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아 작가님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요즘 시국이 이렇다고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한번 더 꺼내 읽은 그 날 저녁때 부음을 들었다. 정은아 작가님을 직접 알던 것은 아니었지만 김현진 작가님이 무척 애통해 하셨다.
이 소설은 그 일이 있고 나서야 읽었는데, 사실 읽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 잠실이나 목동이나 대치동같은 데가 아닌 평범한 동네에서도 때때로 보이는 인간상들이, 그야말로 정제해서 농축한 것 같은 형태로 들어 있어서. 이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알았다. 사실 학군지 아닌 수도권 동네에는 학군지 도치맘 워너비로 불러야 할 것 같은 분들이 가끔 계신데, 좋게 말해 맹모삼천지교의 화신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기 불안에 쫓겨다니는 분들 말이다. 예를 들면 아기가 어릴 때 부터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가 중요하다며 인천 사람인데 굳이 부천에서 낳고 부천의 조리원에 입소하는 사람을 봤는데, 부천 사는 지인의 말로는 그 동네에서 애들 공부시키려고 마음먹은 엄마들 중에는 목동에서 낳고 목동의 조리원에 들어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목동에는 잠실이나 대치동의 조리원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바로 그런 학군지 엄마들을 동경하는 워너비, 들이 보이는 모습의 원본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바로 알 것 같았다.
오늘, 수정은 학교를 마치고 온 지환을 데리고 영어 학원에 다녀왔다. 축구부 해성과 태민이 다니는 로피아는 요즘 이 동네에서 가장 ‘대세’인 학원이다. 대세인 학원답게 학원비도 인근에서 가장 비싸다. 정규반 수강료에 교재비, 온라인 학습비, 개별 클리닉 클래스까지 포함하면 한 달 평균 오십 정도 되는 돈이 들어간다. 높은 수강료가 마음에 걸렸지만 눈 딱 감고 오늘로 레벨 테스트 날짜를 잡았다. 아이의 평생 영어가 달렸는데 오십 정도는 써줘야 하지 않겠는가. 큰맘 먹고 갔는데, 정작 지환을 등록시키지는 못했다.
남편이 끼어들려는 것을 유미가 얼른 옆구리를 찔러 막았다. 지성은 옥슨 입학시험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두각을 나타냈던 지성이었지만 전국의 1퍼센트만 모아 가르친다는 옥슨에 들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올해 초, 수학이 ‘부른’ 극상위권 아이들만 모아 교육시켜오던 옥슨이 방침을 바꿔 수학을 ‘노멀하게 잘하는’ 아이들도 받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톱클래스’ 아이들은 ‘경시반’으로, 새로 받은 아이들은 ‘아카데미반’으로 이름 붙여 대대적인 증설을 하면서 잠실에 사는 아이들이 대거 대치동 옥슨에 입성하게 되었다. 지성이 옥슨에 들어간 것도 그때였다. 그걸 모르는 엄마들은 아직도 옥슨에 다닌다고 하면 경탄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들여다보면 이런 속사정이 있다.
저 암호같은 말을, 몇년 전에 봤다면 무슨 말인지 한국어로 된 문장을 읽으면서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소위 학군지에서는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뭘 어떻게 시키는지 들었고, 듣기는 했고, “인간에게는 발달의 단계가 있는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라는 의문만 남고 별 쓸데없는 정보로 지나쳐 갔는데 그 느낌을 다시 받았다. 대체 왜 이런 짓까지 하는 거지. 영재라는 건 아이들이 100명이 있으면 많아야 셋, 좀 더 넉넉히 잡아야 다섯쯤 될까 말까인데. 바닥을 다지면서 가는 게 아니라 선행을 시킨다고 영재가 되나. 그렇게 만든 영재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뭐 그런 생각들이 들기도 하다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치고는 우리 애들은 공부를 또 너무 안 하긴 하지, 하는 생각도 들다가. 공포 마케팅과 엄마들의 입소문과 학교에서 일진놀이 하던 것을 어른이 되고 싶어서도 하고 싶어하는 타입들이 사람들 우루루 끌고 다니면서 벌이는 짓거리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며 읽으니 좀 속이 메슥거렸다.
“여기 엄마들, 애들 저학년일 땐 근처로 대충 보내다가 고학년 되면 다 대치동으로 보내. 그래서 고학년 되면 대치동으로 이사들 많이 가지. 나도 요즘 지성이 라이드해주기 힘들어서 그쪽으로 이사 갈까 생각 중이야.”
처음부터 대치동에 자리 잡았어야 했다. 유미는 수없이 해왔던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성민과 결혼할 당시, 유미의 엄마는 판사 사위를 보게 된 것을 노골적으로 환영하면서 집 한 채와 자동차 한 대를 제공하겠다 흔쾌히 약속했다. 유미가 지역을 정하기만 하면 어디든 사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처음에 유미는 대치동을 생각했지만, 고심 끝에 재건축 가능성이 높은 잠실의 주공아파트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리 예비 신랑이 판사 임관을 앞둔 상태라 해도 자기 쪽에서 일방적으로 너무 고가의 아파트를 사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고, 낡은 저층 아파트를 사두면 시세 차익도 꽤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유미 이름으로 잠실의 주공아파트를 사놓고, 당장 살 집은 성민이 마련해오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한편 교육열과 부동산 문제는 세트로 움직인다. 오죽하면 부동산 투자 관련 책 중에 근처 학군만 싹 분석한 책도 있을까.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지난번에 서점에서 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당장 나도, 애들 어릴 때 이 예산으로 어느 동네에 우리 가족이 살 집을 사야 하나 생각하면서 집 근처 두 개 구를 주말마다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가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되는 남자애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서 동네들을 지워 나가긴 했다. 그러니까 내 기준은 영재반이나 학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모습과 쓰는 언어,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품행 쪽을 본 거긴 한데…… 이것도 아이를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는 욕망이고 교육열의 일종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어쨌든 한국에서 태어나서 부모가 된 사람 중에 아이의 교육에 진심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드물 것이고, 그러다 보니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이 더 선망받는 부동산 입지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해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 반대로, 부동산이 모인 곳에 교육이 형성되는 과정도 함께 엿보인다. 수요공급의 문제겠지만. 읽으면서 실재하는 학원이나 아파트 이름들을 조금씩 바꾼 것을 보고는 좀 웃었다.
그런 부동산과 교육열에 대한 관심이 오가는 찬란한 거리의 뒤편에는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밀려난 뒤 하남의 상가주택에서 살며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한도까지 채워 받은 가사도우미 선화와 그 주택 때문에 정부지원 학자금 대출조차 받을 수 없어 매춘에 나선 둘째딸 서영, 황무지의 판자촌이었던 삼성동에서 성장했지만, 그가 성장했을 무렵에는 이미 삼성동은 그의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영어강사 승필. 그들이 살고 있는 반지하 셋방은 잠실동의 아파트 단지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계다. 10년동안 고시 공부를 하다가 포기하고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떡볶이가게를 하는 총각을 딱하게 여기며 작은 우월감을 느끼고, 내 아이를 보내고 싶은 좋은 영어학원에 “빌라 사는 애들”이 다니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며 “아파트 사는 애들이 순하고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엄마들의 대화로 알짜배기 교육 정보를 손에 넣고 학원에 아이들을 셋팅해 놓으면 모든 일이 잘 돌아갈 것 같았던 사람들은, 학부모에게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고, 학부모를 보면서 이래서 애가 이 지경이구나 하고 간파하는 경험 많고 원칙주의자인 교사 미하와 갈등을 빚는다. 평판 좋고 열의있으며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교사를 두고, 자기 아이를 살뜰히 돌봐주지 않는다, 자기 아이의 특별함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자기 아이가 돋보이려고 하는 행동을 받아주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말해서 무안하게 했다, ADHD인 아들이 여자아이들 앞에서 바지를 벗어던지는 것을 붙잡아 엄격하게 훈육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학부모 대책위원회’같은 거창한 이름까지 달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자고 말한다.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비난하며, “2학년 3반 아이들은 내일부터 등교를 거부합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정해서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자기 아들이 교실에서 벌인 짓은 생각도 않고 자기 아들이 차별받는다며 분노한 현규 엄마와 해성 엄마와 함께 총대를 맨 태민 엄마는 곧 태민을 국제학교로 전학시킬 계획이었으니 총대만 매고 싹 빠져나오면 된다는 식이다. 정말 역겨워서 페이지를 더 넘길 수가 없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학군지 아닌 학교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서 더 기도 안 찬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진상 학부모 한둘이 선생님이 휴직을 하시거나 명예퇴직을 선택하시도록 몰아붙여놓고는 자기들은 싹 빠져나가 전학 가버리는 일도 있었으니까. 내 친구인 교사 중에도 진상들에게 시달리다가 암에 걸린 이도 있으니까.
어쨌든 엄마들의 화풀이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미하는 자살을 기도하고 입원했고, 새로 온 기간제 교사는 미하가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는지 증명하기라도 할 듯이 무관심과 무성의로 아이들을 대한다. 일이 어떻게 되든 태민은 국제학교 보내면 된다고 생각한 태민 엄마는 남편의 불법적인 사업에 방패막이가 되어주던 이가 실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태민 엄마는 비록 미하의 얼굴은 못 보았지만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간 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해성엄마를 탓했고, 해성엄마는 동네에서 독한 년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해성엄마는 담임과 자신을 비교하며 분노한다.
그날, 담임이 종합병원에서 위세척을 받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해성의 반에는 기간제 교사가 새 담임으로 왔고, 예전 담임은 2주일간 병가를 쓴 뒤 학교로 복귀했다. 바로 그만두겠다는 걸 교장이 몇 번씩 설득해서 데려왔다는 후문이었다. 예전 담임은 6학년의 교과담임을 맡게 되어 2학년들과 얼굴 볼 일이 없게 됐다. 그렇게 몇 개월 버티다 연말을 넘기면 퇴직해 교직원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될 거라 했다. 흥, 그래도 연금은 챙기셔야겠다는 거지.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그 사건으로 담임이 잃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골치 아픈 담임직을 맡지 않게 됐으니 오히려 편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어떤가. 그녀는 습관처럼 담임과 자신을 비교하며 분노했다. 약 좀 먹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그 여자보다 동네 엄마들에게 독한 년 취급당하고 있는 자신의 고초가 백배는 더 심할 것이었다. “진짜 죽을 생각이었으면 투신했겠지. 손목을 그었거나. 약을 먹는 건 사실 시위성이 반 정도 섞였다고 보면 돼. 너무 자책하지 마, 언니.”
처음 읽을 때는 인간군상의 역겨움에 치를 떨며 읽었다. 왜 내가 아는 교사들이 정년까지 못 버티고 그만두는지, 왜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사명감에 어깨를 펴던 아이들이 몇년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학부모가 제일 싫어.” 하고 노랗게 뜬 얼굴들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두번째 읽을 때는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 읽었다. 제목은 잠실동 사람들이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은 잠실동이 아닌 관념적인 장실, 즉 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이라는 세 고층 아파트와 그 주변의 학원가다. 이곳에 입성하는 일은, 불광동에서 살던 집을 팔고서도 전세대출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거대한 상승 욕구 때문이다. 내 아이들을 주류로 살게 하겠다, 저 꼭대기에서 살게 하겠다는 욕망.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그 애벌레들의 탑 같은 도시에서, 찻길 건너지 않고 학교에 다니며 빌라 사는 아이들과 생활구역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욕망. 그 지긋지긋한 욕망의 이야기는 지도 위에서 더 흥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