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튀어나온 못처럼

내가 어렸을 때 집안 어른 중에 유학을 다녀와서 학자가 되셨다는 분 이야기를 가끔 들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그분이 이공계 쪽 교수님일 거라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간만에 아이의 근황 보고를 위해 전화를 했다가 아버지가 “친척 중에 저명한 문학자가 있는데 너 XXX라고 아냐?”로 시작하는 친척 자랑을 하는 것을 듣고 그만 밤새 두통으로 앓고 말았다. 알지요, 왜 모르겠어요. 그분이 번역한 책이 우리집에도 있는데. 문학 연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으신 분이다, 대단하지 않으냐, 하시며, 그분 댁에 다녀오신 자랑을 한참 하셨다. 그분이 쓰고 번역한 책들을 읽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꼭, 예전에 문창과에 다녔던 동생이 내가 쓰레기같은 글이나 쓰고 다닌다며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을 때 처럼, 내가 쓴 글은 한 줄 읽어보지도 않았다가 내 만화가 미국에 수출이 되었을 때는 자랑을 하던 것을 봤을 때 처럼 속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 때문에 집에서 그렇게 치이고 구박받고 잘못 튀어나온 못처럼 두들겨 맞았는데.

위로가 되어야 하나? 줄곧 잘못 튀어나온 못 취급을 받았던 나의 글쓰기는, 돌연변이같은 습벽이 아니라 어쨌든 유전자에 근거가 있는 무엇이었다고? 유전자 어딘가에 글을 쓰고 책에 환장하는 요소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속이 뒤집혔다. 그 친척 어른 탓이 아니다. 나는 그분의 책을 좋아하고, 번역서 중에는 인생 책이라 할 만한 것도 있었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 원가족은 참 나의 글쓰기를 집요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져서, 이 나이 먹도록 그런 것에 속이 뒤집히는 내가 한심한데,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고통스러운 거지. 왜 그렇게 밟히고 두들겨 맞아야 했던 것일까. 정작 친척이자 어린 시절 동네 친구였던 사람이 문학자가 되는 것을 봤으면서도 글을 안 쓰면 죽을 것 같았던 자식이 글 쓰는 것을 그렇게 미워한 것에 n차로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너무 천재를 봐 놓아서, 너 정도는 글 써서 밥 벌어먹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못하게 했었나?

모르겠다, 어느 쪽이라도 당신은 내가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친척 어른의 명성을 자랑하면서도, 그분이 어떤 글을 쓰셨는지는 모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제산제를 밤새 한 상자를 다 털어먹은 뒤에야 이게 억울하다고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설마 아직도 “가족의 인정”따위를 내심 원하고 있었나. 이 나이를 먹고도. 어리석게도. 날씨는 춥고, 미세먼지에 눈이 시리고, 나는 내가 너무 하찮아서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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