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랑하는 사물들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작은 박물관이다. 이 책에서 “감성 유희를 위한 도구상자”라고 불렀던 소품함이나, 어린시절의 작은 보물들을 담아 모아놓던 물체주머니나 작은 상자들 같은 것,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 나오는 작은 마블 구슬 같은 것들이다. 대량생산된 사물은 세월의 흔적과 사람의 기억을 입어 유일무이한 것으로 거듭난다. 진짜 토끼가 된 벨벳 토끼 인형처럼. 이 책은 바로 그런, 저자에게 때로는 깊은 인상을, 호기심을, 한때 손에 머물렀지만 결국 추억을 남긴 사물들을 이야기한다.
그런 사물들에 대한 에세이들은 언뜻 비슷비슷하다. 일본에서 나온 책도, 한국에서 나온 책도. 남성 작가가 쓴 책은 조금 더 젠체한다. 자신이 소개하는 사물들이야말로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명기, 명품이라고 강조하며, 자기 취향이야말로 고상함, 고품격 그 자체라고, 혹은 품격있으면서도 합리적이라고, 자신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빨간 색연필 들고 밑줄이라도 그으려 들 기세다. 여성 작가들의 사물에 대한 책들은 그보다는 좀 더 내밀한 감성에 닿아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생활과 닿아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누군가는 살림살이를, 누군가는 살림살이 중에서도 전통에 더 가까운 것들, 소박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물건들을, 또 누군가는 서구의 앤티크 제품들을, 문구를, 악세사리나 모자를, 손을 움직여 일을 할 때의 도구를. 이 책은 그보다는 조금 다루는 폭이 넓다. 이 책이 다루는 물건들은 직접 생활에 사용한 물건들이 아니다. 번역가로서 외서의 지면에서 만난 물건들,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고민했던 물건들, 설렘과 추억과 동경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물 에세이이자, 번역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뱅커스 램프는 언젠가 내가 글을 쓸 책상을 안정적으로 놓을 자리를 다시 확보하면 책상에 놓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에서 다시 만나서 조금 웃었다. (요즘은 집 가구 배치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 숫자보다 책상 숫자가 더 많은 집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아마 내 보조책상 하나는 끝내 쫓겨나야만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