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는다, 는 행위 자체에는 유감이 없었다. 1.5배속이든 2배속이든 일정한 속도로 볼 수만 있다면 시각적인 부분의 손실은 의외로 적다. 연출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기억되고. 청각적인 부분의 손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바쁜 상황에서야 어쩔 수 없겠지. 다만 제멋대로 대사 없이 흘러가는 장면은 스킵해 버리거나 움직임이 적은 장면은 2배속으로 시청하고, 대사가 있는 장면만 정속으로 보는 것을 보면 “대체 연출이라는 걸 뭘로 생각하는 건가”스킵에는 유감이 많았다. 문제는 이제, 스킵도 아니고 유튜브 요약 영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베스트셀러 요약 서비스”처럼 기만적인 것 아닌가. 애초에 저작권 문제가 있는 영상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유튜브 요약 영상만 보고 팬이라든가, 자기가 오타쿠라고 말하고,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굿즈만 소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뭔가 만드는 입장에서는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한 상태로 이 책을 읽었다.
“살짝 시간 내서 봐두면 누군가가 이야기했을 때 나도 봤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제가 길다고 느꼈다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통하지도 않았다는 증거 아닌가요? 의도가 느껴지지 않으니 건너뛸 뿐이지요.”
봐야 할 작품은 너무 많고, 유행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 가성비, 일본 식으로는 타임 퍼포먼스를 추구하다 보니 “압축, 배속, 건너뛰기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청년의 기본적인 행동 양식”이 되고, 사람들은 대화에 참여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결말만 빨리 알고 싶어하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대목, 중요한 러브신만 찾아보고, 연출이 복잡하지 않은, 귀로 듣기만 해도 상황을 다 알 수 있는 아침드라마같은 영상물들이 늘어난다. 행간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려운 것이 되어간다. 책을 발췌역한 버전이나 드라마 총집편처럼 작품의 참맛을 훼손하지 않고 요약한, 전문가의 검증을 받은 형태도 아니고, 시청자의 마음대로 배속 시청을 하거나, 유튜브 요약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행위에서 콘텐츠의 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여기서 각본가의 의도는 무시당한다.
과거에는 편집자가 야심차게 시도한 기획이나 실력파 기자가 쓴 칼럼이 잡지에 실렸다. 설령 그 기사를 읽으려고 산 것이 아니라 해도, 이왕 샀으니 아까워서라도 한번은 읽게 되고, 예상외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예상 외의 콘텐츠 소비는 무용하고 가성비가 나쁘다고 여겨진다.
‘목적’을 위해 ‘스토리’를 무시하고 ‘원하는 장면’만 ‘반복적으로’ 시청하는 영상 포르노는 쾌락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 새로운 걸 보는데 체력이 필요하다, 남들 이야기를 따라갈 만큼만 알고 싶다, 이슈를 따라가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할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콘텐츠도 너무 많다. 게다가 정액제로 넷플릭스 같은 걸 구독하다 보면, 오히려 콘텐츠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TV처럼 흔한데다 시간 제약도 없다. 감상과 정보수집을 분리하고, 리뷰나 스포일러에 열광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진지하게 즐기는 법을 배울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세대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앞으로의 콘텐츠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바로 그런 세대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이상, 그런 부분을 반영하면서도 깊이있게 보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창작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시대가 된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처음부터 영화나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접하고, 또 그 감상을 공유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런 일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려운 작품을 찾아보고, 이를 분석하고 글로 쓰는 사람은 과거에는 식자층이거나 오타쿠였거나, 그런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계층이었을 테니까. 어떤 면에서 예전같으면 문화콘텐츠를 제대로 즐기지 않았던 사람들,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감상을 즐기고 당장 보고 즐겁거나 눈물을 펑펑 쏟은 뒤 돌아서면 잊어버리면 좋은 작품들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 스킵을 하는 사람들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정보 이해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요소들을 넣고, 레이어를 여러 겹으로 쓰고, 그런 상황에 대한 영상이나 글이나 만화의 연출에 대해서도 이미 발전해 있는 것들이 있으니, 이대로 단선적인 소비자들을 위한 단선적인 작품만 나오면서 문화예술이 끝장날 거라는 걱정까지는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작품 자체는 점점 더 밀도가 올라가는 경향도 있다. 그야말로 단위 시간당 덕력이 높을 수록 뽕을 뽑을 수 있는 이야기들, 많이 아는 만큼 더 즐거워지는 이야기들도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프리큐어 시리즈를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 단일 시리즈만 생각하지 않더라도, 어벤저스 시리즈의 세계관 확장이라든가, 정보의 밀도라는 면에서 창작자들은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단순한 소비자와 오타쿠 양쪽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나는 대목도 분명히 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의 존재다. 메인플롯만 소중히 여기고 서브플롯은 대충 스킵해도 되는 줄 착각하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빵빵 터지는 것만이 좋은 작품이라고 여기며 일부러 공백을 정보값으로서 주는 부분들을 스킵해 버리고, 좋아하는 부분만 보고, 주인공은 밋밋할 정도로 갈등하지 않아야 하고, 불쾌한 것은 한 점도 없이, 풍자도 사카즘도 없이 돌직구와 사이다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정보 강자로서 우월감까지 느끼고 싶어하고,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고, 별로 오타쿠도 아니면서 “개성있어 보이고 싶어서” 오타쿠 행세까지 하고 싶어하는 건 너무 도둑놈의 심보잖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냥 소비자로서의 자신에 만족하고 머물라고. 행간을 읽지도 생각을 곱씹지도 스스로 분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는 척까지 하고 싶어하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작품을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라며 비난하고, 다른 사람의 진지한 분석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건 너무하잖아. 사이다에 만족하지 마. 친절한 설명에 너무 익숙해지지 마. 생각을 하고 지금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멈춰서 다시 한번 곱씹어 봐. 자신의 힘으로 해석을 해 보고, 다른 사람의 진지한 해석을 “무식한 나에 대한 공격”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좀 생각을 하면서 받아들이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에서만 살고 싶으면 그냥 방 밖으로 나오지 말고, 꿈에서까지 가성비나 찾을 것 같으면 실용서나 읽으란 말이야.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이해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책이나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원리주의자 꼰대 취급을 당할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알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러지 말라고, 알면 알수록 세상은 더 넓어지고, 해상도도 더 높아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