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를 대대적으로 하게 되자, 인테리어 사장님은 수많은 선택지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첫 미팅 때 나는 도면을 들고 가서 전기공사와 네트워크 공사에 대해 이왕 뜯는 김에 고칠 부분을 한량없이 떠들었고, 이왕 집을 뜯는 것 겨울에 에너지 절약을 하고 싶으니 북쪽 베란다 벽에 아이소핑크에 판넬 댄 것을 넣어 달라고 했고, 섀시를 갈아야 하는 게 분명해지자 섀시에 고려할 옵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그걸 꼼꼼히 사장님이 갖고 계신 실측 도면에 체크하다가 물었다.
“그래서 도배, 장판, 타일, 싱크대는 어떻게 할 겁니까?”
“……..”
“보통 사모님들이, 바닥을 강마루로 할 건지, 고급 장판으로 할 건지. 아니면 벽지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타일은 포세린으로 할 건지 뭐 그런 이야기부터 하는데.”
“잠깐만요, 일단 저는 사모님이 아니라 공사주고, 저 아직 엑셀관 이야기 해야 하는데. 바닥 여는 김에 엑셀관 확인해야죠.”
“그 단지는 엑셀관 안 터지는 단지입니다. 지을 때 차광을 제대로 했어서. 앞으로 20년은 문제 없어요.”
“오, 좋네요. 그럼 관은 괜찮다고 쳐도 금속은 어떨지 모르니 엑셀관 연결부속좀 봐주시고. 아참, 혹시 천장에 전공구 넣을 수 있어요?”
“…….가정집 천장에 누가 전공구를 넣습니까. 콘크리트에서 도배한 벽까지 사이가 10에서 15센티인데.”
“아 그럼 그건 안되겠네요. 그리고 도배는 합지로 해도 상관없으니까 전선같은 건 자재 좋은 걸로 써 주세요.”
“세 놓을 집도 아닌데 왜 합지인데요.”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집은 벽지 좋은 것 발라봤자 어차피 책꽂이로 전부 가려질 거라서……. 흰색 광폭합지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흰색을 할 거면, 천장용 실크벽지로 하면 가격이 절감됩니다. 그나저나 정말로 설비 이야기만 하고, ‘인테리어’ 이야기는 안 하시네, 이 사모님.”
“필요한 거 알려주시면 다음번 미팅까지 생각해 올게요. 근데 네트워크 단자 뽑을 때 이쪽 방은 선을 이중화 해 주실 수 있어요?”
“누가 가정집에 네트워크 선 이중화를……. 해 줄게요, 단자는 하나로 뽑고, 그 안에 교체할 수 있는 선을 추가로 넣어주면 되죠?”
“그쪽이 먼지 안 들어가서 좋죠.”
결국 이것저것 색깔 고르는 건 사장님이 해 주셨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티니핑 핫핑크만 아니면 된다고 했고 좋아하는 색깔을 몇가지 골랐고 이 색과 중문 색과 벽지 흰색에 맞춰서 적당히 다 잡아주신다고 하심)
전기공사 하던 날 들렀더니 기사님이 “이 집은 왜 이렇게 전기랑 네트워크 공사 신경쓰라고 메모가 많이 붙은 거요. 그 집 사장님(배우자)이 혹시 그쪽 일 합니까?”하고 물어보셨고.
“제가요.”했더니 아,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고는…… 공사가 아주 잘 되었음. (웃음)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고치고 싶은 집의 색깔이나 형태에 대해 보통 깊이 생각하는 걸까. 나는 기능적인 면만 생각하고 상담을 갔으니. 아직 공사가 좀 남았는데, 아직도 싱크대에 대해서는 감이 안 오고 있다. 사장님이 제일 무난한 색깔로 해놓겠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고 나는 거기다 전기공사 여기저기 해달라는 이야기만 또 잔뜩………
사람들이 집을 고칠 때 예쁜 주방이나 그런 것에 로망이 많다지만 나는 주방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싱크대는 그냥 사장님과 이야기해서 제일 무난한 조합으로 넣기로 하고, 딱 맞는 냉장고장을 안 짜고(지금 쓰는 냉장고도 이미 5년 넘게 썼으니까) 약간 간격을 여유있게 띄운 뒤 주방에서 거실로 연결되는 벽에 수납장을 짜 달라고 했다. 하단은 여닫이 수납장으로, 상단은 책도 꽂을 수 있게 개방형으로. 인테리어 사장님은 “주방까지 책이라니!!!!! 책 못 읽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요?”하고 기막혀 하다가, 책만 꽂을 건 아니고 머그컵도 놓을 거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책장같이 짜 주겠다고 하셨다. (근데 어차피 우리집은 주방 살림이 그렇게 많지가 않은걸……)
……그 이야기를 선생님 댁에 갔다가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정색을 하며 말씀하셨다.
“주방에 책 놓으면 안 돼! 습기에 책 상해!!!!!!!!”
뭔가…… 주장의 방향은 정 반대이지만 주방에 책을 놓으면 안 된다는 의견만은 공통적…… OTL
PS) 근데 다행인게, 여기 사장님이 조명 마니아셔서…… 조명 좋아하는 사장님은 전기도 잘 하시는 법이다. (웃음)
PS2) 그리고 사장님이 서비스라고 신발장 밑에 조명을 달려고 선을 추가로 뽑아놓으신 것을 발견했다. (갸악)
PS3) 그리고 이제는 만화 스토리는 쓰지 않고 있지만, 콘티 짤 때의 스킬을 이번 집 고칠 때 열심히 쓰고 있다. 뭔가 말을 하다가 의사소통이 막히는 것 같으면 이케이케 생겼고 위에서 보면 이렇고 45도 각도로는 이렇게 생겼는데 수치는 이 정도, 하고 그려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면 사장님이 “이런거?”하고 사진이나 도면을 보내 주시고 ㅇㅋ 하면 작업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결정을 많이 하고 있음. 나는 원래 그림스킬이 없는데, 이것은 전부 콘티를 보면서도 “각도를 30도 위로 들어서 다시 그리”라고 하시던 이슈 편집부 덕분인 것이다…..
PS4) 솔직히 나는 내가 만화 콘티 짜는 연출력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만화스토리 일 더 안 하는 건 웹소설 각색 일만 자꾸 들어와서 + 원작을 만화나 웹툰에 맞게 변형해 가면서 작업을 해야 좋은데, 자꾸 원작 순서와 대사 그대로 작업하라고 해서 도저히 내 성질에 안 맞아서임. ㅠㅠ 오리지널로 작업하거나 적어도 원작에 대대적으로 손 대 가면서 연출해도 된다고 하면 하겠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