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 정보라, 다산책방

그냥 읽고 있으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이 난해한 것이 아니라 이름이 낯설기 때문이라는 것은 책을 1/3 정도 읽었을 때 깨닫게 된다.

“고통에 관하여”는 읽으면서 무척 괴로운 소설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부작용이나 중독 없이 고통만을 없애는 진통제 ‘NSTRA-14’를 만든 제약회사와, 고통을 갈망하며 고통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의 갈등, 그리고 테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을 벗기고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학대당한 어린아이들 이야기가 보인다.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당하는 고통은, 사람이 신에게 받는 고통과 같다. 부유하지만 잘못된 부모에게 직접 노골적인 학대를 당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결국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 그들이 자식으로서 당하는 고통은 로 인해 고통받는 자식의 이야기는, 생득적인 고통이자 신=숙명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이야기의 대유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작가 본인이 느낀 감정이구나 싶을 정도로 고통이 뚜렷하게 전달되는 부분들이 있다. 생득적인 고통의 면에서는 이야기의 메인스트림에서 한 걸음 밖에 서 있는 형사 륜의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는 트랜스젠더다. 차별받고 있지만, 어떤 문화권에서 그들과 같은 제3의 성을 지닌 아이는 “신의 아이”로 취급받기도 한다거나 하는.

이 고통이 읽는 내내 뼈가 시리도록 신산하게 닿아와서, 계속 생각했다. 이 고통은 당신의 고통인가, 하고. 고통을 없애주려고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랑은 없는 그 모든 것들은 당신이 겪었거나 보았던 모습인가 하고. 작가와 작품은 다르고, 작가와 작품 해설 사이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망가뜨리고 남을 만한, 신에게서 받는 것과 같은 이 고통은.

고통을 없애는, 어떤 면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 대표의 학대받은 아이인 경, 부모 대신 종교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 제약회사에 테러를 하는 태와, 교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교단에 헌신하는 태의 형 한, 그리고 신의 아이이지만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륜. 이들은 모두 “신의 아이이되 신, 또는 부모에게서 고통받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은 복수를 하거나 테러를 한다고 흐려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엽은 치료하는 의사이자, 태와 한을 보호한 종교단체의 교주이고, 외계의 존재다. 고통을 없애고 악을 처단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한 차원 위에서 도달한다. 그리고 남은 인간은, 상처의 피가 멎고 아물고 딱지가 앉아 흉터로 남기를 기다린다. 상처를 덮는 그 딱지같은 것을, 작가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짧게 언급되는 륜 부부나, 경을 보호하고 그와 결혼하고 그를 존중하는 현을. 앞부분의 등장인물 소개 부분에서 경의 한자인 “홀로 경(嬛)”은 “산뜻할 현”이라고도 읽는다고 언급되는데, 그것은 경과 현이 본질적으로 같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과 경의 사랑이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사랑이어도 좋고, 그가 홀로 긴 방황의 끝에서 마주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어도 좋다. 고통을 덮어 살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니, 어쩌면 뻔한 답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사랑으로 인해 경은 고통과 상처와 분노를 넘어 그 다음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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