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 만화를 본 것은 80년대 초반, 잡지 “보물섬”에서였다. 그 다음은 KBS 둘리 애니메이션, 그 다음은 요요코믹스. 그리고 얼음별 대모험 극장판이 있고, 그 다음은 SBS에서 나온 TV판. 한국 만화 원작으로 이렇게 여러 번 애니메이션화가 진행된 작품이 또 있었을까 싶다. 둘리가 한국 만화의 대표주자, 역사에 길이 남을 우주명작인가, 를 두고 말한다면 또 다르겠지만, 일단 내가 유치원도 가기 전에 낡은 “보물섬” 잡지를 붙들고 보던 그 만화를, 세월을 넘어 아이들 데리고 보러 갈 수 있는데, 그게 한국 만화라는 건 꽤 감개무량한 일이다.
리마스터판이라고 해도, 물리적인 화면 크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그림도 물리적인 형태로 보존된 작품은 스캔이나 촬영을 통해 화면 크기를 키우거나 해상도를 높일 방법이 있고, 영화도 필름 상태로 보존된 작품은 오히려 이 문제에서 더 자유롭지만, 디지털로 작업한 작품은 리마스터링에도 한계가 있다. 큰 TV나 넷플릭스 해상도라면 아슬아슬할까, 이걸 영화관에서 보고 있으니 낡은 게 티가 많이 난다. 그리고 리마스터를 할 거라면 색 보정을 좀 할 것이지. 파랑색이 전부 쨍하게 튄다. 그 무렵에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은 한국 일본 한 것 없이 색감이 그런 게 많았지만.
화면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아무래도 낡은 부분들이 있다. 또치의 대사들이나,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용인되었던 성적인 농담들이 지금 2023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는 좀 적당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지금 영화관의 증정 이벤트 같은 것들을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타켓으로 했다기보다는 둘리 40주년을 기념해서, 어른 팬들에게 다시 인사를 하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리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당장 지금의 유치원생들은 불편하게 느낄 만한 대사들이 좀 있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조금 순화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더빙을 새로 해야 하니 그것도 어려움이 있긴 했을 것 같다. 마이콜송에서 마이콜이 “마씨 집안은 노래를 잘한다~”하면서 부르는 마돈나 마이클잭슨 마릴린먼로 이문세….. 등등에서 아이들이 바로 아는 건 슈퍼 마리오 뿐. 그런데 둘리가 슈퍼 마리오 옷 입고 나오는 건 괜찮은 건가?
사싫 시대를 탄다는 것은 둘리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만화판에서도 어린이 만화의 한계 안에서 최대치로 당시의 세태에 대한 비판들이 담겨 있었고, 둘리이명박 시대에 방영되었던 SBS판 둘리에서는 “쥐를 잡자 쥐를 잡자”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 시대를 달려가며 볼 수 있는 독자들에게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장점과, 몇 년만 지나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린이들이 알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집에 와서 따라 부르는 건 “콜! 마이콜! 콜!” 하는 대목 뿐이니 괜찮은 것일지도.
…..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어른의 감상이고, 어린이의 감상을 들어보면 둘리는 여전히 시대를 넘어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라는 것이 느껴진다. 둘리가 장난을 치다가 고길동에게 혼나는 장면,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 둘리와 엄마가 만나는 장면들은 이제 어른이 된 과거의 어린이들은 물론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도 인상적이다. (물론 나는 “꼴뚜기 별의 왕자님”이야말로 우주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감성만은 세월이 흘러도 공통된 것인지, 보고 나오면서 우리집 유치원생은 둘리가 엄마를 만나려고 계단을 달려올라가서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이, 초등학생은 바요킹이 모두를 얼어붙게 할 때 엄마와 함께 얼어붙은 둘리가 초능력으로 얼음별을 다시 초록별로 되돌리는 장면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어린이는 집에 와서 아빠를 가리키며 “길동이 닮았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사실은 그만한 공감대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해상도나 색상 보정이나 당대의 농담 같은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