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나 그림책전

백희나 그림책전

백희나 그림책 전시회. 주말이 되자마자 아침일찍 출발해서 두시간 꽉 차게 보고 나왔다. 보는 내내 기억하고 있는 그림책의 장면들과 여기 진열된 인형과 배경들을 비교하며 볼 수 있었고, 사진에서는 바로 안 보이는 트릭들도 보여서 연출에 관심있는 사람은 반드시 봤으면 하는 전시였다.

사실 요즘 많은 전시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것을 노리고 전시를 해놓은 경우가 많다. 전 구간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실물보다 사진찍기 좋은 조형물에 더 힘을 주기도 하고, 전시를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면 기념품을 주기도 하고. 하지만 이 전시는, 홍보의 기본은 역시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이라고 생각하는 요즘 전시의 대세와 달리, 하다 못해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학부모가 자식의 수업 중에 사진이나 찍고 있는 이 망할 시대에, 촬영 금지가 붙어 있다. 그게 매우 쾌적했다. 안 그랬으면 아이들 데리고 온 어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전시물은 안 보고 사진이나 찍느라 관람을 못 했을 테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달 샤베트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 앞에서 한참 그냥 서 있고 싶었지만, 전시 혼자 보는 게 아닌 이상 그럴수는 없지.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나는 개다”의 세계가 시작된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덕분에, 전시회아 온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키에 맞추어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고, 이쪽에서 보면 동동이와 아빠가 사랑해, 하는 장면인 것을 깨닫고, 인형들의 배경으로 놓인 실사 풍경이 출력된 사진이며, 이걸 상자 각에 맞춰 접은 게 아니라 느슨하게 늘어뜨린 상태로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건물과 배경들이 택배 상자에 물감칠을 해서 만들어졌고, 구름빵에 나온 캐릭터들은 종이인형처럼 보이는 쪽 면만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상한 엄마에 나오는 선녀 옷에는 철사가 들어 있어서 하늘하늘하게 날리는 모양을 만든 것도.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트레이싱지에 그려진 “꿈에서 본 똥파리”가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에 애니메이션 셀이나 레이어처럼 그려져 겹쳐졌다는 것을, 원근감을 나타내기 위해 가까운 쪽 상자는 더 크게, 먼 곳 상자는 작게, 진열대도 일부러 기울여 놓았다는 것도 이야기해 줄 수 있었고.

예전에 구입했지만 책이 너무 낡아서 계속 갖고 있지 못했던 “어제 저녁”을 다시 만난 것도 좋았다. 예전에는 다른 이웃들의 이야기에도 눈이 갔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키우는 중이라 그런지, 토끼네 아빠 사별하고서 여덟마리 아기토끼 키우는 것도 좀 딱하고, 오리 유모가 여덟마리 아기 토끼들 데려다가 읽어주는 책은 달 샤베트인 것도 눈에 들어오고. 한편으로 우리집 초등학생은 얼룩말씨의 구두와 스케이트를 보며 이건 정말 만든건지, 아니면 바비의 신발이나 스케이트인지 궁금해 했다. 지금 다시 보니 얼룩말씨 다리는 혹시 관절 바비의 다리가 아니었을까.

우리집 유치원생은 삐약이 엄마 쪽을 세번 돌았는데 웬 유치원생에게 끌려다니면서 삐약이 엄마와 장수탕 선녀님을 암송하고 있는 낡고 지친 중년을 보셨다면 그게 저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후 우리집 초등학생이,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조형물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달 샤베트에 나오는 그 아파트다. 왼쪽 라인, 위에서 두번째 층에 있는 반장 할머니 집을 찾아보는데, 옆에 있는 커다란 CCTV 화면에 아파트의 각 집의 풍경이 하나하나 비친다. 아이는 자기 키 높이로 보이지 않는 집들이 보이는 것에 감동했고, 나는 그 집 하나하나를 CCTV로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코너에 선녀님 전용 장수탕이 있었다. 목욕탕 타일을 바른.

중간중간 드라이아이스를 썼는지 김도 올라왔다. 선녀님 전용이라고 하자 아이들은 와서 좋아만 하는데, 꼭 어른들이 탕 주변에 앉아 있어서 별로였다.

PS) 그리고 다 보고 나오면 포토존이 있는데. “어제 저녁”에 나오는 두 페이지가 그대로 놓여 있고, “달 샤베트”에서 달물로 만든 샤베트를 물고 가는 동네 사람들을 세워 놓았고, 또 “알사탕”에 나오는 동동이네 소파가 재현되어 놓여 있습니다. 동동이네 소파의 대사를 외워 가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파에게 대사라니 무슨 버스의 손잡이가 불평을 하는 소리, 가 아니라. 알사탕은 원래 그런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

아까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큰어린이가 “세상에 어떤 어른이 동동이네 소파 대사 같은 걸 외워서 전시회에 오겠어.” 그러는 것이다. 아니, 너희들 사진 찍을 때 그 옆에서 “동동아….. 동동아….. 옆구리에 리모컨이….. 너희 아빠가….”하던 건 그럼 소파에서 난 소리인 줄 알았냐. 뭔가 우리집 어린이들은 내가 그림책 오타쿠라서 그림책 대사를 전부 외우고 다니는 줄 아는데……. 이 어린이들아, 누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나한테 그림책 읽으라고 했지요?

PS2) 아이들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는 “연이와 버들 도령” 쪽을 오래 차분히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안타까웠는데, 뭐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들이 나를 놔두지 않아서……

그와 별개로 연이와 버들 도령 세트를 실제로 본 것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어릴때 연이와 버들도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뻔하게 계모에게 구박받는 아이, 하늘에서 내려온 도령에게 뻔하게 구원받는 이야기였다. 계모가 연이를 질투하여 도령을 죽여버리고 낙원도 불태워 버리는 건 좀 인상적이었지만.

백희나 판 연이와 버들도령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본다. 계모가 아니라, 계모인지 친모인지 혹은 남인지도 애매한, “나이 든 여인”으로 나온다. 한편 연이와 버들 도령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버들 도령의 낙원은 연이가 고통 속에서 겨우 찾아낸 자신의 낙원이 되고, 버들 도령이 건네준 꽃 역시 연이의 안에 깃들어 있는 힘이 된다. 얌전히 집안일이나 도울 줄 알았던 어린 딸이 대학에 가겠다고 공부하는 것을 보고 책을 찢어버리던 구시대의 부모처럼, 혹은 얌전히 공부나 할 줄 알았던 딸이 만화를 그리거나 음악을 할 때의 부모들의반응처럼, 나이 든 여인은 자신의 통제 밖으로 나간 연이의 낙원을, 보호를 명목으로 불태운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잘리고 책을 다 빼앗겨도 어떤 이들은 공부를 하고, 두들겨 맞고 집에서 내쫓겨도 어떤 이들은 창작의 길로 나선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낙원을 되살려내는 힘으로 연이는 버들 도령을 되살려내고 하늘로 간다. 그리고 나이든 여인은 그냥 살던 대로 살아간다. 그 모양 그 꼴로. 나는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그런 연결고리들을 다시 새겨넣은 이 이야기들이 가슴을 파고들어서, 읽고도 계속 그 장면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세트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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