠구나 속으로 어림해 보며, 그가 울먹이며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만 있었어. 여의도로 들어가는데 점점 차가 밀리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더 두려워졌어.
“그게, 손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저는 너무 무서워요. 무섭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니까, 알 것 같아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일을, 이런 식으로……”
울먹이던 택시기사가 신월여의지하차도를 빠져나오다 말고 갑자기 차를 세웠어.
눈 앞에서 헬기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남쪽에서부터 날아온 헬기들이. 헬기가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도청을 향해, 그 앞에 있는 전일빌딩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낮게 날며 총을 난사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서 나는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어. 그건 택시기사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하지만 동시에 나는 보았어. 국회를 향해 꾸역꾸역 기어가는, 택시들과 승용차들을, 평범한 자동차들의 행렬을.
“국회로…… 조금만 더 가까이 가 주세요.”
나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그러모아서 말했어.
“제 딸이 지금 거기 있어요.”
택시기사는 딸이라는 말에,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 까지 택시로 가 주었어. 그리고 돈을 내려는데, 받지 않았어. 자기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안 될 것 같다면서. 국회를 향해서, 한두 명씩, 때로는 가족 단위로, 때로는 정당의 깃발을 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가고 있었어. 우리는 그렇게 걸어가면서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군인들이 국회로 밀고 들어가는 것을 젊은 여성이 가로막는 모습을 보았어. 유리창을 깨는 군인들과, 그들을 막으려고 온갖 집기들을 다 꺼내 길을 막는 보좌관들을 보았어. 그리고 마침내 국회의사당의 담장 근처까지 도착했을 때, 우리는 눈이 시리도록 밝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등진 채로, 군인들을 향해 소리치고 외쳤어. 어떤 군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지만, 어떤 군인들은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거나 조롱하는 손짓을 하기도 했어.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지. 지금 멈추면 저 군인들은 국회로 들어설 테고, 계엄을 막아 보겠다고, 국회의원들이 계엄을 해제할 때 까지 시간을 벌어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의 고생은 전부 헛수고가 될 테니까.
나중에 보니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살면서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본회의가 가결되었다고 누군가 소리쳤을 때, 나는 그만 맥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 했어. 이걸로 끝난 걸까? 누군가는 대통령실에서 계엄 해제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했지만, 군인들의 반응은 분명히 달라졌어.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이제 계엄은 해제되었다고, 돌아가라고 소리쳤고, 조금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군인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가 조금은 밀도가 느슨해진 겨울의 공기 사이로. 성은이의 목소리가 들렸어.
“어머니? 여긴 웬일이세요? 날도 추운데.”
나는 대답 대신 성은이의 등짝을 철썩 하고 때렸다. 패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지.
“그러는 너는!”
“편의점에 야식 사러 가려고 나왔는데, 저 미친 새끼가 계엄을 선포한다잖아요.”
“그런다고 여기까지 와?! 여의도가 너희 앞집이니?”
“유림이네 편집장이 국회로 오라고 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애도 너를 혼자 보낼 수가 없었던 거겠지. 그 마음이 고맙고도 서글퍼서, 나는 성은이를 꼭 끌어안았다.
“유림이가 좀 부럽네요.”
“또 뭐가. 혼내러 왔는데.”
“그래도요.”
“아까 장갑차 앞에서, 그거 너지? 애가 겁도 없어. 무섭지도 않디?”
“무섭긴 했는데, 어차피 못 막으면 언론 출판 다 망할 거였잖아요. 그리고 술이나 처먹는 새끼들이 헛소리 하는 것 때문에 망할 정도의 나라는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성은이는 작은 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 애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어.
“왜.”
“아니,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서요.”
“이런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는데 감상적인 생각이라니. 무슨 공포 소설이라도 만드는 거냐?”
“그렇다기보다는…… 정말 조금만 뭔가 안 맞았어도 계엄 해제 못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게 정말 되나 싶어서요. 마치 누군가가 간절하게 몇 번이나 시간을 되감으면서 어떻게든 성공시킨 세계선 같지 않아요?”
그런 게 정말로 있었다면, 나는 몇 번이라도 1980년, 광주의 시간을 돌리고 싶었겠지만.
“그런 게 있다면 누군가는, 다시 시간을 되돌려서 이걸 성공시키려 하지 않을까?”
“그렇겠죠? 아니, 제 말씀은. 이만큼 아귀가 딱딱 맞는 게 얼마나 어렵고 또, 확률이 낮은 일인가 하는 거죠. 진짜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어려운 것 아니 되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좋았다. 그 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려, 수없이 다시 만난 세계의 어느 끝에서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던 거라면.
그렇게 구한 목숨 중에 너도, 성은이도 있었던 거라면.
“유림이 좀 빨리 나오라고 해. 춥다. 어디든 가서 야식 먹자.”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니었을까. 이 기적의 순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