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 니노미야 아쓰토, 문기업, 현익출판

“블루 피리어드”의 주인공 야토라는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난생 처음 집중해서 그려본 새벽 풍경에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미대 쪽으로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밖에 없기에, 그는 도쿄 예술대학을 지망한다. “블루 피리어드”의 애니메이션 화 된 부분, 그리고 원작에서의 소위 “고교 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바로 이 야토라의 도쿄예대(동경예대) 입시에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그리고 원작의 “대학 편”에서, 야토라는 도쿄예대에 진학하여 그림을 그리고 고민하고 방황하기를 반복하며 젊은 예술가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온 것은, 순전히 “블루 피리어드”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버스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홍대 미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동경예대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도입부는 동경예대 미대 출신인 저자의 아내의 기행들을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술과 관련없는 사람에게는 별스럽게 보이는 행동들과 각종 과제와 고민들은, 동경예대 미대생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아가 동경예대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인터뷰는 그 자체로 예대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읽히는데, 물론 모든 예대가 이런 분위기는 아니겠지만, 동경예대만이 이런 특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을 리는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였던 드라마 “카이스트”의 공대생이 모든 공대생을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그 드라마에 묘사된 것이 카이스트만의 것은 아니었듯이. 사실 예술에 뜻을 둔 인간의 인생이 “이상한” 구석은 있겠지만 마냥 “찬란할”수도 없으며, 애초에 20대 초반이라는 것이, 술 마시고 노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는 이상 사실은 괴롭고, 우울하고, 종종 돈도 모자라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앞날은 걱정되고, 그런 것인데. “찬란한 청춘”과 “명문대학교”가 같이 붙어있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무언가가 되어버리린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도 그렇고, 저 드라마 “카이스트”도 그렇고.

‘물건을 만드는 시간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사노 씨가 떠올랐다. 분명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두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겠다든가, 남을 이기겠다든가, 하는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최전선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천재란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서술하는 투가 “VJ 특공대”같은 프로그램에서 영양가 없이 오만가지 오도방정을 떠는 말투여서, 번역이 문제인지 원문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이 분위기가 아주 일관된 것을 보면 원문 자체가 그랬을 것 같긴 하다. 작가가 아내의 예술활동에 대해 신기해 하고 설명을 듣는 것이, 꼭 웹툰작가 진돌 인터뷰 중간에 “우리 히디님이 또 오타쿠로서 이런일을 하셨는데!”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내용 자체로 웃기고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도 아니고, 동경예대만이 이런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자기가 이해할 수 없으면 “천재란 이런 것일까”하는 말들이 이어지는 것도 딱하다. 장인정신과 기발한 발상과 행동력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 아아, 이게 예술에 관심 없는 일반인이 예술가에 대해 멋대로 생각하는 그런 것인가, 하고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아니, 잠깐. 이 작가도 원래는 호러와 오락 소설을 쓰던 사람이라며!!!!!

이 책은 마치 “노다메 칸타빌레”의 미술버전 같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품는 환상(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기행을 벌이는 천재 예술가 같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현실에서 만나는, 지속 가능하게 자신의 예술을 계속해 나가는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어떻게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함께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예술에 관심없는 일반인들이나, 단 한 작품만을 발표한 채 예술 근처를 얼씬거리는 이들은 작가가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저런 것은 진짜 예술이 아니라는 둥 험담들을 하지만. 내가 아는,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랬다. 예술 하나에만 몰두한 채 속세의 것들을 다 잊어버린 듯한 광인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블루 피리어드”의 야토라가, 이 책 속에서 “일반인이 관심갖는 부분을 중심으로 인터뷰 당한” 동경예대의 젊은 예술도들보다 더 현실적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홀린듯이 예술의 길로 접어들어 고민하고 방황하며 벽을 넘는 것은 결코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아니며, 한편으로 예술 역시 사람을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여러 도구들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장은 아마도 “쓸데없는 물건”을 만드는 행위를 하는(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우에무라 씨의 인터뷰에 담겨 있을 것이다.

“도움이 되는 물건은 예술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잖아요.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거의 쓸데없는 물건이지만, 그걸 만드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라서요.”
“예술은 하나의 도구가 아닐까요. 사람이 사람이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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