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우리가 구현하는 어떤 세계의 형태를 그리는 과정에서 문학의 세계와 문학 속 인물은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문학을 하는 인간, 그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은 역시 현실에 살고 있는 법이다. 그걸 분간할 능력이 없다면, “나는 남에게 기생하지 않고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는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겠지.
윤리적인 기준을 갖다댈 것 없는, 따로 선악이 없는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을 예로 든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선과 악 없이 그저 존재하는 현상이거나 구현하는 기술에 불과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윤리까지 포함해서 “기술의 윤리성”에 대해 우려한다. 그리고 수많은 창작물들은 바로 기술의 이런 점에 매달려서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윤리를 잃은 과학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고 외쳐댄다. 그런데 정작 문학을 빙자해서 남의 인생을 허락 없이 모사하고 그로 인해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문학과 현실의 윤리는 달라요”라니, 너무 뻔뻔한 것이 아닌지.
창작물 속에서 괴물들과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들이 기술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동안, 현실에는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듯 글을 쓰는 역겨운 작자들이 폭로를 위해서도, 공익적인 목적도 아닌 상황에서 뻔뻔하게 무단으로 남의 인생을 모사해 놓고, “모사 대상이 된 타인”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현실의 윤리로 문학의 윤리를 검열하지 마세요” 하고 자빠졌다. 그러면서 원래 문학이란 그런 거라고, 다른 장르도 현실을 문학에 반영하지 않느냐고 마구 남의 머리채들까지 같이 붙잡고 빠지려 든다. 이 물귀신같은 새끼들이. 물론 수많은 작가들이, 만화도, SF도, 스릴러도, 판타지도, 모두 현실에 어느정도 뿌리를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남의 인생을 그대로 갖다 베끼지 않고, 실존하는 삶을 참고하더라도 여러 사람을 섞어 특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가급적이면 본인의 허락을 받는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을 단순히 내 글의 소재가 아니라 인격체로 여기고, 그 인생을 존중하고, 글을 통해 부가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 한다. 권력자에 대한 풍자나 악행에 대한 폭로, 공익적인 게 아닌 이상 대부분 그렇게 한다. 남들 다 할 줄 아는 그 일을 할 줄 모르는 것은, “발칙해서”가 아니라 그 정도도 피해 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쓴 글은 인류가 남길 단 하나의 문화유산이 될 만한 걸작이라 사소한 피해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그런 종류의 예술도 아니다.
그냥 각잡고 못되게 말해 보겠다.
남의 인생 씩이나 베껴 먹고도 존나 못 쓴 글 하나 옹호하자고 예술 전체의 윤리를 시궁창에 처박지 마십쇼 이 멍청이 새끼들아.
인간이 작가로서 자존심이 있고 기개가 있으면, 작품은 작품이니 예술의 윤리로 둔다 해도 작품 외로 벌어진 피해에 대해서는 현실의 윤리에 맞게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냐. 어디 자기 작품 뒤에 숨어서 현실의 윤리가 어쩌고 웅앵웅. 떼로 못난 인간들 같으니.
그리고 그따위 짓거리를 감싸겠다고 “검열하지 말라”면서 무슨 문학이 탄압받는 소리 하고 있는 “일부” 평론가들이 보이는데, 님들이 하고 있는 짓은 탄압받는 문학을 지키는 게 아니라 문학에 남들이 꽂아놓은 산소줄을 잡아뽑는 짓이라는 거나 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 나왔으니 말인데. 현실의 윤리와 작품 속 세계의 윤리도 구분하지 못하고, 단어 사용에 있어서도 검열과 비판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고 오용을 하실 정도면 평론을 하시면 안 되는 거죠.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입이 틀어막히는 것과, 일단 뚜껑을 열어봤더니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 작품을 비판하는 것도 구분 못하시는 모양인데, 누가 단어 뜻도 제대로 모르는 평론가의 말을 읽고 싶어하겠어?
PS) 과학소설작가연대에서 이 일에 대해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SF 작가가 아니더라도, 아니, 작가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연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