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타 토마의 도전

이쿠타 토마의 도전

이쿠타 토마는 쟈니스 출신 배우다. 그는 1996년 쟈니스에 들어갔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다른 주니어들과 달리 그룹을 결성하지 못한 채 주니어 시절을 졸업했고, 한동안 쟈니스에서 유일하게 가수로 활동하지 않는 탤런트였다. 하지만 그는 쟈니스로서 한계를 느끼던 17세 무렵 연극을 접한 경험에서 출발해 배우의 길로 정진했고, 쟈니스 최초로 블루리본 신인상과 영화 베스트10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그가 낙오된 기분을 느끼며 주니어를 졸업할 무렵, 그와 함께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 중에는 가부키 배우의 아들인 오노에 마츠야가 있었다. 대개 가부키 배우는 어린 시절부터 수련하고 가업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쿠타 토마는 가부키 세계에서는 외부인이었지만, 그들은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같이 가부키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꿈은 두 사람이 36세가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배우인 이쿠타 토마가 한달 반 동안 오노에 마츠야가 연출과 주역을 맡은 신가부키 “이도무 공연 시리즈 – 아카도 스즈노스케” 무대에 주역으로 발탁되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1982년 개장한 소극장 시모키타자와 혼다 극장에서, 외부인을 극의 주역으로 세우며 신가부키를 올리는 것 자체가 가부키 입장에서는 룰을 깨는 파격이다.

어떤 이야기를 설명할 때 가장 편한 방법 중 하나는, 그 분야의 초심자, 혹은 외부인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급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쿠타 토마의 가부키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유명 배우가 가부키 무대에 서는 준비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가부키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가부키를 소개하고자 하는 형태에 가깝다. 무대 준비는 공연 49일 전, 배우의 머리에 맞는 가발을 제작하기 위해 지가네라는 구리판을 두드리며 틀을 만드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43일 전부터는 대본 읽기를 시작한다. 일반 연극과 달리 대본을 들고 읽으면서 연습하며, 대본 읽기와 수정이 함께 이루어진다. 옷차림과 그에 맞는 움직임이 중요하기 때문인지, 초반부터 편안한 연습복이 아니라 기모노를 입고 연습을 하고, 기존의 영화나 연극과는 대사를 읽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교정해 나간다. 37일전에는 1인 다역을 맡은 배우의 마스크를 제작한다. 공연 19일 전부터는 일본 전통 타악기 소리에 맞추어 연습하고 15일 전에는 음악을 녹음한다. 열흘 전 부터는 진짜 무대와 같은 크기의 무대에서 연습을 시작한다. 무대 화장을 할 때는 눈썹이 두꺼운 화장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눈썹을 왁스로 싹 붙이거나 아예 밀어버리기도 한다. (왜 “가극 소녀”에서 늙은 가부키 배우가 무대에서 내려와 화장을 지우는 과정에서 눈썹이 없는 듯 묘사했는지 이해가 갔다.) 한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쌓아올리는 과정과 그 결과물인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며, 다큐멘터리는 가부키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가부키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하려 한다.

토마는 좋은 가부키와 나쁜 가부키를 연구했을 거예요.
좋은 가부키 배우의 이미지를 확보한 거죠. 정말 좋은 이미지를 가졌어요.

현대극에 익숙한 배우는 평소에 쓸 일이 없는 근육을 쓰고, 눈으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실제로 해 본 적 없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양식미를 몸으로 습득하며 나아간다. 주연배우다운 움직임은 초반부터 연습한다. 이쿠타 토마는 공연 42일 전부터 가부키의 주연배우가 퇴장할 때의 걸음걸이이자 하이라이트인 롯포를, 41일 전에는 미에(눈으로 원을 그리듯이 관객을 돌아보는 법)를 배운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이쿠타 토마는 화려하고 박력있는 롯포로 퇴장한다. (사실 박력있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가부키를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 연기가 어느 정도로 훌륭한 것인지, 혹은 부족한지는 잘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오구리 슌이나, 가부키 배우인 나카무라 시치노스케같은 배우들이 연기를 칭찬하는데, 그런 것은 책의 추천사 같은 부분이 없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이쿠타 토마가 롯포를 연습하는 장면 중간에 오랫동안 가부키를 해 온 다른 배우가 “우리 수준의 배우는 롯포를 못해요. 오직 주연만 할 수 있는 연기예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짧게 지나갔다. 가부키 집안에서 태어나 계속 가부키를 해 왔지만 결코 주연이 되지 못하는 배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눈에, 톱 배우이지만 외부인인 이쿠타 토마가 가부키의 주연을 맡는 것은 어떻게 보였을까. 슬프거나 절망적이거나, 혹은 낙하산이 주역을 꿰차는 데 이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까지 찍고 있다는 마음이었을까. 어떤 것일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치면 이쿠타 토마는 처음부터 무대나 영화로 활동하던 배우가 아니라 쟈니스 출신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 등에서 화제를 불러모으기 위해 아이돌 가수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경우가 있고, 이들 중 일부 연기력이 뛰어난 이들은 배우로서도 계속 커리어를 쌓아 나간다. 때로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무대를 보지도 않은 이들에게 연기력이 폄하되기도 하고, 십 년 넘게 공연을 이어가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90년대에 쟈니스에 대해 ‘그런 게 있다더라’ 이상의 관심이 없었으므로(한국 아이돌에도 관심이 없어 당시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H.O.T와 젝키의 멤버들 이름도 다 못 외웠는데 일본 아이돌에 관심이 있었을 리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십대에 아이돌이었다가 한계를 마주한 뒤 연극에서 성과를 거두고 진지한 배우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사람이 다른 장르의 극에서 주연을 맡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도 가부키에 대한 관심이 십 대 때부터 계속 이어져 왔던 거라면. 넷플릭스에 그가 주연을 맡은 “집필 불가”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언제 그것도 한번 봐야겠다. 일단은 “가극 소녀”에 나오는 가부키 장면들에서 궁금했던 것 한두 가지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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