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변호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변호사 시험에 도전했으나 두 번 연속으로 낙방한 후루사키 코스케는, 수험을 지원해 주었던 외조부와의 약속대로 머리를 깎고 타칸이라는 법명을 받은 승려가 된다. 그리고 거대한 호수와 우거진 숲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의, 얼마 전 문을 닫은 시골 산사의 단가들을 돌보고 장례식을 주관하기 위해 그 마을의 주지로 부임한다. 절로 가던 중 숲속에서 입에 열쇠를 문 이나리 여우 신상이 놓인 나이나이당이라는 기묘한 가게에 들른 코스케는 여우같은 인상을 지닌 신비한 인물인 코사카 긴카와 만나게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타누키 화상(타칸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불리게 된 코스케는 자신의 추리력과,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볼 수 있는 긴카의 신통력으로 단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흔적을 보라, 사바하.
이야기 자체는 Q.E.D와 C.M.B 시리즈로 이미 확고한 카토우 모토히로 스타일의, 지적인 추리물이다. 모방범죄를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잔인한 사건을 설정해 놓고 읽는 독자도 실소할 정도의 추리를 내놓는 경우도 많은 타 작가의 작품들과 달리, 카토우 모토히로의 주인공들은 논리를 바탕으로 지(知)를 존중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동글동글한 그림체 덕분에 살인사건의 참혹함도 상대적으로 덤덤하게 표현되는 것도, 이들 침착하고 논리적이며 지적인 주인공들의 추리와 맞물리며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추리 과정 자체”를 즐기게 한다. 다만 Q.E.D의 토마 소가 수학을 전공한 이과적 인물이고, C.M.B의 사카기 신라가 박물관을 사랑하며 역사와 박물학에 관심이 많은 캐릭터이며, 이들의 파트너에 해당하는 미즈하라 가나(Q.E.D)나 나나세 타츠키(C.M.B)가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지적인 면에서는 평범하게 등장한다면, 나이나이당에서는 여기에 다시 변주가 더해진다. 우선 긴카의 신통력과 설화나 민속학적 지식을 통해 사건의 답을 찾아내거나 1차적인 답을 구하고, 다시 코스케가 논리적인 추리로 이 답의 과정을 찾아내거나 틀린 답을 교정하는 형태다. 다시 말해 긴카가 푼 문제를 코스케가 검산하는 구조다.
Q.E.D, C.M.B로 작가의 고정 팬들이 적지 않을 텐데 종이책으로는 안 나오고 E-book으로만 나온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독자들이 알 만한 일본 민속, 이 아니라, 본격 민속학 입문 정도까지 독자를 끌고 가려고 하는 요소들이 있다. 사실은 이 점이 흥미롭고, 또 한국 민속으로 작품을 할 때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참고가 되는 부분이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 만화는 라이트하지 않다, 일본 외의 지역에서는 아주 코어 독자만 끌고 가는 만화가 될 것이다(그러니까 일본 내수용이다)라는 판단이 섰던 거겠지.
그나저나 코스케는 답을 찾는 것은 느리지만 흔적을 침착하게 관찰하고 긴카의 풀이를 검산하는 모습을 보면 여타 시리즈의 탐정 주인공들 만큼의 천재는 아니라 해도(근데 애초에 토마 소는 하버드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일본에 돌아와 다시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녀석이고, 사카기 신라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영박물관 지의 반지 세 개를 모두 갖고 있고 역시 전세계에서 의뢰를 받고 있다.) 논리 면에서 어디 빠질 사람이 아닌데, 시험 운이 없지 않았다면 변호사 시험에 진작 합격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