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위국일기 영화 개봉 관련, 야마시타 토모코 선생님의 사인회에 당첨되어 다녀오는 행운을 누렸다. 생각해 보니 최근 5, 6년동안 북토크나 사인회에 간 것은 제가 일하러 가거나 일을 도와주러 가거나, 둘 중 하나였지, 순수히 독자로 간 것은 정말 몇년만의 일이었다. 그래서 사인회 전날 밤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위국일기 전권을 다시 읽었다.
작가인 마키오에게는 사이가 좋지 않은 언니, 미노리가 있다. 마키오가 작가가 되기 전까지 미노리는, 글 좀 쓸 줄 안다고 잘난 척 하지 마라,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좀 살아라, 그렇게 살면 어떤 남자가 너를 좋아하겠느냐며 계속, 줄곧, 그에게 평범함을 강요했고, 마키오는 그런 미노리와 반목해 왔다. 그리고 언니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경찰서로 달려가던 중, 마키오는 언니가 남편과 혼인신고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였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마키오는 무서워서 시신 확인을 못 했다는 자신의 어머니 대신 교통사고로 숨진 부모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던 중학생 조카 아사와 만나고, 장례식장에서 “평범한 양가 어른들”이 별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죽은 두 사람의 딸인 아사 앞에서 아이를 어디로 보낼 거냐, 친딸이 맞기는 한 거냐는 식의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는 분개하여 아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보호자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바로 그 아사가, 중학교 3학년 겨울 때 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고독하게 살아오고 남들과 조금 다른, 작가인 마키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읽을 때 마다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는 만화인데, 처음 1, 2권을 읽었을 때는 화를 냈던 것 같다. 고독한, 그 고독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진 않지만 때때로 조금 버겁게 느낄 때가 있고, 자신의 다름을 멋대로 판단하거나 선을 그어대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던 어린아이가 자라 작가가 되고, 여전히 어떤 부분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갑작스럽게 부모를 잃은 아이의 보호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작품이나 두 주인공이 아니라 그 작품 속의 “정상적인 어른들”에게 화가 났었다. 장례식 장면도, 아사와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순식간에 사고로 죽어버린 부모의 시신을 중학생인 아사에게 확인하게 하는 아사의 외조모도. 다들 마키오를 별난 사람, 철 없고 덜 자랐으며 쌀쌀맞은 사람 취급하고, 자기들이 마키오보다 어른인 것 처럼 굴지만 하는 짓을 보면 다들 무책임하다.
……하다못해 아사의 외조모, 그러니까 마키오와 미노리의 모친은, 조금 기다려달라고 한 뒤 마키오에게 확인을 부탁해도 될 일이 아니었나? 물론 미워하던 언니와 평생 얼굴도 몇 번 안 봤을 언니의 파트너의 시신을 확인하는 것도 못 할 짓이지만, 그게 중학생밖에 안 된 아이에게 시킬 일이냐고. 근데 처음에는, 뭐 하는 거야, 싶다가도 저쪽은 문화가 다른가 하고 좀 헛갈렸었다. 3월의 라이온에서도, 초등학생인 레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영안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으니까. 저거 좀 애한테 너무 가혹한거 아닌가 생각하다가, 일본에서는 애라도 직계가 확인하는 게 보통인가, 근데 레이는 열살이고 아사는 중학생인데 저래도 되나 하고 생각했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화장을 하고 입관 준비를 마친 상태도 아니고, 사고로 죽었는데. 중반에 마키오가 “외할머니가 너한테 네 엄마 시신을 확인하게 했잖아.(대사 부정확함)”하는 장면을 보면서야, 그건 역시 잘못된 게 맞았구나 하고 다시 생각했었다. 배려라고는 없고, 자신이 감당하기 싫은 것은 떠넘겨 버리면서, 자식에게는 살가움을 기대하는 노인네 같으니.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마키오의 언니인 미노리에 대해서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좀 고통스러웠다. 나에게는 문학을 하려던 가족이 있었고, 그 가족은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두고 쓰레기같은 장르소설 쓴다고 내내 조롱하다가, 첫 책이 나오자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때렸으니까. 본인은 아마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나를 싫어하긴 할 것이다. 여튼 그는 내겐 없는 사람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안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뭐라도 계속 쓰고 그걸 그만둘 수 없는, 입을 닥치지 못하고 손가락을 닥치지 못하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다.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그래서 1권을 보면서, 마키오는 이미 저런 식으로 “스스로 평범하고 선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매도당하는 상황에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 언니의 딸인데도 어린아이가 저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면 마키오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노리는 작가가 되려는 동생에게 인간성 더럽게 군 것 치고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도 그 자식을 동생이 거둬주고,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키웠잖아. 나를 미워한 그 가족은 만약 내가 죽으면 절대로, 내 자식을 거둬주는 일이 없을 텐데. (반대의 경우라면, 글쎄…… 나는 기본적으로 원한이 깊은 사람이라 사랑하며 키울 자신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달리 그 아이를 맡을 사람이 없다면 먹고 살 만한 친족의 의무로서 데려다가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대학까지 공부는 시키겠지. 그럴 일이 없길 바란다.) 어쨌든 그런저런 상황이 겹쳐서 1권에서 순식간에 몰입해 버렸다.
그러다가 마지막권에서, 그 미노리가 마키오를 미워하면서도 일기에는 마키오를 좋게 쓰고, 마키오의 책을 사다가 읽었다는 묘사가 나오면서 다시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 장면들 보고 나서, 다시 거슬러 미노리가 아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일기에 적은 내용을 살아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말하는 모든 컷에서. 그 집착적일 정도로 아사라는 이름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 새롭고 깨끗한 것이라는 뜻으로 고민해서 지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아사에게 “나는 너를 완벽하게 사랑했다”고 강요하고 설득하는 게 아닌가. 살아있었다면 5년 뒤에 그 일기를 아사에게 건네고, 자신의 사랑을 인질삼아 평생 애를 달달 볶았을 게 아니었나. 미노리는 아사를 “자기 딸이라서” 사랑한 것이지, 아사라는 독립된 인격으로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사라는 인격체를 사랑했다고 보기에는 아사의 회상에 나오는 “엄마라서 미화되었을” 언행들조차도 죄 이중구속적이다.
중간에 미노리가, 혼전 임신을 하고, 뱃속 아이의 아빠는 혼인신고는 싫고 동거만 원하는 상황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았고 어떤 점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는데” 하고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동생은 별난 애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너무나 역겨웠어서, 그래놓고도 마키오의 책을 읽고, 사실은 마키오의 재능을 부러워했다는 것이 너무나 싫어서, 나중에는 마키오가 미노리를 생각하면서 “이 아이를 남겨두고 죽고 싶지 않았겠지.” 라든가 “언니의 소중한 아이를 내가 사랑해도 될까.”하고 생각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비명이 나왔다. 아냐, 아냐. 그거 아니야. 대답도 못 할 죽은 사람에게 아사를 사랑해줘도 되겠느냐고 허락받을 필요 없다고. 마키오 이 인간도, 자신을 부러워하고 미워했고 괴롭히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꽁꽁 묶어 발목을 잘라 버리려던 자기 언니에게 그래도 인정받고 싶었던 거냐고. 어리석게도. 그런 인정 따위 정말로, 하나도 필요없는데.
이 만화에는 레이어가 여러 겹이라 볼 때 마다 다른 방향으로 보게 되는데, 마키오와 미노리의 관계에 집중해서 읽으면 반드시 위장에 무리가 갈 정도였다. 그냥 미노리는, 1권에서 아사를 두고 떠들어대던 그 어른들과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사람이고, 아사야 일찍 죽은 엄마고 그리워할 수 있다지만 11권 이후의 마키오는 굳이 미안함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고, 아사가 굳이 자기 엄마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면 그냥 언니 생각을 안 하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내게는 신경에 과부하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한편으로 위국일기는, 처음에는 “고독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싸우기를 멈추지 않던 아이가 작가가 되”어서 갑자기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성격 사나운 작가인 엄마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우리집 어린이들의 반응 중에, 아사의 반응과 비슷한 것이 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아사는 마키오가 어려운 말을 쓸 때 마다 단어를 적고 뜻을 새겨서 적으면서 “이모의 악담 노트”라고 부르는데, 우리집 어린이(초등)가 제가 저지르는 각종 장난과, 직접적으로 욕을 안 쓰고 사람을 힐난하는 말들을 내가 준 하드커버 노트에 적으면서 “엄마의 악행 노트”라고 부르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못하는 소리가 없이 저러는 꼴도 안 보고 갑자기 질풍노도의 중학생을 떠안았는데, 아사가 개중 착하다고는 하지만 사춘기인데 말입니다. 숨어서 이모의 악담 노트도 만들고, 마키오는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부대끼는 걸 질색하는 작가가, 마음의 준비도 없이 사춘기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하고 웃긴 것 반, 안쓰러움 반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아사가 마키오를 “다른 나라의 여왕님”이라거나, “이모는 일 할 때는 다른 나라에 가 있다”고 말하는데, 우리 집 유치원생도 내가 뭘 쓰다가 탈고하고 책상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면 엄마 마감하느라 딴 나라 갔다왔다고 그러긴 한다. 그러니 더, 뜻밖의 육아공감을 느낄 수 밖에.
그런데 사실 이런 개인적인 공감과는 별개로, 위국일기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고독한, 자신의 나라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친한 길들이 서로 만나듯이” 가깝게 지내고,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고. 물론 마키오는 굳이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넓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 마키오의 친구들이 어쩌다가 마키오와 가까워졌는지 독자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관계의 시작을 엿보게 하는 것이, 마키오의 친구이자 전 연인이고 지금도 마키오를 사랑하는 카사마치가, 아사의 후견 문제로 종종 마키오와 연락하는 토노 변호사와 같이 식사를 하는 에피소드다. 카사마치는 본인도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지만, 잘생긴데다 변호사니까 공부는 기본적으로 잘 했을 것 같은 토노 변호사를 보며 마키오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저 사람에게 관심 가질 지 모른다고 내심 질투를 한다. 그럼에도 둘은 마키오와 아사의 후견관계와 관련해 몇번 마주친 적이 있고, 식사 때 마주치고는 함께 식사를 하러 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낯가림을 하고, 능력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세계가 있고, 남이 그 선을 넘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 점을 대유하듯 둘은 1인분씩 나오는 정식을 시켜놓고 각자 먹는다. 그리고 마키오와 아사가 아닌 다른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남자사회의 세례”라는 씨름판에서 내려온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는 여유있고 마이페이스로 보이는 카사마치와 토노가, 사실은 또래 집단 속에서 맨박스에 갇히고, 여자를 물건 취급하고, 더 위험한 일을 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남자사회”의 메인스트림에서 도망치거나 벗어나고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설 수 있었던 이야기이고(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이 등장하는 권이기도), 위국일기 전체를 다 읽지 않더라도 이 권은 따로 떼어서 남자들에게 강제로 읽혀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와 별개로 아주 솜씨좋은 연출을 볼 수 있다. 마키오와 그 주변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지를, 그 주변 인물 두 사람이 같이 밥 먹는 에피소드로 설명하는 것이.
한편 주인공이 작가이고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내가 위국일기를 읽고 사랑하게 되는 부분은 사실 이쪽에 치우쳐 있다. (마키오의 손등 위로 단어가 쏟아지는 듯한 컷도 있었고) 몇 권이더라, 주노가 마키오에게 슬럼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작가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하면 글을 안 쓰고 아침에 두 줄 쓰고 오후에 석 줄 지우며 고뇌와 삽질을 계속하는 줄 알지만, 사실 책이 계속 나오는 작가들에게도 슬럼프는 온다. 글은 계속 쓰는데, 뭔가 내가 내려는 그 맛이 좀 안 나고 심심하고 밍밍한 것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단어를 갖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딴 이야기를 하거나 잠들어버리던 아사가 어느 순간, 노래 가사를 쓰다가 이모가 이 부분 좋다고 말했던 “에코”와 관련된 단어들을 스스로 모으는 대목을 좋아한다. 영향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림자 영에 울릴 향자 써서 그늘에서 울리는, 이라고 자신의 언어를 만드는 장면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단어조차 갖지 못했던 어린 사람이 성장하고, 타인의 단어를 통해 자신의 단어를 넓히다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들을 갖게되고, 마지막에 마키오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써 보는 그 결말이 특히 좋았다. 어떤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말로만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그 일물일어적인 감각이. 아득하고 절박하도록.
PS) 이 리뷰에 붙여놓은 표지 이미지는 10권인데,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다른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