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기 – 황정은, 창비

지난 12월 3일 밤에 계엄령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은 이 날의 일을, 이 밤의 일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라서 이걸 써서 뭔가 하겠다는 생각 이전에, 역사의 기록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생각 이전에,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종류의 사람들은 이 격렬한 재해같은 스트레스를 결국은 어떤 형태로는 쓰지 않고는 어떤 부분이 회복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나는 모국어로 이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1월에 허새로미 선생님의 영어 수업을 들었다. 영어로 글을 쓰고, 온라인으로 첨삭을 받고, 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눈 뒤 이걸 다시 써서 자기 목소리로 읽거나 하라는 과제가 나오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수강하기로 한 1차 목표는 5월에 바르샤바에 일하러 갈 예정인데 영어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서….. 였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수업을 8주동안 들으면서 영어로 말을 하기 보다는 영어로 윤석열을 욕하는 작문들을, 짧게도 아니고 A4 용지로 두세 페이지씩 써 댔다. (그리고 겐지 이야기를 영어로 설명하면서 이 책을 몇번을 읽었는데 영어로 설명하니까 진짜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소개하는 글도 한 페이지 썼다.) 그리고 수많은 웃기지도 않은 실수들을 저지르며 많이도 틀렸다. 혜진씨, 애들 보는 앞에서 욕을 안 하려고 머리에 힘을 줬다(….노력했다)고 브레인을 타이트하게 했다고 쓰면 안 되고요, 이건 영어로 숙어가 있는데……. 등등. 선생님은 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쓴다고 하셨지만, 그건 아마도 모국어로 쓰게 되면 너무 감정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서 일부러 서투른 언어로 쓰면서도 쓰고 싶은 말은 계속 나오니까, 일단 숙제를 길게 해 가니까 하신 말씀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영어로 한다고 해도 윤석열 욕과 당시 시국 이야기를 하기로 들자니 글이 술술 나왔다. (그리고 막상 바르샤바로 출발하기 며칠 전 메신저로 정보라 작가님을 붙들고 “작가님 어떡해요 저 여기 간다고 영어 공부했는데 두달동안 윤석열 욕하는 법만 열심히 공부했나봐요 ㅠㅠㅠㅠㅠ” 하고 있었다.)

오늘도 수 차례 가정한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걸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겠지. 지금보다 더.

여튼 누군가는 이 일들을, SNS가 아니라 내밀한 일기장에 기록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했고,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를 읽게 되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나 한국전쟁 때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라든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여고생이었던 주소연(훗날 서울 성동광진교육청 교육장이 된다)이 신문을 스크랩하고 잘못된 부분에 사실과 다르다고 표시를 하며 썼던 일기(이건 광주에 갔을 때 일부를 봤었다)처럼 어떤 일기들은 그 자체로 역사를 증언한다. 벌써 어떤 부분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한 분노와 공포들을 다시 떠올리며, 딱 그 시기에 언젠가 다른 글을 쓸 때 필요할 것을 기약하며 A5 노트에 잘라 붙인 기사들과 빼곡이 적어놓은 메모들을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또 어떤 것들은 이 책의 여백에 부기하면서 다시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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