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사

넷플릭스 음양사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음양사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음양사 하면 오카노 레이코의 그림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마치 “고스트 바둑왕”의 후지와라노 사이가 신도우 히카루와 결혼해서 낳은 것 같은 노란 블리치 머리의 요망하고 귀여운 미청년 아베노 세이메이를 보고 조금 당황했는데, 오카노 레이코 버전의 원작이기도 한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을 기반으로 세이메이와 히로마사 메인으로 쓴 동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원작에서 봤던 익숙한 에피소드에, 히로마사와의 관계를 잔뜩 강화해서 셋팅한 상태다. 여기에다가 노린듯한 캐디와 화면구도까지 종종 나온다. 아예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애니메이션 에피소드 몇 편을 연속으로 할애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태산부군제 에피소드도 원작에서는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어느 스님의 문제이고, 세이메이는 이 스님의 정념을 식신으로 삼아 태산부군에게 바치며 문제를 해결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태산부군제 에피소드를 통채로 “세이메이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히로마사와, 히로마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바치는(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태산부군을 속인) 세이메이”의 관계로 만들어 버린다. 이쯤 되면 동인지지……. 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원작(유메마쿠라 바쿠)에서 히로마사가 수시로 자각없이 세이메이에게 플러팅을 던지는 것을 보면 이게 바로 브로맨스인가, 역시 BL은 남자가 써야 제맛인 건가, 뭐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원작을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변용한 부분들이 꽤 있는데 이게 괜찮다. 아시야 도만은 여성으로 나오는데, 예전에는 남성 모습으로 나왔지만 지금은 여성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원작에서도 좋아했던 벌레를 좋아하는 츠유코 아가씨의 이야기에서도, 도만이 만들어 낸 쿠로마루는 벌레들끼리 죽고 죽여 만들어진 고독이 어니라, 츠유코에 대한 사람들의 험담을 모아 만든 적잠충이다. 이 적잠충 설정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치 “악플러들의 악플을 하나하나 수집하여 합의금을 받아낸 뒤 그 합의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하는”, 매우 크리스마스다운 방식으로 활용된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한 원작에서 세이메이는 벚꽃은 벚꽃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살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츠유코가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나답게”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이야말로 이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되는 세이메이를 관통하며 구원하는 말이기도 해서, 이쯤 되면 츠유코가 오프닝에도 나오는 레귤러 멤버로 자리잡은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츠유코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좀 걱정되기도 했다. 과거 오카노 레이코의 음양사 코믹스에서 세이메이의 이해자이자 나중에 세이메이의 아이를 낳는 현명한 마쿠즈, 를 두고 “작가의 자캐 아니냐”고 욕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서. 사실 마쿠즈는, 오카노 레이코의 음양사를 마지막으로 읽고 지금 10년 넘게 지났다 보니 다시 읽어봐야 정확하긴 하겠지만, 역시 작가의 자캐로서 등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세 가지 측면에서인데, 일단 세이메이는 “음양사”다. 히로마사와의 관계가 무척 사랑스럽지만, “음과 양이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세이메이는 음양사인데,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 란 실제로는 역법과 천문과 관련된 관직이지만, 이야기 속에서의 음양사란 이 세계의 과학자이자 마법사이며 연금술사다. 이 버전에서의 세이메이가 현명하고 신비로운 마쿠즈와 교감하는 이야기는 세계의 근원을 찾는 것, 아들을 낳은 것은 현자의 돌을 얻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고, “여우의 자식”이라고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미움을 받았던 세이메이가 “평범한 인간 남자”가 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복층 레이어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또, 히로마사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히로마사와 세이메이가 두 사람의 정원에서 술을 마시고 달을 바라보며 영원히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세이메이가 말했던 “시들어 가기에 사랑스러운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 관계를 영원히 고정적인 것으로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튼 츠유코는 원작에서도 짧게 등장했지만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애니메이션에서 좀 더 현대적으로 다듬어졌으니까. 반응이 좋으면 좋겠는데. (원작에서도 츠유코는 매력적이다. 시리즈 5권에 나온다.)

사실 셜록 홈즈를 사랑하고 제갈공명을 사랑하고 양 웬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세이메이는 같은 계열이고 같은 덕질 리스트에 당연히 들어 있는 캐릭터다. 게다가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는 셜록 홈즈의 헤이안 시대 버전과도 같은 면이 많다. 다만 이쪽의 마이크로프트에 해당하는 카모노 야스노리는, 워낙 등장도 적은데다 친형제가 아니라 “스승의 장남이자 세이메이의 사형”으로 나오다 보니 좀 미묘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번 애니판에서는 거의 레귤러 멤버가 되었다. 원작에서는 음양도의 거두이지만 현재 음양료가 아니라 다른 쪽의 장관을 맡고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덴노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음양두로 나오다 보니 조정 장면에 필수로 등장하기도 하고, 덴노의 명령을 받아 세이메이에게 지시를 하거나, 의외로 부지런하게 세이메이의 집에 나타나기도 한다. 소설판보다 훨씬 능구렁이같고 귀엽기도 하다. 실눈캐가 눈을 너무 자주 뜬다는 것을 빼면. (웃음)

카모노 야스노리는 세이메이의 스승인 카모노 다다유키의 장남으로, 세이메이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부터 별다른 수련 없이 귀신과 요괴들을 볼 수 있었으며, 원작에서도 다다유키의 음양술 중 몇 가지는 오직 야스노리와 세이메이에게만 전수된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애니판의 카모노 야스노리는, 속성은 마이크로프트인데 입장은 오비완 케노비다. (원작도 사실 등장이 적어서 그렇지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이미 독립할 나이가 다 된 상태였던 야스노리에게 있어 세이메이란 들어온 아버지이자 스승의 막내 제자, 그것도 실력은 무척 뛰어난데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녀석이었다. 자기가 평생 뒤치닥거리해야 할.

물론 세이메이는 젊고 화려하고 필드에서 뛰는 걸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여우의 자식이라 질시하면서도 그 실력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야스노리는 본인도 말하지만 덴노를 모시는 사람, 이고 천문을 보며 더 큰 일들을 결정할지언정 화려한 일은 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그 실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본인은 주인공의 “형님”인 만큼 실력이 발군이고, 남들이 뭐라 하건 세이메이에게 열등감 따위는 전혀 없다. 세이메이에게 너 정도를 해치는 데는 귀신이 될 필요도 없다고 할 만큼 자신이 강한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야스노리에게 있어 세이메이는 무척 번거로운 사제다. 아버지의 막내 제자고 실력은 뛰어난데, 실질적으로 얘가 아직 관직에도 오르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기가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애가 실력도 좋고 소문도 자자하지만 자기 눈에는 아직 철딱서니 없고 뒷마무리 모자란 어린애다. 그야말로 근면성실한 오비완의 고뇌를 게으른 마이크로프트가 떠안은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한술 더 떠 애니판에서 세이메이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심지어 다다유키의 다른 제자들이기도 한 자신의 사형들에게마저 여우 자식이라고 차별과 조롱과 괴롭힘을 너무 당한 나머지, 자신의 큰 사형이자 다다유키의 장남인 야스노리도 자길 미워한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그 셋팅도 역시, 히로마사가 세이메이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이야, 정말 동인지잖아, 싶어지는) 작중에서 야스노리 입장에서 아버지 장례식 때 세이메이를 빤히 쳐다본 건 세이메이가 아버지를 저주했다고 의심해서가 아니라, “저놈의 자식 앞으로 한 10년은 더 키워야 사람 되려나” 견적 뽑는 중이었을 텐데 그것마저 오해할 만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니판 사형사제 관계가 무척 마음에 든다. 형님은 고생을 하시겠지, 오비완 케노비만큼. 하지만 2기가 나오고 형님이 더 고생하시면 좋겠다. (어째서 이런 결론이) 그리고 네코마타 크고 토실토실하고 귀엽다.

PS) 중간에 세이메이 과거편에서, 스승님(다다유키)은 어린 세이메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쫓기다 넘어져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계속 그러고 있을 거냐 꾸짖으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고독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해주는데. 갓 성인이 된 세이메이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의 진심을 알고 돌아나오다 마음의 벽을 치면서 “스승님께 또 꾸지람을 듣겠군.”하는 장면 말인데. 다다유키도, 야스노리도, 음양사로서 뛰어난 인물인 만큼 남의 어둠도 많이 보고 고독한 건 어쩔 수 없지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겠죠. 그러니 야스노리도 저 꼬리치는 똥강아지같은 성격에 사람 좋은 황손 미나모토노 히로마사가 왜 얼씬거리지, 저것도 정교한 기계에 끼어든 모래알 후보인가 하고 마치 털을 세우는 네코마타마냥(……) 견제를 날렸던 것 같은데.

저새끼 언제 사람 되지 하던 형님보다 정작 더 친구도 많고 덜 외롭게 사는 막내사제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거.

PS2) 하지만 덜 외로운 건 좋은데 저러다가 알코올중독 되는 거 아니냐…….(엔딩)

PS3) 근데 스승님 부자는 로맨스 전개에 이용당한 거야……. 스승님은 엄격해도 좋은 사람이었으니 세이메이가 힘들때 스승님 생각한 거고, 야스노리도 의심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남기고 간 저놈 새끼 앞으로 한 10년은 더 키워야 사람 되나” 견적내느라 쳐다본 건데 히로마사는 그거 보고 오열……

PS4) 일애만 좋아하시는 다른 부서 상사께서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시길래 음양사를 권해드리며 “11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애니인데,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원작 기분에,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우정’을 강조한 버전입니다.”했더니 “…..걔들이 우정이라고?”하고 즉각 반문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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