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밤, 나와 다른 작가님들은 플라뇌즈@페잇퍼에서 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서영 작가님과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세인트 존은 여러 모로 로체스터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죠.”
“매력의 문제를 넘어서 로체스터는 아내를 감금하고 제인과 중혼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의 말투는 이렇게 침착하지 않았다. 오죠사마들 대화라기보다는 역전재판같은 분위기이긴 했는데. 아아, 오타쿠란.***)
사실 내 생각에 로체스터가 썩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많은데, 부잣집 차남으로 태어나 이 여자 저 여자 농락하며 지낸 한량에, 차남이라 집안 재산 등을 물려받기 여의치 않으니 돈을 노리고 버사 메이슨과 결혼한 방울뱀에(뭐 그건 메이슨 가에서도 상호 합의한 범위긴 하겠다. “본토”의 신사와 딸을 결혼시키고 싶었을 테니), 버사 메이슨과의 결혼이 해소되지도 않았는데 자기보다 스무살은 어릴 성 싶은 가정교사를 유혹해서 중혼의 죄를 저지르게 만들려 했던 것까지. 재산 빼면 딱히 매력적일 것도 없는 놈이 양심도 없어요 소리가 나오는 대목이 여럿 보이는데다 미쳐버린 아내를 감금하고 다른 여자와 중혼하려 한 건 19세기에도 범죄였다고. 제인을 너무 사랑해서 치명적인 죄를 지은 게 아니냐 하고 말하기엔, 그 전에도 그는 신붓감을 찾고 있었으니 확신의 범죄자잖아……. 아이고, 이 새끼야.
사실 세인트 존은 재미는 없는 캐릭터다. 무매력에, 자기 신념만 강한 먹물에, 제인을 사랑해서 청혼하는 게 아니라 자기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제인에게 그 길을 함께 가면서 자기를 도우라고 말하는 인간이다. 서구에서 인도에 전도하는 것의 제국주의적 측면에 대해서야 역시 할 말이 많지만, 일단 그는 개인적으로 (방향이야 어떻든) 확고한 신념이 있는 인간, 그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지만 제 발로 험난한 길에 뛰어드는 종류의 인간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고 길을 잘못들어 신의 이름을 빌어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고 말았으나, 그는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굳은 의지를 가진 민주투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 전도하러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필요하니 결혼해 달라는 식의 그 망한 청혼에 대해서는, 당장 한국의 1980년대에도 나는 대의를 위해 일할테니 너는 밥좀 지어달라는 식의 꿘남들은 많이 있었고 이쪽도 지금 기준으로는 저인간들 뭔가 밥상머리부터 평등해야 하지 않는가 싶지만 일단 당시로서도 그냥 신앙에 미친 19세기 영남일 뿐이고 현대 기준으로도 한남이라고 욕먹을 일이지 범죄자 레벨은 아니지 않은가. 제인에게도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고. 얘는 거절하면 삐지긴 해도 뭐 더 해코지할 놈은 아니었다고. (적어도 안전이별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15분 기다릴테니 결정해달라고 하는 걸 보면, 15분동안 심사숙고해서 거절했으면 세인트 존은 말을 들었을 거야.”
“그 15분 기다리라는 게 너무 인간미가 없어요. 이과임?”
그리고 김보영 작가님이 끼어드심.
“자, 그래서 두분의 캔디캔디 최애는 누구였어요?”
“당연히 테리우스 G 그란체스터지.”
“당연히 아리스테아 콘웰이지.”
“아리스테아가 누구야?”
“스테아 몰라? 캔디의 사랑을 위해 깔끔하게 물러난 스테아, 사랑하는 패티의 조국을 위해 남들이 다들 군입대 안 하고 도망칠때 프랑스 공군에 입대한 스테아! 마지막에 전사하면서 패티에게 저 노을 지는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던 스테아를 모른다고!”
“걔도 이과지!”
“난 이과가 아니면 애초에 식이 아니야!!!!!!”
“님 변태?”
…….이런 정신나간 대화들을 한참 계속한 뒤, 집에 돌아와서 어린이에게 물었다.
“제인 에어에 나오는 에드워드 페어팩스 로체스터는 어떤 캐릭터 같냐?”
완역본이 아닌, 아델은 로체스터가 데려다 키우는 고아이고 버사 메이슨은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갈 곳 없게 된 전처라는 식으로 나오는 어린이용을 읽은 우리집 어린이는 대답했다.
“좀 바람둥이에 개구쟁이같고, 내 마음에는 좀 안 드는데 옛날 소설에 좀 멋진 것 처럼 나오는 남자들이 그렇지 않아?”
캬, 세상에 내 편이 없네. (웃음) 이 녀석이 빨리 완역본을 읽고 진실을 알아야 할 텐데. (먼산) 한편 우리집 어린이는 세인트 존의 존재는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역시 무매력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