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트위터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어째서 일본은 전연령가 순정만화에도 요시와라가 떡하니 등장하는지 좀 의문이 있었다. 물론 초 메이저한 소재는 아니고(사극에 나온다) 전연령가니까 씬이 나오지 않고, 주인공이 요시와라 소속이라면 남주 외에는 순결을 지키고(…..근데 이쯤 되면 그게 뭐 의미가 있나, 전연령가로 만들기 위해 씬을 뺀 수준이 아닌가.) 뭐 그런 식이긴 하지만.
요시와라는 말하자면 에도 시대의 공창…. 인데, 대체로 만화에 나오는 부분은 화려하게 꾸민 특급 유녀인 타유 또는 오이란이 여동들과 시종들을 데리고 꽃으로 장식된 길을 걷는 뭐 그런 이미지(……) 이자 “에도의 테마 파크”같이 언급하는 작품도 있지만 사실 여성 입장에서는 팔려간 경우가 대다수다. 가난한 집에서 딸을 창기로 팔거나, 납치되어서 팔려오거나, 뭐 그렇게 인신매매당한 소녀들은 그곳에서 창기가 되어 남성들을 상대한다. 어린 시절에는 카무로가 되어 창기들을 뒤따르고, 견습인 신조가 되어서는 손님 앞에 나가고, 일정한 경력이 되면 본격적으로 유녀(창기)로 활동하는 구조. 사실 이 구조는 마이코-게이샤 양성 구조와도 통하는데. 창작물에서는 주인공 또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여성 캐릭터가 타유, 또는 오이란이라 불리는 특급 유녀가 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낙적되어 축복받으며 이곳을 벗어나는 형태로 나오지만, 실상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팔려왔으니 시작부터 막대한 빚을 지고 시작하고, 일을 해도 해도 자신들을 사온 비용과 꾸미고 입히는 비용이 빚으로 남아 자유를 찾을 수 없는 시스템이고, 대부분은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과정에서 병, 특히 매독에 걸리는 게 현실인데.
물론 요시와라에 대해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만화들도 있다. 안노 모요코의 “사쿠란”은 화려하고 탐미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을 억압하고 가둬두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었고, 요시나가 후미의 경우는 남성만 걸리는 질병으로 남녀의 성비가 무너진 가상의 에도 시대를 다룬 SF 사극 “오오쿠”에서 “가난한 집 여인들도 남자의 씨를 사서 자식을 얻을 수 있도록” 남자들을 가둬 둔 공창을 만들어 놓고 이곳 남자들이 학대당하거나 성병에 걸린 현실들을 보여주는 형태로 빗대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쇼군의 정부가 될 꿈을 꾸던 야심차고 얼굴이 반반한 오오쿠 남자들”을 그 공창에 집어넣는 형태로) 하지만 정말 많은 작품 속의 요시와라는 “테마 파크”나 “꽃밭”, “남성과 여성이 교제하는 일종의 사교클럽” 같은 식의 대가리 꽃밭적 전개로 묘사되기 일쑤다. 몰락한 무가 출신의 강단있는 소녀가 첫날부터 “저는 이곳에서 오이란이 되겠어요!” 하고 선언하거나;;;;; (열다섯살쯤 된 여자아이가 자기가 텐프로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이상한 장면인지 감이 온다.) 아직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지 않은 신조 상태에서 자신의 본래 신분을 되찾아 요시와라를 떠나게 된 소녀가 “자신에게는 유녀의 긍지가 있다”면서 “나가서도 타유의 행차를 할 수 있는가”같은 소리를 하고 있거나;;;;;(인신매매 당해서 사창가에 끌려온 십대 소녀가 운좋게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역시 자신은 물장사를 해야겠다며 역시 텐프로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하는 장면들이 버젓이 전연령가 순정만화에 나오고, 순정만화 뿐 아니라 “은혼”이나 “원피스”나 “귀멸의 칼날”같은 점프계 만화에서도 요시와라 유곽이 대수롭지 않게 언급이 되기도 하는데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약사의 혼잣말”은 주인공 마오마오가 유녀는 아니지만 유곽 거리 출신의, 몰락한 유녀의 딸이자 유곽의 약사로 나온다. 이 마오마오는 호기심 많은 약사이자 궁녀가 되어 아름다운 환관 진시와 함께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하게 된 유망한 청년 무관을 자기가 태어나서 자랐던 유곽 녹청관의 고객으로 삼으려고 유인해 간다거나;;;; 궁에서 일하지 않을 때는 “아르바이트”라며 유곽의 무희 일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유곽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도 “한 남자에게 봉사하는 후궁과 여러 남자에게 봉사하는 유곽”을 비교하거나 뛰어난 유녀였지만 몰락해 매독에 걸려 죽어가는 어머니 등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거나, 마오마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엇갈린 사랑의 비극이라지만 사실은 유곽에 팔려간 유녀의 비극 같은 것도 보여주지만, 이런 식으로 요시와라를 연상하게 하는 화려한 유곽 거리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만화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일본에서 요시와라 유곽이란 소재란 뭘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 넷플릭스에 올라왔단 말입니다?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야?
근데 내가 이해한 게 맞아? 게이샤 되기 전의 그 마이코?
주인공은 십대 소녀들이고?
물론 뭐, ‘오피셜’하게는 마이코와 게이샤는 현재 성매매를 하고 있지 않고, ‘미즈아게’ 같은 것도 지금은 없다고 하고, 어디까지나 전통을 이어가는 “예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치죠.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단나상”은 아직 있다며.)
근데 지금 21세기잖아요. 21세기에 예술가가 극소수의 부유한 “남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예술을 피로하는데, 그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게이샤를 만나는 것은 “기존 손님의 소개가 필요한 비밀주의”이고, 예술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술과 음식과 향응접대가 따르는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마이코 말입니다. 마이코는 대체로 미성년자인데.
명색이 문명국가에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여성 미성년자가 부유한 중년 남성들에게 접대를 하는데” “그 미성년자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급료는 없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어? 그냥 ‘전통 예술’이니까 OK라고?
여튼(…….)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니까 어떨까 하고 1화를 봤습니다.
시작부터 마이코를 동경하는 두 소녀가 고등학교도 안 가고 중학교만 졸업한 채 교토로 향합니다. 한명은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한명은 아버지가 반대해서 야반도주로.
그리고 이 대목에서 한국인은 1차 비명을 지릅니다.
고등학교 안 보내?!?!?!?!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안 가고 마이코가 되겠다는 딸의 주장에 반대하는 아버지가 상식인이고 그 장면에 보이는 모든 성인이 다 개잡놈의 새끼로 보여서 더 볼 수가 없었지만 1화까진 봤음.
이쯤 되니까, 서브컬처에 요시와라가 등장하는 행태도 그렇고, 현실에서 중학교 졸업한 소녀들이 마이코를 지망해서 교토로 가더라는 이야기 같은 것도 그렇고, 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져서. 도서관에서 “교토 하나마치 경영학“이라는 책을 빌려다 읽었다. 게이샤(교토에서는 게이코라고 한다네요)와 마이코 양성 시스템 및 게이샤 거리의 경제구조에 대한 책이었는데 사실 읽을수록 의문만 더해지는 책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도 하지 않은 의무교육만 받은 소녀가 집을 떠나, 자정 넘어까지 술을 따르고 부유한 성인 남성을 접대하며, 마이코 생활을 하는 동안의 양성료는 오키야에서 책임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부 빚으로 남아 게이샤가 된 뒤 갚아나간 뒤 독립하는 시스템에 대해 비판도 의구심도 없이 전통 수호와 골목 단위의 순환 경제, 마이코 양성을 보고 배웁시다;;;; 하는 식의 책이었기 때문에(…..성인 남성 후원자가 어린 마이코를 데리고 나가 식사를 하는 게 마이코를 위한 거겠냐 저자야. 그런데 저자가 무려 여성) 매우 혼란스러운 한편으로,
읽으면서 K-POP 아이돌 양성이나 웹툰작가 MG 제도의 어두움도 떠올랐다. 합숙이라든가, 교육비가 빚으로 남는다거나. 왜, 또 레진코믹스가 MG 제도 처음 도입할 때, 이거 술집의 마이킹 비슷하다고 느꼈었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도 나왔는데 이게 어디서 온 시스템인가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일본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그러니까 과거의 요시와라(공창) 제도라든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이코 시스템에 대해, 과거의 문화니까 그다지 비판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건가 생각하다가;;;; 25년쯤 전에 읽은 만화책 생각이 떠올랐다.
“여제”라고. (친구 집에 전권이 있었음)
총리의 딸이지만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명문가 출신 첫사랑에 배신당한 여자가 복수를 위해 고향을 떠나 오사카에서 호스티스가 되고, 다시 도쿄 긴자로 진출하고, 이곳에서 크게 성공해서 정계와 야쿠자계까지 영향력을 떨치는 여자가 되더라는 이야기인데(그리고 놀랍게도 이 “여제”에는 속편도 있습니다. “여제화무” 또는 “여제 게이샤” 라는 제목으로, 주인공 인화의 딸인 아스카가 긴자의 여제라 불리는 어머니를 능가하는 교토의 여제가 되겠다며 교토로 가서 마이코 수업을 받고, 일본 정계의 막후 조정자를 단나상으로 맞이하고, 유력 정치인의 스캔들을 막고, 야쿠자 2세를 사랑하고 뭐 그러는…….), 요시와라 배경 이야기들 중에, 잡다한 수식어를 다 떼어버리고 뼈다귀만 남기면 이 “여제”의 구조와 거의 그대로 가는 이야기들이 꽤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은 이 작품이 의외로 걸작이어서 여기저기 영향을 끼친 건가, 그게 아니면 이게 일본에서는 보편적인 관념인가. 그게 아니면 십대 소녀에게 성산업이나 (일단 예술인이라고 해도) 심야까지 부유한 남성들을 접대하는 일에 대한 허들을 낮추기 위한 교묘한 사회적 분위기인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문제의식이 있는지도 궁금했는데…… 어쩐지 별 문제의식이 없을 것 같았다.
여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나, 시대물에 요시와라 나오는 것 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이런저런 풍속업소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던 게 생각이 났지요…… 아, 그래. 토라도라의 남주 엄마도 스낵바 나갔지. 스즈메의 문단속도…… 잠깐,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미르히 교수가 노다메를 데리고 긴자에 놀러나가서 섹시 연습을……. 아오……. 하면서;;; 그동안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짧게짧게 거슬렸던 부분들이 다 머릿속에 쏟아져 복닥거리는 중임.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성산업에 대해서는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수자 처벌이라든가, 이 산업 자체를 줄여 나가고 특히 미성년자에게 이것이 쉬운 선택지가 되지 않게 허들을 두어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서브컬처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풍속업소들이나, 시대극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요시와라 유곽이(아, 올해 NHK 대하 드라마의 메인 배경 중 한 곳이 요시와라라는 말도 들었다.) 일본의 십대들에게, 그리고 일본 서브컬처를 자주 접하는 한국 포함 여러 나라의 십대들에게 성산업을 쉬운 선택지로 여겨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웬만하면 좀 보내…….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