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백률사 약사여래 앞에서

백률사 약사여래는 어쩌면 여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저 앞에 한참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서도 계속 그 생각을 했다. 한 손으로는 사람들을 지혜로 이끌고 다른 손에는 사람들의 고통을 낫게 해 줄 약을 들고 있었지만, 지금은 뱃속에는 아이가 있고, 전쟁이나 재난으로 두 손을 잃은. 물론 저 약사여래에 처음부터 손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금칠이 되어 있었던 거니까, 그건 그냥 후대 사람이 그 앞에서 하는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과 전쟁같은 세상에서 손을 잃고도 여전히 사람들을 구하려 하는 모습 같아서 그 앞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퍽 지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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