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 박태원 (이상 그림), 소전서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처음 읽은 것은 수능 모의고사 대비 한국 단편소설 모음집 시리즈 같은 것이 유행하던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 이 소설은 썩 재미있는 소설도 아니었고(눈에 띄는 이벤트도 없이 그냥 구보의 하루가 죽 흘러간다.) 구보라는 인물도 그냥 현대문학에 자주 나오는 가방끈 긴 룸펜인데 유학까지 다녀온 고급 문과 룸펜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이 소설을 다시 재미있게 읽은 것은 트위터를 열심히 할 때였는데, 아마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유만주의 한양” 전시회를 보고 온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특별할 일이 없었던 어느 해, 유만주가 남긴 일기를 통해 그 해 한양의 모습들과 유만주를 중심으로 하는 “출세하지 못한 양반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전시였는데, 이 사람이 현대에 태어나서 트위터를 했으면 진짜 재미있게 떠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그런 관점에서 보면 꽤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물론 이 리뷰를 지금 쓰는 이유는, 최근 트위터(현 X)에서 사람들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를 두고, 당대의 시대상이나 그의 가난, 그리고 가난으로 말미암은 비극에 대해서는 보지 않고 김첨지 캐릭터를 츤데레라든가, 후회남주라든가, 매력이 없다거나, 그렇게 개별 캐릭터성으로만 소비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을”을 이야기한다면, 일제강점기 인셀 예술남(게다가 작가 사진을 인물에 투영해서 머리 빗질 안 하고 동글 안경 쓴 모습으로 상상하며) 이라고 불렀겠지. (웃음) 구보는 어머니가 장가라도 들라고 하면 고개를 저으면서도, 여성과 제대로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는 여자에게 말도 못 걸면서 “그러나 만일 여자가 자기를 진정으로 그리고 있다면” 같은 망상을 하고, 다른 남자가 여성과 함께 지나가면 질투와 선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여자의 발가숭이를 아무 거리낌없이 애무할” 것을 상상한다. 2025년의 독자 입에서 섹스 못 해본 모태솔로 인셀남이냐 소리가 나와도 시원치 않지. 그런데다 대체 무슨 잡지를 보고 다니는지 모르지만 전차 안에서 무릎 사이에 양산을 둔 여성을 보며 저것이 비 처녀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중에는 “아내도 계집도 말고, 십칠팔세의 소녀를,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딸을 삼고 싶다”면서, 아리땁고 명랑하고 총명한 십대 소녀를 딸로 삼아 자애깊은 아버지가 되어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이때 구보의 나이 스물 여섯 살이다. 그는 정말로 십대 소녀인 카페 여급에게 내일 같이 놀러가자며, 가부를 수첩에 적어달라고 내밀기도 한다. 확실히 요즘 독자들의 눈에는 문제가 많은 캐릭터인데, 그렇다고 이 사람이 일제강점기에도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보였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지막에 내일부터는 소설을 쓰리라, 어머니가 권하시면 가정도 가지리라 생각하지만, 내일은 또 다시 이 소설의 도입부부터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냥 가방끈 긴 룸펜의 어느 하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구보 씨가 재미있는 부분은, 그가 작가의 눈을 지닌 사람이고, 또한 수첩을 들고 다닌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가 작중에서 수첩을 펼치는 순간은 두 장면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 소설 자체가 구보 씨의 눈으로 본 이 시절 경성의 하루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더 많이 적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수첩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다면, 시대 배경이 2025년이었다면, 소설을 쓰진 않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26세의 고급 룸펜 구보 씨가 아니라, 소설 몇 편을 습작하거나 발표했지만 현재는 딱히 정해진 직업이 없이 어머니의 걱정을 사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의 파워 트위터리안 구보였다면, 그의 트위터를 엿보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때로는 트위터나 SNS에 남겨진 기록들이 그 시대의 미시사를 반영하는 것처럼, 구보의 수첩과 구보의 눈은 이 근대시대의 미시사다. 그가 어떤 인상적인 모습을 보고 수첩을 펼쳐 기록하려 하자 쳐다보는 사복 형사의 시선까지 느껴지는.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연재 당시 이상의 삽화가 함께 실려 있는 소전서가 판을 빌려왔다. 이상의 그림 중 몇몇 컷은 인상적이었고, 생각해보면 이건 김보영 작가님이 소설을 썼는데 박애진 작가님이 삽화를 그려준 것 같은 뭐 그런 것 아닌가 싶어져서 그건 매우 부러웠다. 🙂 어쨌든 때때로 유만주나 구보나, 정조가 트위터를 하는 상상을 해 보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트위터 잘 쓰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말하자면 이건 마이크로 블로그고 140자짜리 잡기장인데, 이것이 아카이브의 대상이 되는 데는 어떤 시기 인류의 미시사(그래봤자 전 인류는 아니고, 먹고 살 만 하고 IT 기기들을 늘 쓸 수 있는, 에 국한되겠지만)를 담고 있어서겠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모더니즘이라든가, 소설의 역사적인 의의를 강조하는 것은 입시를 위해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캐릭터 중심적으로만 소설을 읽는 것은 읽는 게 아니라 동인적 해석, 또는 소비자적 관점의 독서로만 기능하는 행위인 것 같고, 의외로 근현대 소설은 지금의 현실과도 관련이 깊어서 그런걸 생각하면서 읽으면 생각 외로 재미있는 부분들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책을 읽는 목적이 재미에만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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