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한 결혼

“나의 행복한 결혼”은 이능으로 이형이라 불리는 괴물들을 물리치는 가문들이 존재하고, 황제는 이능으로 예지를 하며 수도를 지키는, 일본의 전통과 근대가 뒤섞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능력자 집안의 딸이지만 이능을 갖지 못한 미요와 강력한 이능으로 수도를 지키는 대이특수부대장인 쿠도 키요카의 결혼으로 시작되는, 요메(嫁)물의 전형이기도 하고, 결혼부터 시작하는 순애 이야기로도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만화화, 애니메이션화, 영화화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진 인기작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이 일본의 근대화 시기, 현실의 다이쇼 시대와 겹쳐지는 면이 있어 보다 보면 껄끄러워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를테면 대이특수부대가 물리치는 “이형”이 단순히 괴물들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에서 천대시되는 존재들, 한국인이나 중국인, 그 중에서도 일본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독립운동가라든가)은 아닌가 의심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석하지 않더라도 황제(미카도)를 중심으로 이능을 지닌 가문들이 “귀족”이 되어 화려하고 신비로운 근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희의 부는 어디에서 온 거냐,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원작은 그런 점에 대해 별 생각이 없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명문가 출신의 학대받던 아가씨가 아름답고 부유한데다 능력도 최강인, 쌀쌀맞은 성품의 남자와 부부가 되어 그의 유일한 소중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만 열심히 묘사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벚꽃이 날리는 로맨스에만 집중하는 느낌. 영화는 의외로 각색이 잘 되었다. 일단 수도에 이형들이 나타나고, 쿠도 키요카는 이능을 지닌 대이특수부대의 부대장이며, 죽어가는 황제는 곧 수도에 이형들이 나타날테니 쿠도 키요카가 막으라고 예지를 하며 시작하지만, 그 와중에도 본편에서 수도를 공격하는 이들을 오쿠츠키, 즉 억울하게 죽거나 싸우다 죽은 이능력자의 원혼들로 한정해 놓은 것이 영리하게 느껴졌다. 원작에서 황제는 죽어가면서도 광증을 보이는 듯, 질투에 미친 듯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이능력자들의 혈통이 중요한 만큼 “우스바의 힘”을 지닌 미요가 이능력자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강한 쿠도 키요카와 결합했을 때 황태자인 타카이히토를 위협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인해 쿠도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명확하게 설명된다. 여기에 더해, 오쿠츠키의 봉인 아래에서 춤을 추는 우스이의 모습이 나온 뒤, 마지막에 짧은 쿠키 영상에서 흑사병 의사 복장을 한 우스이가 미요를 언급하는 장면을 넣어 다음 편도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고. 한마디로 인기 있을 만한 요소를 모았을 뿐 별 생각은 없었던 원작의 허점들을, 영화는 도입부부터 아주 충실하게 메우고 시작한다. 원작은 2권에서, 만화도 2권 중간 보다가, 애니메이션은 1기 반쯤 보다가 포기했는데, 영화의 속편이라면 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색소가 옅은 머리카락에 미형….. 등등 순정만화적 요소를 지닌 쿠도 키요카를 현실에 구현해 놓자니 이런저런 무리수가 없진 않지만, 능력이 발현될 때 얼굴에 고유의 문장이 떠오르는 연출이나 특수효과 등은 좋았다. 어쨌든 그는 “차가운 이능력자이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전형적 남자주인공이자 여러 방면에서 능력있는 츤데레지만 사랑에만은 서투른 남자로 묘사되는데, 미요가 겪었던 고통에 공감하여 처가집을 때려부수는 장면은 꽤 호쾌하다. 여기서 둘이 행복해지면 좋았겠지만, 도입부에 깔아놓은 복선들이 이때부터 터져나온다. 미요의 악몽과, 우스바 집안의 혈통 중에서도 드문 몽견의 힘을 지닌 미요가 자기 자신의 힘 때문에 죽게 될 거라는 우스바 집안의 설명과, 몽견의 힘을 지닌 사람을 평생 지키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며 결혼하자는 사촌오빠 츠루키 아라타까지. 그렇게 미요와 키요카가 강제로 이별하게 된 사이, 키요카가 지휘하는 대이특수부대가 오쿠츠키의 혼이 담긴 벌레의 총공격을 받는다. 키요카는 부대 전역에 결계를 치고 이 안에 벌레를 가두었지만, 대이특수부대는 멸절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미요는 키요카에게 달려가고, 미요는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힘으로 키요카를 구하기 위해 그의 결계를 넘어간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황제의 계시를 능가하는 몽견의 힘이 쿠도 키요카의 힘과 합쳐져 왕실을 위협하는 것을 두려워한 황제가, 누군가가 이미 파헤친 오쿠츠키를 이용해 키요카를 해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태자 타카이히토를 위해 이 일을 벌였지만, 황제의 전의로 위장한 우스이는 오쿠츠키를 이용해 황제를 시해하고 사라진다.

전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요메”물, 그러니까 불행하거나 차별을 받거나 어떤 사연으로 신부가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 소녀가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 남자의 신부가 되며 그를 진정한 사랑으로 손에 넣거나, 자신의 힘을 깨닫게 되는 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 이후로 비슷한 류의 이야기, 다이쇼 시대를 모델로 한 듯한 배경에, 강한 영능력자 남자가 차별받는 신부를 맞아들이는 류의 만화나 라이트노벨이 꽤 많이 나왔는데, 그런 유행을 이끌어낼 정도의 힘은 있는 이야기다. 한편 영화 마지막에 키요카가, 자신이 선물해 준 벚꽃 기모노를 입은 미요에게 “고생시킬지도 모른다. 나도 군인 나부랭이라 전쟁에 나갈지도 모르고.”하면서 다시 한번, 약혼이 아니라 청혼을 하는데, 영화를 보고 마지막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이 기분.

야, 야, 야, 야 이 새끼야 한국에만 오지 마. 하는 마음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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