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하는 것과 창작하는 것

주말에 양천구에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에 갔다. 물론 여기는 일개 구립 미술관이고, 겸재의 작품들은 국박이나 리움 등에 있지만, 영인본들 위주로 겸재의 작품세계와 그 흐름을 볼 수 있게 정리해 두어서 규모는 작지만 구성은 좋았다. 이곳에서 겸재의 산수화들을 보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겸재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 주다가, 문득 AI로 “생성하는”것과 사람이 “창작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을 좀 정리하게 되었다.

겸재는 금강산이나 인왕산 등을 실제로 가서 보고 그리는, 진경산수로 그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게 전체를 그리기도 하고, 어떤 풍경은 낮은 곳에서, 어떤 풍경은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며 그렸으며, 특정 봉우리를 집중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그 풍경이 주는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부분은 농담을 살려서 섬세하게, 어떤 부분은 먹이 뻑뻑했을 것 같이 진하고 거칠게 그렸다. 저 많은 봉우리 중 어느 것을 그릴 것인지, 같은 봉우리라도 어떻게 구도를 잡아 이 종이 안에 잡아낼 것인지, 큰 종이와 작은 종이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림에는 그리려고 한 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 이 그림에는 피사체와 구도, 표현 방식까지 수많은 선택이 들어 있다. 극단적으로 붓선 하나나, 그 정도 역량의 화가라면 물의 번짐이 만들어내는 우연까지도 어느 정도 의도와 선택으로 폭을 좁혀서 만들어낸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하나하나 그렇게 의도와 선택, 그리고 약간의 우연들이 만들어낸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작가의 선택을 받은 그림들이 세상에 나온다.

AI로 생성할 때에는 큰 방향의 의도는 있어도 세세한 중간단계의 선택은 과정이 빠져 있다. AI로 이미지를 생성할 때는 이런 저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담아서 스크립트를 입력했고, 나온 결과물 중에서 셀렉하고 수정하는 식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진과 크게 다를 게 있는가, 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프로 사진 작가들이 찍는 사진들은 사진 역시 구도와 빛, 나중에 인화 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선택한 결과다. 동물이나 풍경, 사건을 찍을 때 이런저런 우연과 “행운”이라고 겸손히 말하는 것들이 더해지지만, 그 우연도 길 가다가 거저 얻어걸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을 통해 폭을 좁혀서 만들어낸 우연이다.

결국은 AI가 학습해 온 것들 중에서 통계적으로 적절한 것, 빈도와 선호가 높았던 것들을 조합한 것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정말 미세조정이 가능할 정도로 스크립트를 쓰고 콘티를 그려넣고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조정한다면 창작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AI로 그림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은 이를테면 “보티첼리가 그림을 그리는”, 단계가 아니라 “보티첼리에게 그림을 의뢰하고 나중에 컨펌하는 메디치 가문 사람” 같은 일이다. 메디치 가문 사람이 세세한 사양을 요구하며 그림을 주문했다고 해서 그 그림을 메디치 가문에서 창작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아마 어떤 메디치 가문 사람이라도 자기가 붓도 들지 않고 요구사항만 내놓아서 만든 그림을 두고 “내가 그렸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은 AI에게 “지브리풍” 같은 남의 그림체로 만들어진 그림을 생성시켜 놓고 자기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말하지. (…….좀 많이 뻔뻔하다, 그런 걸 보면.)

여튼 여러 작업에 AI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니, 도구들이 발달해 왔고 우리는 그 도구들을 많은 작업에 활용해 왔지. AI는 데이터를 다루거나 정규식을 만들거나 맞춤법을 교정하고 소스 코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매뉴얼이 주어져 있거나 통계적으로 더 많이 이루어진 경우를 제시하는 일에도 적합하다. 본인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있고, 이 의도를 바탕으로 선택지를 제시받아 선택할 수 있는(그리고 본인이 더 나은 선택이 어떤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면 AI는 썩 괜찮은 도구가 될 수 있고, 때로는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보다 나아 보일 때도 있다. 한편 “예술활동”의 경우라면…… AI에 복잡한 선택들을 맡겨놓고 의도만 전달하는 사람이 예술가인가, 라고 하면 그건 그림을 그리는 게 통계적으로 더 많이 이루어진 경우에 의거해 생성하는 거고. 그게 “그림을 그리는” “예술활동”이라면 가게에 붙일 메뉴판 발주하고 시안 받아보는 카페 사장님도 아티스트라는 소리 같은데.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컨셉 정하고 “이러저러한 것 만들어 봐라”하고 직원이나 하청업체, 혹은 프리랜서 외주를 불러서 일을 시킨 뒤, 결과물들 중에서 하나 고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기업의 논리로는 딱히 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산업적으로 쓰기 편하니 자기네 전속 작가들을 뽑아서 그림체 학습시키고 이걸 바탕으로 뽑아내면 저작권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겠지만. 여튼 예술적인 측면이 아닌 산업적인 측면에서 AI가 생성해내는 이미지나 영상들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겠지만, AI에다가 “지브리풍 그림 그려줘”하는 사람들이 창작자나 아티스트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AI로 생성한 그림 정도로도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한 작가가 금강산과 인왕산을 여러 각도로, 어떤 것은 클로즈업하고, 어떤 것은 큰 종이에 대범하게, 어떤 것은 작고 세밀하게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의 범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작업할지, 혹은 버릴 것인지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한 것, 나아가 아예 작자 미상의 어떤 것이 아닌 이상에야 마지막 한 점까지 이건 누가 한 것이다, 하고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혼자 하는 작업이든, 영화처럼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부분이든, 표현된 모든 것에는 버릴 것과 남길 것에 대한 선택과, 그 선택으로 좁히고 좁혀서 만들어낸 공들인 우연(세간에서 생각하는 날로 먹는 우연과는 다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그건 작가의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구분이 가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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