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이해할 수 없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교명 변경 작업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2003년부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대학원에 다니다가, 휴학하다가, 졸업하다가, 졸업장을 받고 나면 2,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재입학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수도권 내 4년제 대학에서 이학사와 공학사를 받긴 했고, 그곳에서의 대학 생활도 소중하지만, 솔직히 20년동안 휴복학을 반복해 온 이쪽은 이제 그냥 살다가 으레 공부가 필요하거나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복학해서 다니는 곳,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방통대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방통대에 다니는 사람, 혹은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나 방통고를 졸업하고 방통대에 다니는 사람, 2년제를 졸업하고 4년제 학위가 필요해서 오는 사람, 4년제를 졸업하고도 또 다니는 사람, 석박사 학위 갖고 있는데도 다니는 사람, 정치인들, 경제인들, 소시민들, 공무원들, 은퇴하고서 다시 공부 시작하시는 어르신들. 방통대는 국립대학인데도 의외로 문턱은 낮아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학할 수 있다. 그야말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같은, “상록수”에 나오는 농민독본의 한구절같은 학교다. 하지만 방통대란, 그냥 학적에 이름만 걸어놓고 졸업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수업 꼬박꼬박 들어야 하고, 때 되면 과제 내야 하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거나 졸업시험도 봐야 하는. 시험도 꽤나 어려워서 공부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학점 잘 받기 쉽지 않은 곳. (그러나 공부를 하면 의외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곳) 이런 사람들에게 방통대 졸업장이란, 내가 이렇게 일하면서, 사회생활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증명같은 것이다. 방통대가 그렇게 허술한 학교는 아니지만, 사회에는 의외로 방통대 자체는 낮잡아 보면서도 방통대 졸업생이라고 하면 그 끈기만은 인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방송통신대학교라는 그 이름은 초라한 가난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증거이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노력을 이루어낸 증거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학교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금 이름에서 조금 더 인터넷이나 그런 요소가 추가되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CI를 바꾸고 학교 홍보를 다시 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비용이 나올까 생각했다. 그리고 설문지를 보았다. “한국미래대학교”와 “한국우리대학교”같은, 트렌디 드라마나 BL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름들이 후보랍시고 올라와 있었다. (아니, BL 장르에 한정하면 온갖 BL에 최고학부로 나오는 한국대학교가 아닌게 어디냐고 해야 하나.) 설문지에는 학교 이름을 바꾸지 않는 걸 희망한다는 항목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시발, 부터 시작하는 장문의 욕을 내뱉으며 창을 닫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일까, 박근혜 때 온갖 정부기관은 물론 박물관들까지 로고를 다 통일해 버렸던 일이 생각났다. 잔뜩 화가 난 채로 방송통신대학교 홍보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이미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는지 지친 목소리의 담당자가 말씀하셨다. 아직 교명을 바꾼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고, 공모를 했고, 선호도 조사를 하는 중이고, 그 뒤에 교수님들이 협의해서 결정할 거라고, 교수님들이 볼 수 있는 커뮤니티 등에 이야기를 해 주면 안 바뀌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담당자님도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졸업생과 재학생의 방송통신대학교라는 이름에 대한 작은 자부심,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살았다는 긍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학생들도 직원들도 원하지 않는 이것을, 대체 원하는 건 누구일까. 방통대 교수님들은 방통대 출신이 아니고, 가난하고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애써 본 기억이 없어서 사람들의 그 작은 자부심을 알지 못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정말로 어디 사이비 도사라도 뒤에서 쑤시고 다니면서, 학교 이름을 바꿔야 나라가 잘 된다고 헛소리라도 늘어놓은 걸까. 어느 쪽이라도, 학교 이름이 “한국미래대학교”나 “한국우리대학교”따위로 바뀐다면 그냥 복학을 안 하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대학원까지 나왔고 지금도 그냥 필요할 때 다시 복학해서 다니는 느긋한 처지라 할 수 있는 오만한 소리이긴 하지만, 그런 이름이 박혀 있는 졸업장을 받고 싶진 않다. 이름이 어디 만화나 드라마에 나올 것 같아서 쪽팔린다기보다는, 그런 성의없는 이름 자체가 재학생과 졸업생의 노력의 가치를 존중해주지 않는 느낌이어서 매우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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