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 3학년 때, 학교에서 진한 노란색 표지인 “창가의 소녀 토토짱”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말하자면 토토와 같은 나이일 때 토토의 이야기를 읽은 셈인데, 그때는 이 이야기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바로 알진 못했다. 아마 몇 번인가 반복해서 읽다가 작가의 이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3학년 여름 무렵에는 이 이야기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 다음에 읽은 일본 작가의 책이 “종이학” 아니면 “참길을 묻는 그대에게”(…..) 였을 텐데.
이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볼이 발그스름한 토토의 얼굴이 기쁨과 호기심으로 넘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고 떠들어대는 토토를 눈이 동그랗고 눈을 잘 깜빡거리지 않는 것을 보며 일부러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좀 이질적으로 느꼈다. 예전에는 말썽꾸러기였지만 요즘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분류될 이 아이의 얼굴은 어떻게 이렇게 작화가 된 것일까. 예쁘고 귀여운데, “하지만 이 어린이가 정상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 그림 컷보다는 움직이는 예고편에서 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보러 가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음에 보았다.
음악가인 아버지의 딸로, 전쟁 중인,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개성있는 토토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그런 토토를 받아준 것은 일종의 대안학교인, 기차 객실을 교실로 쓰는 전교생 50명의 작은 학교인 도모에 학교다. 음악을 전공하고, 유리드믹스를 창안한 에밀 자크 달크로즈에게서 리드미크 교수법을 배워 이를 교육에 도입했던 고바야시 소사쿠 교장의 철학이 담긴 이 학교에서, 토토는 책을 읽고, 각자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몸과 음악의 자유를 느끼며, 성별과 장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짓지 않고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며 자란다. 교실을 늘리기 위해 새 객실을 들여오던 날, 토토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실려오는 기차를 보며 반가워한다. 어릴때는 그런 학교의 모습이 부러웠고, 자라서 지금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지갑을 찾겠다며 토토가 화장실에서 분뇨를 다 퍼 내는 장면을 보면서는 솔직히 화면을 끄고 도망치고 싶었다. 물론 훌륭한 고바야시 교장은 그 모습을 보고도 지갑을 찾고 나면 분뇨는 다시 제 자리에 넣어야 한다는 말만 하고 가 버리지만.
그렇게 자신의 다름이 받아들여지며 토토는 마음이 자라고, 또 다른 친구들이 나와 다르지만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모두가 자기 나무를 정해서 올라가고 매달릴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야스아키가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사다리를 가져와 나무에 오르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고바야시 교장이 늘 “너는 사실 훌륭한 아이란다.”하고 말해주었던 그대로, 토토는 자존감이 높고 평화를 사랑하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난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서로의 학교를 “똥통 학교”라고 노래를 부르며 조롱하다가, “도모에 학교, 똥통 학교”하고 길을 막고 조롱할 때에도 토토와 친구들은 상대의 학교를 조롱하는 대신, “도모에 학교, 좋은 학교”라는 노래로 대응한다.
하지만 도모에 학원에서의 생활이 언제까지나 꿈처럼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야스아키의 죽음 이후로 이야기의 분위기는 급속히 어두워진다. 아빠가 소속된 NHK교향악단의 유대인 지휘자, 요제프 로젠슈토크는 독일이 일으킨 전쟁이 전세계로 확전되는 것을 걱정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이며, 토토와 친구들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아빠는 미국이 적대국이 되자 집에서도 마마, 파파 하는 영어 표현을 써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늘 학교에 가던 길에 마주치던 남자 역무원은 징집되어 끌려갔고, 아이들은 배를 곯게 된다. 도모에 학교도 미국의 공습을 받고 불타 사라지고, 토토와 엄마, 그리고 어린 동생은 피란길에 오른다.
어릴 때는 좋아했던 “창가의 토토”를, 나이가 들어서는 못 읽게 된 것도 이 대목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의 아이들은 공출로 쌀은 물론 밥그릇까지 빼앗기고, 학교도 못 다니고 배를 곯고 있을 때, 토토의 아빠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엄마는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깔끔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토토는 학교에서 쫓겨나자 대안학교에 다녔다는 것이. 토토와 친구들의 작은 낙원같은 학교 역시도,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여러 곳을 식민지로 거느린 일본이라는 나라가 빨아들인 자원 덕분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서. 때때로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사는 것에 대해 작은 죄책감을 느끼듯이, 너희도 조금은 미안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에 태어나서 사는 것에 죄책감 안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무너지거나 한 뒤에야 그게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족했을지는 몰라도 남다름이 용납되지 않았던 시대에 대안학교를 만들고 지금의 관점에서도 개혁적인 수준의 아동교육을 도입하려 했던 고바야시 교장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어디부터 엄격하게 대해야 하고 어디까지는 크고작은 말썽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기차를 타고 피란을 갔던 토토네 가족은 무사했다. 그 시대의 조선인 소녀였다면 무사할 수 없었겠지.
그래도 토토, 구로나야기 테츠코는 방송인이자 반전 운동가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고바야시 교장의 교육과 평등, 평화, 존중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어도 고바야시 교장이 뿌린 씨앗은 헛되지 않았던 증거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